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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떠돌이 Oct 21. 2019

공기 도둑의 일기

이리 살아도 되나 싶은 날들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는 것이 자유를 얻는 것의 첫 번째 길임을 알면서도 자택 근무가 가능해진 생활리듬엔 늘 죄책감이 함께한다.

그래서 나는 생활체육인으로 거듭나기로 했다.


1. 아침에 일어나 수영장에 간다. 술이 덜 깬 채로 헐레벌떡 뛰어간다.

2. 수영장에서 나오면서 업무 관련 전화를 하기 시작한다. 대부분 직장의 점심 직전이라 기분 좋은 통화가 가능하다.

3. 일은 구멍 나지 않을 만큼 대충대충 했으나 나는 역시 이런 것에 어울리지 않는 인간이었다. 약간 힘들고, 터프한 일정의 일을 좋아하는 변태다. 일이 너무 없으면 얼마 없는 일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대충대충 하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4. 무리한 운동으로 인해 생긴 근육통을 풀기 위해 낮잠을 좀 잔다. (대부분의 회사가 점심시간인 동안)

5. 일어나서 업무보고를 하고 마저 남은 업무를 한다. 유럽 및 중동 국가는 이제부터 일이 시작되는 시간이다.


그렇게 일을 조금 하다, 저녁 8시 요가반에 간다. 만만하게 보고 갔으나 제대로 따라 하고 오면 온 몸의 근육이 몸살 난 듯 아프다.


이까지 참 좋은 루틴이었다. 내 코를 깨 먹기 전까지. 이 루틴은 수영 2개월, 수영+요가 1개월  토털 3개월 지속되었다.


운이 없는 놈은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진다고 하더니, 올해 4월 방송대 과제 제출 7일을 남겨두고 급히 귀국하여 1일 1 과제를 위해 책을 가득 매고, 술이 좀 된 채로 무거운 가방 그대고 뒤로 넘어진 나는 갈비뼈 3대가 나간 전력이 있다.


그리고 며칠 전인 올해 10월 7일, 이틀 전 기분 좋게 술을 마시며 티브이를 보다가 갑자기 무슨 삘을 받은 건지 티브이 요가 동작을 따라 하면서 앞으로 고꾸라져 얼굴을 테이블 모서리에 그대로 부딪혔다. 자고 일어나면 괜찮을 줄 알았으나 얼굴은 전치 몇 주의 권투선수처럼 눈 주위가 멍과 붓기가 생겨 눈을 뜨기조차 힘들었다.

다음날은 일요일이었다. 하루만 지켜보기로 했다.

월요일 일어나 보니 눈은 떠졌지만 여전히 권투선수 느낌의 얼굴이었다.


우선 안과를 갔다.

의사 선생님은 다행히 여러 사람들이 잘 찢어지는 부위는 괜찮은데 3군데가 찢어졌다고, 뼈의 부상을 묻는 내게 여긴 그런 장치가 없으니 옆의 큰 병원에 가서 사진을 찍어보라 했다.

아프긴 한데 갈까 말까, 내일 갈까 하다가 건강의 소중함이 제일이라는 진리가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 근처 중형 병원에서 엑스레이를 찍었다. 코뼈가 부러져있었다.

의사 선생님은 원래 잘 부러지는 부위이긴 하지만 제대로 붙지 않을 경우 이비인후과나 성형외과에 가서 콧대를 올려서 맞추는 수술을 해야 할 수도 있다는 무서운 말씀을 하셨다. 나는 안다. 코수술이 얼마나 무섭고 끔찍한지 여러 지인과 와나나의 만화를 통해 간접 경험해 본 것이다. 쌍수는 아무것도 아니라 했다. 괴롭고, 수발해주는 사람이 없으면 생활하기 무지하게 힘들다고 했다.


며칠만 있으면 수영은 갈 수 있겠지? 하는 건 나의 착각이었다. 의사 선생님은 최대한 움직이지 않게 하라고 하셨다. 나도 혹시나 발생할 경우의 수가 무서워서, 세수를 할 때도 코 주변은 건드리지도 않았으며 혹시나 하는 위험에 음파 전동칫솔도 쓰지 않았다. 걸을 때도 얼굴에 진동이 가지 않게 배에 힘을 빡 주고 걸었다.

의사 선생님이 잘했다고 하셨다. 그리고 술도 마시지 않았다. 그렇게 1주일 정도가 지났다.


눈의 흉터 빼고는 의사 선생님도 놀랄 정도의 무서운 속도로 상태가 호전됐다. 갈 때마다 봤던 정형외과 간호사 분도 와, 하면서 놀랄 정도로 상태가 급격히 좋아졌다. 와우. 다시 한번 건강의 소중함을 실감한다.


혹시나 해서 굉장히 비싼 CT도 찍어봤다. 눈의 뼈가 혹시나 다치지 않았을까 했지만 다행히 멀쩡했고 화면에 보이는 나의 해골 사진은 너무 신기했다.

내가 너무 신기해하니 의사 선생님은 "자기 해골을.. 아 아니 그.. 스컬.. 아.. 머리 사진을 볼 기회가 드물긴 하죠" 라며 한참을 구경시켜 주었고 사진을 찍는 것도 허락해 주셨다.



이 사진을 보니 내가 고대 인류로부터 그리 멀지 오지 않은 생명체임을 다시 한번 직감한다.

저 고대로부터 이어져 왔을 억새 보이는 광대와 겉모습으론 짐작도 안되는 잡식동물의 것으로 보이는 저 엄청난 치열까지.


내가 원시시대 인간과 비슷하다고 해서 삶의 소중함이, 삶에 어떤 의미를 부여할지가 옅어지는 것도 아니다.


무튼 요는 즐겁고 건강하게 살아봅시다 우리 모두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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