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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 전갈, 타란툴라, 테리어, 비버… 그리고 랩터스

한 팀만 15년 응원한 팬의 이야기,《랩터스》(해준, 가익가)

1891년 미국 매사추세츠 스프링필드의 YMCA 체육 교사 제임스 네이스미스는 겨울철 실내운동을 고민하다 바구니에 공을 던져 넣는 경기를 만든다. 이듬해 스프링필드 대학교에서 첫 정식 농구 경기가 열렸고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남자 농구,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여자 농구가 정식종목으로 채택되었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부터 프로선수 참가를 허용하고 미국이 초호화 스타로 ‘드림팀’을 구성하면서 농구는 세계적인 스포츠로 발돋움했다. 많은 이가 농구 종주국이 미국임을 알지만, 농구를 발명한 네이스미스가 캐나다 출신인지 모른다.


   1946년 아메리카 농구 협회(BAA)는 보스턴 셀틱스 등 11개 팀이 참여하는 리그를 만들었고 1949년 내셔널 농구 리그(NBL)와 합병해 전미 농구 협회(NBA)가 되었다. 1967년 아메리칸 농구 협회(ABA)라는 새로운 리그가 출범해 3점 슛과 덩크슛 경연대회를 도입하며 혁신적인 농구로 NBA를 위협했지만, 1976년 ABA마저 합병하면서 NBA는 MLB(메이저리그 야구), NFL(미식축구 리그), NHL(북미 아이스하키 리그)과 더불어 북미 4대 프로 스포츠로 자리 잡았다. 매직 존슨, 래리 버드, 마이클 조던, 샤킬 오닐, 코비 브라이언트, 르브론 제임스 등 슈퍼스타가 연이어 등장한 NBA는 세계적인 리그가 되었다. 많은 이가 뉴욕 닉스라는 팀을 알지만, 1946년 11월 1일 NBA 역사상 첫 경기가 미국이 아닌 캐나다 토론토에서 열렸고 이날 닉스 상대가 ‘토론토 허스키스’였는지 모른다.   


토론토 허스키스와 뉴욕 니커보커스 첫 경기 홍보 포스터. 당시 팀내 최장신 '노스트랜드 (약 2.08m) 보다 키가 큰 사람은 무료입장'이라는 문구가 흥미롭다.


토론토 허스키스 로고 (왼쪽)와 2016년 과거 허스키스 유니폼을 재현한 모습 (오른쪽) 


   농구와 NBA 탄생이 캐나다와 관련됨에도 많은 이가 알지 못하는 이유는 아이스하키 때문이다. 캐나다 아이들은 농구공이나 야구공 대신, 하키 스틱을 잡는다. 캐나다 달러 지폐에 아이스하키 하는 아이들 그림을 넣을 만큼 아이스하키는 캐나다 최고 인기 스포츠이다. 웨인 그레츠키 등 여러 아이스하키 전설이 캐나다 출신이며 NHL에 여섯 개의 캐나다 연고 팀이 있기에 아이스하키는 스포츠 뉴스 대부분을 차지한다. 


   1993년 NBA는 미국 중심의 리그를 확장하려는 목적으로 캐나다 밴쿠버와 토론토에 신생팀 창단을 기획했다. 그러나 아이스하키에 인기가 편중된 캐나다 시장에서 농구팀이 정착할지 우려했다. 게다가 당시 캐나다 길거리에서 농구 하는 청소년이 눈에 띄지 않았기에 저변 확대가 시급했다. 캐나다 두 팀은 자신을 대표할 이름부터 정해야만 했다. 토론토 구단은 팀명 공모전을 열어 2,000개 이상의 이름을 받았고 이 중 결선에 오른 후보는 다음과 같다.


   드래곤스(용), 스콜피언스(전갈), 테리어스(테리어 개), 호그스(돼지), 밥캐츠(야생 고양이), 비버스(비버), 타란툴라스(독거미), 그리즐리스(곰), 티렉스(티라노사우루스의 줄임말), 랩터스(벨로키랍토르)


   이 중에서 드래곤스, 밥캣츠, 랩터스가 최종 후보가 되었다.


