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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떠돌이 Sep 10. 2019

독거인의 투병기

혼자 살아 서럽진 않으나 아픈 순간, 두렵기 시작했다 -1인 가구의 걱정

연 4일 연속으로 잠을 못 자는 날들이 이어졌다.

반백수의 삶을 이어갈 수 있도록 나의 생계를 책임져주는 고마운 업무를 챙기는 와중에 정신적으로 스트레스를 받을 일이 있었는데, 그 상황과 답 없는 물음이 시도 때도 없이 머릿속에 떠올라 예민해졌다. 얼마 전 본 책에서 기질적으로 타고난 예민함을 HSP(Highly sensitive person) 란 용어로 분류하던데, 내가 딱 그쪽인 것 같다.


잠을 깨기 위해 매일 가던 아침 수영에 더해 저녁 요가를 더했더니 엄청난 근육통이 생겼다. 이럴 때일수록 잘 쉬어줘야 몸이 회복되건만, 도저히 잠이 오지 않았다. 잠은 자야 했기에 4일 연속 술을 마시고 술김에 잠이 들었지만 술을 마셔도 잠이 오지 않는 날도 더러 있었다. 해소되지 못한 근육통과 불면은 사람을 망가지게 만들었다. 너무 각성되어 낮잠도 오지 않자, 몸이 망가진다는 느낌이 생생히 느껴졌다.


4일 연속 선잠과 불면을 반복하고 난 금요일 아침, 아침 수영을 위해 눈을 떴는데 상태가 좋지 않았다. 저녁에 부실한 안주 치즈 두장과 함께 마신 소주 두병에 숙취가 있는 건가 싶었다. 아침 수영반에 높은 출석률을 자랑하고 있지만 잠이 좀 든 김에 오늘은 쉬어야겠다 싶어 자리에 누웠다.


오후 3시, 업무 리포팅을 하기 위해 맞춰둔 알람이 울렸다.

핸드폰을 집어 알람을 끄려는데, 말 그대로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땀이 비 오듯이 흘러 시트는 축축한데, 손가락 하나 움직이기가 힘들었고 온 몸엔 소름이 돋아 추운 건지 더운 건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선풍기 바람이 추웠지만 이불을 덮으면 더웠다. 쉴 새 없이 땀이 흘러 찝찝한 몸의 자세를 바꾸기 위해 몸뚱이 방향 전환 조차 하나 둘 셋 맘속으로 기합을 넣지 않으면 불가능했다. 몸에서 강제로 유체 이탈된 느낌이었다. 힘이 전혀 들어가지 않았다. 온 관절이 후들거렸다. 겨우 약을 찾아 먹었으나 효과가 없었다. 다시 해열, 진통, 근육통에 듣는 약을 찾아 물과 삼켰는데 목이 부은 게 아니라 삼키는 목의 근육 자체가 아픈 느낌이 들었다. 약을 먹고 침대로 갈 힘이 없어 부엌 바닥에 누웠다.

이렇게 죽을까 봐 무서웠다. 이건 그러니까 실제적인 두려움이었다. 내가 죽으면 언제쯤 발견될지 가늠해 보았다. 아 젠장 너무 늦다. 빨리 발견될 가능성 매우 낮음이다. 나의 안부를 묻는 사람은 별로 없고 답이 없더라도 원래 그런 애지 라거나 혹은 어디 갔겠지 라고 다들 짐작할 것이고, 집주인은 관리비가 밀려도 크게 독촉하지 않는다.


3X세 ㅇ씨 고독사, 이런 기사가 머릿속으로 그려졌다.

.

.

.

