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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떠돌이 Nov 19. 2019

올해를 돌아본다

뭐 몸도 근질근질해서 내가 뭘 했나 싶어서

빈둥빈둥빈둥 대는데도 왜 몸은 어딘가 근질근질할까?

출장을 많이 다니는 사람들이 계속 사무실 근무를 하다 보면 몸과 마음이 근질근질하다는 듯 신호가 오는데 요즘 내가 딱 그렇다. 너무 루틴이 없는것인지 혹은 너무 집안에만 있는 루틴이 굳어진 것인지 몸이 근질근질하다는 신호가 온다. 마치 올해는 한 번도 어딘가를 가 본 적이 없는 것처럼.


그래서 곰곰이 복기해 보았다. 올해 상 하반기, 나는 뭘 했나.


1. 8월 방송통신대학교 졸업_방송대

의외로 방송대 검색을 통해 브런치에 오는 분들이 적은 수이지만 간간이 있었다. 그만큼 궁금한 것도, 또 무언가 팁도 필요하신 거겠지. 그 맘 너무나 이해 간다. 나도 처음 3학년 2학기로 편입하여 출석수업을 들었을 때의 암담한 기분을 잊을 수 없다. 그건 그러니까.. 아 나는 기초도 없는데 괜히 편입을 했구나, 하나도 못 알아듣겠다 하는 느낌이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국회의원 상, 졸업 때엔 성적우수, 그리고 단 4학기 만에 휴학 없이 무사 졸업 완료 하였다. 나는 게으르다, 공인된 게으름 뱅이인 나. 그러나 뜻했던 목표보다 많은것을 해냈다.


2. 해외여행

홍콩 16일, 발리 옆 길리 32일. 열심히 빈둥거렸고 먹고 기도하고 사랑했다. (기도는 안 한 것 같다..) 짜증 나고 무섭고 불안하고 힘든 여러 순간들이 있었으나 그것마저 이기는 건 내 안에 잠재된 호기심과 떠나고자 하는 본능이었다.


3. 국내여행

제주도 8일, 경주 당일치기, 전라도 여수 순천 3일. 출장 겸 서울여행 약 10여 일.

출장은 논외로 하고, 세 장소는 내가 너무너무 좋아하는 곳들이다. 최소 3번 이상 간 곳들로 갈 때마다 서두르지 않고 늘 가보지 않은 곳을 남겨두고 온다. 며칠 전 생일 겸 다녀온 순천 여행 역시 너무 좋았다.

외국여행 온 삘도 좀 내고 싶어 일부러 숙박을 에어비앤비로 잡아봤는데, 결과는 모두 만족이었다. 홍콩 여행에서 에어비앤비로 너무 앗 뜨거워 하고 데어서 와서인지, 만족 만족 만족.


당신께 할인 코드를 공유합니다.

사진도 공유합니다. 순천 동네 맛집 벽오동. 그러나 몇 년 전만큼의 감동은 아니었습니다. 메뉴는 밥 아니면 보리밥, 1인 만원


사진으로는 담아낼 수 없는 색감의 길, 그냥 가보면 알 거예요 제가 무슨 말을 하는지


가장 최근 방문지인 순천에서는 열심히 먹고, 열심히 다녔으나 잊히지 않는 게 있다. 

바로 선암사. 굽이굽이 길을 따라 호수를 옆에 끼고, 조용한 마을을 지나 도착한 사찰은 너무나 멋졌다. 

소원을 쓰랬더니 예술을 하고 가신 분들이 있었다. 명필은 필묵을 탓하지 않는다더니, 한참 동안 넋 놓고 볼 수밖에 없던 금손들의 작품

선암사는 차 없이 가기 힘든 곳이다. 그러나 대중교통이 있고 버스시간이 표기되어 있는데 할 수 있다면 대중교통으로 오고싶은 이유는, 오가는 길이 너무나 멋있기 때문이다.

이 색감은 말로 표현이 안되는, 직접 가서 그냥 봐야 하는 오묘한 색.