   영화 <쥬라기 공원> 흥행 때문이었을까. 토론토 농구팀 이름은 랩터스가 되었다. 밴쿠버는 북미산 회색곰을 상징하는 ‘그리즐리스’라는 이름을 택해 그나마 연관성이 있지만, 토론토와 벨로키랍토르 공룡은 어떤 연결고리도 없어 보였다. 레이커스, 불스, 셀틱스라는 농구팀다운 이름이 아닌, 애니메이션에 나올 법한 공룡이 농구공을 움켜쥐고 드리블하는 로고와 함께 토론토 랩터스는 1994년 5월 24일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랩터스 팀 명칭 소개 기자회견에 등장하는 아이재아 토마스 부사장


   그 시절 초등학생이던 나는 승리만 생각했다. 대부분 농구 팬과 같이 마이클 조던을 좋아했고, 조던 은퇴 후 2년 연속으로 우승한 휴스턴 로키츠를 응원했으며, 허재, 강동희, 김유택 ‘허동택 트리오’가 전성기를 구가한 기아자동차 농구에 환호했다. 그리고 서울 정도 600년을 맞이한 1994년 신바람 야구를 앞세워 창단 5년 만에 두 번째 우승을 차지한 LG 트윈스 팬이기도 했다. 이기는 맛에 빠져있던 그때 공룡이 크게 그려진 우스꽝스러운 유니폼에 무명 선수가 모인 토론토 랩터스는 당연히 나의 관심 밖에 있었다.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석간신문 주식시세표부터 확인했다. ‘OO 건설’ 화살표가 어느 쪽으로 향하느냐에 집안 분위기가 달라졌다. 화살이 하늘로 올라가면 안도했고 아래로 내려가면 아버지가 돌아오는 저녁이 다가올수록 불안했다. 술에 취한 아버지가 집에 들어와 고성을 지르면 잠든 시늉을 했지만, 거실로 불려 나가 잔소리를 들었다. 내가 누구이고 어떤 생각을 하며 세상은 어떻게 돌아가는지 이해할 겨를도 없이, 나는 강압적이고 폭력적인 아버지의 삶 속에 갇혀 살았다.


   동생과 나는 밥상을 앞에 두고 아버지가 쏟아내는 비난을 들으면서 하루를 시작했다. “게으르니까 공부를 못한다”라는 잔소리부터 세상을 향한 아버지의 부정적 시선이 식탁을 둘러쌀 뿐이었다. 나는 잘못만 하는 아이라고 생각했다.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았고 마음껏 놀지도 않았다.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다.


   스포츠는 나에게 유일한 위안거리였다. 스포츠 중계를 알리는 음악―그중에서 MBC 스포츠 시작 음악인 플랑케트 <상브르-뫼즈 연대행진곡>(보스턴 팝스 오케스트라 연주 버전)을 좋아했다―만 나오면 텔레비전 앞으로 달려갔다. 아버지의 그늘에서 잠시나마 벗어나 스포츠에 몰두했기에 한국 스포츠의 역사적 순간을 거의 놓치지 않았다. 1992년 8월 10일 새벽에 혼자 일어나 바르셀로나 올림픽 마라톤을 보다가 황영조가 30km 지점까지 선두를 유지하자 가족 모두를 깨워 몬주익 언덕에서 일본 모리시다를 따돌리고 황영조가 월계관을 쓰는 순간을 지켜보았다. 96년 4월에는 이튿날 새벽에 AFKN에서 LA 다저스 경기를 중계한다는 정보를 알고 밤을 새워가며 박찬호의 메이저리그 첫 승을 지켜보았다. 나에게 없는 기쁨이 스포츠에는 가득했기에 승리에 집착할 수밖에 없었다.


과거 MBC스포츠 오프닝 화면 (왼쪽)과 오프닝 곡인 플랑케트 <상브르-뫼즈 연대행진곡> 보스턴 팝스 오케스트라 앨범 표지 (오른쪽)


   나는 친구들 사이에서 말 잘 듣는 아이였다. 아버지의 그림자가 학교까지 드리워져 순종적이고 수동적으로 친구를 대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누군가가 나에게 착하다고 하면 왜 그렇게 말하는지 이해하지 못했고, 미움받고 싶지 않다는 강박에 사로잡혔다. 누군가가 나를 계속 쳐다보면 내가 잘못해서 노려본다고 여기고는 그 사람을 찾아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알려달라며 미안하다고 말했다. 친구들이 놀려도 받아주기만 했다. 한번은 농구 동아리에서 동해로 여행을 떠났는데 휴게소에서 만화책을 사달라는 친구 말에 아무 생각 없이 냉큼 집어왔다. 그러자 쌍둥이 동생은 “형이 왜 잡지를 사줘야 하는데! 바보야?”라며 화를 냈다. 어떤 친구는 초등학교 5학년 학급 문고에 실린 롤링 페이퍼 내 부분에 이렇게 썼다. “어른이 되면 너한테 사기 칠 테니까 조심해!” 학창 시절 나는 친구들에게 조종당하기를 택했다.