생각해보니 이번 주는 뭘 제대로 챙겨 먹지도 못했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예전에 한 번 몸살이 났을 때 뭘 먹고 몸이 확 나아진 적이 있어 이번에도 혹시나 제발 그러길 바라며 냉면을 시켰지만 이내 후회했다. 한 그릇도 친절히 배달해 주는 냉면집에 전화를 거니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던 것이다. 게다가 냉면이 오면 일어나서 문을 열어줄 힘도 없었다. 몇 걸음 안 되는 현관까지 걸어갈 힘이. 게다가 잠옷 위에 카디건 하나 걸칠 힘도 당연히 없었다. 일단 현관 근처로 기어가 누웠다. 다행히 외출 전 지갑을 두는 현관 근처에 지갑이 보였다. 지갑을 찾느라 몸을 더 움직이지 않아도 된다 아..


현관 앞에 누워 냉면을 기다리다 아.... 다, 세시에 일이 있어 알람 때문에 일어났구나 싶어 핸드폰을 들었다.

세시쯤 업무 리포팅을 위해 밴쿠버에 전화를 해줘야 하는데, 겨우겨우 힘을 짜내 "지금 내가 몹시 아파 몸을 움직이기 힘들다"라고 톡을 보냈으나 씹혔다. 먼 곳의 보스는 화가 난 것 같았다.


냉면이 왔다. 나는 잠~시~ 마한~~~ 요~ 를 외치며 파자마보다 큰 로브 하나를 약 3분에 걸쳐 겨우 팔을 꿰고, 문을 열어주고 벽에 기대서 냉면을 받았다. 냉면 그릇을 상에 옮길 힘도 없어 현관 앞에 그대로 반쯤 숙여 포복하는 자세로 나무젓가락에 냉면을 말아 입에 가져갔다. 평소에 나무젓가락을 절대 쓰지 않지만 부엌까지 갈 힘이 없어 그냥 나무젓가락을 썼다. 먹는다는 표현은 사치였다. 말 그대로 면을 젓가락에 말아 입안 가득 넣고 몇 번 씹고 삼키고를 반복하며 입에 쑤셔 넣었다. 제발 제발 확 눈이 떠지듯 몸이 극적으로 좋아지길 기도하며.


물론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더 큰 문제는 지금 내 몸 하나 챙기기도 힘든데, 당일 급히 해결해야 하는 일이 있었다. 냉면을 흡입하고 그대로 침대로 기어올라가 몇 시간을 자는 듯 마는 듯하면서도 해결해야 하는 일에 맘이 불편해 조급하고 괴로웠다.

냉면은 효과가 없었으나 겨우 삼켰었던 두 가지 약 중 종합 몸살약이 몸을 움직이는 것을 가능케 만들어 줘 황송했다. 우선 급한 전화만 걸어 해결이 아닌 미루기를 해 두었다. 그렇게 저녁까지 다시 식은땀을 흘리며 이건 자는 건지 마는 건지 하는 상태로 누워 있었다. 몇 시간을 그러고 나니 조금은 회복된 것 같았다. 다시 남은 약을 먹어야지 싶어 배를 좀 채우려고 시속 1m로 근처 편의점에 갔다. 나시 잠옷 위에 로브 하나만 걸치고. 이건 뭐 평소에 상상도 할 수 없는 옷차림이었지만 내겐 뭘 더 걸쳐 입을 힘이 없었다.


몸에 좋은걸 사야 하나 입에 당기는 걸 사야 하나 고민하다가 그걸 고르기도 어려워 연두부 원플원과 당을 확 충전해 줄 것 같아 보이는 백도 한 병, 왠지 내게 수분 충전과 파워업을 시켜줄 것 같은 파워에이드, 맨 밑 칸에 있는 편의점 삼계탕 주제에 9800원 씩이나 하는 한방약재 어쩌고 저쩌고 삼계탕, 다음에도 이러한 유사상황을 대비한 미역 컵국과 계란 컵국을 사서 오는 길에 후회했다. 병자가 들기엔 너무 무거운 무게였던 것이다.

집으로 돌아오는데 미친 듯이 바람이 불고 (태풍 링링의 시작이었지만 물론 난 몰랐다) 가랑비가 내렸지만 우산을 펴고 들 기력이 없어 양 팔을 늘어뜨린 채로 멀게 느껴지는 500m 남짓한 거리를 걸어 집까지 겨우 돌아왔다.

우선 제일 먹기 편해 보이는 연두부를 깠는데 드레싱에서 신맛이 느껴지며 목이 아팠다. 원한 맛이 아니라 우울해졌다. 삼계탕을 큰 그릇에 담아 데우는데 시키는 대로 해도 뜨끈해지지 않아 좀 더 우울해졌다. 더 데우다 그냥 먹자 싶어 국물이 찰랑거려 흐를 것 같은 그릇을 조심조심 상으로 가져오느라 백 년 정도의 시간이 흐른 것 같았다. 근데 아뿔싸 국물 맛이 내가 아는 삼계탕 맛이 아니다 ㅜㅜ 감초 맛 한약 맛이 너무 많이 난다. 고기도 맛이 없고 뼈가 발라진다기보다 입안에서 그냥 분리돼 막 같이 씹힌다. 그냥 몇천 원 더 주고 배달시키면 될걸 난 대체 무슨 짓을 한 것인가 자괴감 들고 괴로웠다.


어떻게든 살아보겠다고 이러는 내가 안쓰러운데 그게 또 너무 웃겨서 아픈 와중에도 혼자 낄낄댔으나 결국엔 스스로가 장하구나 싶었다. 혼자 낄낄대는 와중에도 식은땀은 미친 듯이 흘러 옷이 계속 젖은 상태였다. 다음 날 겨우 정신을 차려 근처에 살고 있는 한 명밖에 없는 유일한 지인의 도움을 받아 병원까지 갔다. 전날보다 나아지고 있었다. 잘 챙겨 먹어야지 하며 금요일 밤부터 맛없는 삼계탕을 시작으로 3일 동안 식사만 제때 먹었을 뿐인데 8월, 뜨거운 여름 한 달 동안 가열차게 수영으로 뺐던 3kg 이 고스란히 다시 쪘다. 내가 뭘 한 건가 웃프지만 그래도 나아져서 다행이다. 무려 몸을 못 움직이던 아픔에서 탈출하게 된 게 어딘가 싶어 감사하다.



이럴 때면 다시 한번 혼자 사는 삶에 대해 생각한다.

아, 혼자일수록 더 잘 챙겨야겠구나. 나처럼 친구도 없고 가족도 먼 사람, 주변에 도움을 받을만한 사람이 없을수록 더 잘 챙겨야겠구나, 당연하지만 실천하지 못했던 그 말을 정말 뼈저리게 느낀 지난 주말, 나는 살아있음에 안도했고 나를 제대로 잘 챙겨야지, 하는 교훈적인 마음까지 들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나를 살피는 것, 일보다 나를, 얼마 안 되는 임금보다 나를 살피는 일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지만 실천이 잘 안 되는 그 진리를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해 부엌 바닥에 누워 있던 그 순간 뼈저리게 실감했다.


입 아프고 손 아프게 나를 사랑하자 스스로를 잘 보살피자 떠들며 날 방치해온 내가 진정한 아가리어터였음을 인정한다. 다이어트는 둘째치고 이젠 더 이상 젊지 않은 내 몸을 잘 챙기는 것이 중요함을 다시 한번 실감한다. 어떠한 결과가 생기더라도 모든 것이 내 책임이라는 사실을 되새긴다.

마지막으로 독거인은 술을 조심히 마셔야 한다는 것을, 몸이 안 좋을 때 마셨다가 잘못하다 한 번에 훅 갈 수 있다는 것도 다시 한번 느낀 귀~~~ 한 경험이었다. (라며 정신승리 중)



혼자 산다는 것.

자유는 달콤하지만, 그에 대한 대가도 지불해 왔으며 앞으로도 그럴 용의는 충분하지만 위의 상황이 닥치자 막막해져 두려움밖에 들지 않았다. 사실 내가 저 때 의식을 잃었다면 나는 그대로 영영 잠들었을지도 모른다. 자꾸만 그런 최악의 가정을 하게 된다.

언제쯤 1인 가구가 비상상황에 대한 두려움 없이 살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드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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