   하지만 스포츠는 나에게 사기를 치거나 노려보지 않았다. 스포츠에는 땀과 노력이 있었고 승자의 환호와 패자의 아픔만이 있었다. 스포츠 안에서 오직 나는 자유로웠다. 수학 공식 대신 선수 이름을 외우고 경기 내용과 그 뒷이야기를 기억하는 데 많은 시간을 보냈다. 스포츠를 빼고는 어린 시절을 떠올리기 어렵다. 기억에서 모두 지우고 싶었으니까.


토론토 랩터스의 역사상 첫 경기 직전 팀 마스코트 '랩터'가 원시인 네 명이 운반한 알에서 나와 환호하고 있다


   1995년 11월 3일, 토론토 랩터스는 뉴저지 네츠를 상대로 역사상 첫 경기를 치렀다. 1947년 단 한 시즌 만에 허스키스가 해체된 후 토론토에 NBA가 돌아온 것이다. 경기 전, 원시인 복장의 네 명이 코트 한가운데로 운반한 알이 깨지면서 빨간색 공룡이 나와 손을 번쩍 들어 환호한 후 공중제비를 돌았다. 팀의 마스코트 ‘랩터’였다. 장내 아나운서 허비 쿤의 선수 소개에 이어 농구 창시자 제임스 네이스미스 박사의 고손자 제프리 네이스미스가 시투를 했다. 팀의 역사적인 첫 득점은 앨빈 로버트슨이 3점 슛으로 기록했다. 3만 3천여 관중이 지켜보는 가운데 랩터스는 94 대 79로 완승하면서 산뜻한 첫발을 내디뎠다.


   첫 끗발이 개 끗발이었을까. 이후 랩터스는 일곱 번을 내리 졌고, 21승 61패로 첫 번째 시즌을 마쳤다. 농구 전용 경기장이 없어 야구장 스카이돔에서 경기해야만 했고, 신생팀 자격으로 특별 지명한 선수들은 손발을 맞출 여유도 없었다. 당시 랩터스에 관한 나의 몇 없는 기억은 ‘마이티 마우스’ 데이먼 스타더마이어의 신인상 수상과 72승 10패로 당시 정규시즌 최고 승률을 올린 불스를 상대로 토론토 홈에서 따낸 기적의 1승 정도다.


   다음 1996-97시즌에서 랩터스는 30승을 올리며 발전하는 모습을 보였으나 1997-98시즌에는 17연패라는 최악의 출발 끝에 16승 66패, 2할에 미치지 못한 승률로 동부 콘퍼런스 꼴찌가 되었다. 시즌 중반 스타더마이어를 트레이드하여 영입한 케니 앤더슨은 캐나다 팀이라는 이유만으로 합류를 거부했다. 승리 자판기일 뿐인 랩터스의 경기력에 캐나다 팬은 아이스하키로 관심을 돌렸다. 세상은 온통 1998년 NBA 파이널 6차전에서 재즈를 상대로 ‘더 샷’을 날린 조던과 시카고 불스의 통산 6번째 우승 이야기로 가득했다. 그때는 몰랐다. 랩터스가 아픔과 고통, 그리고 분노를 안겨주리라는 것을. 랩터스도 몰랐으리라. 파란만장한 첫 시즌 후, 자신에게 23년 뒤 벌어질 놀라운 일을.


팀 역사상 첫 경기가 열린 토론토 스카이돔 모습




랩터스 역사상 첫 경기 티켓(아래)와 경기 결과 (랩터스 94, 네츠 79, 오른쪽 위)가 실린 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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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랩터스》 입고처


<서울·경기>

책방비엥 (은평구) | 온라인 오프라인

다시서점 (강서구) | 온라인 오프라인

올오어낫싱 (금천구) | 온라인 오프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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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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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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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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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경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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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해윰책방 (대전 서구) | 오프라인


<강원>

*깨북 (강릉 교동) | 오프라인

*느림의 미학 (원주 단구동) | 오프라인 (12월 15일부터 구매가능)


<제주>

*어떤바람 (서귀포 안덕 사계리) | 오프라인


<이동서점>

*북다마스 | 온라인 오프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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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독] 저자 해준 목소리로 듣는 《랩터스》- '형! 랩터스가 결국 해냈어'

https://youtu.be/BjBx-gl2qZ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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