그러나 그것보다 잊히지 않는 것이 있으니.. 바로 선암사의 '뒷간'이었다.


간판도 옛날 한글을 쓰는 방식으로 오른쪽부터 쓰여있어 첨엔 'ㄱ산뒤' (기역과 시옷이 같이 붙은 초성형태) 

깐뒤? 깐뒤가 뭐야 했으나 뒷간의 입구 옆 돌에 쓰여진 설명을 열심히 읽어보니 바로 '뒷간'이었다. 2층 목조건물로 지어진 언뜻 보면 멋진 건물같아 보이는 뒷간을 소개하는 글이 있었는데 '특수한 어떤 형태의 어쩌고 저쩌고.. 이런 양식은 특이한 양식으로..1400년대.......' 기억이 다는 나지 않는다. 무튼 길을 잘못 들어 뒷간의 옆을 지나게 되었다. 뒷간 건물의 옆을 스칠 때 고향의 냄새가 나길래 아.. 이건 몇백 년 된 똥의 향기인가? 어 진짜 그런 건가? 싶어 살짝 신기했다. 근데 말이 안 되잖아? 똥은 몇 백 년 가기 전에 다 썩어 없어질 텐데? 뭘까? 무슨냄새야? 호기심을 가진 내가.. 내가 문제였다.


 뒷간의 옆길을 따라 계단을 내려가 뒷간의 뒷편, 작은 마당 같은 곳에 도착하게 되었다. 그런데 오잉? 뒷간의 뒷면 1층, 즉 사람의 장소가 아닌 똥들이 모이게 설계된 뒷간의 그곳은 활짝 열려 있었고, 시멘트 포대 같은 것들이 쌓여있는 것 같았다. 호기심을 참지 못한 나는 기어이 열린 문 쪽으로 다가가 보았다. 으아악, 근처에는 나보다 나이가 많을법한 은행나무가 은행 잎을 아름답게 떨구었고 거대한 몸체 답게 엄청난 양의 은행 열매도 함께 떨궈놓은 것이었다. 은행열매 수백 개가 투드득 밟혔다. 아 아까 그건 은행 냄새였구나.. 싶었다. 아무리 그래도 뒷간에 똥이 있다면 저 문을 저렇게 열어놓을 리 없지 않은가. 은행알이 수북한 지뢰를 지나 뒷간의 아래층, 활짝 열린 뒷문으로 간 나는..

시멘트로 보이던 것들이 휴지임을 알았다. 그리고 느껴지는 강렬한 냄새. 으아악..........

도망쳐 어디론가 가려고 했으나 사방은 계단 끝을 막아 사찰 중심으로 연결되지 않게 막혀있었고 (막힌 펜스를 보고 여기가 관광 장소가 아님을, 내가 길을 잘못 들었음을 알았다.) 돌아온 길을 되돌아 가는 수밖에 없었다. 그제서야 눈에 들어온 큰 재활용 쓰레기통을 보니 내부 사람들만 드나드는 장소 같았다. 

그리고 그곳에서 목격하게 된 것이다. 자연의 일부인 인간, 그 인간에게서 나온 또 다른 아이들은 활짝 열려진 문으로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열심히 발효되고 있었던 것이다..


너무 가까이 간 것일까? 상하로 입은 니트 재질의 옷에 베인 건지 내게서 고향의 냄새가 나는 것 같았고 같이 간 일행은 자꾸만 나를 피해 다니기 시작했다..


부랴부랴 왔던길을 돌아오니, 뒷간으로 출입중인 나이 지긋하신 아주머니들이 보였다. 옛날 추억이 떠올라 신나신건지 너도나도 즐거운 표정으로 뒷간으로 쪼로록 들어가셨다. 옆에 위치한 최첨단 문명이 만들어낸 화장실엔 눈길도 주지 않은 채, 같이오신 일행인 듯한 아저씨 부대도 함께.

이 뒷간은 말 그대로 1400년대 부터 지금까지 사용 중인 '진정한 뒷간' 인 것이었다. 호기심에 나도 슬쩍 들어가보니 문은 가슴팍 까지 올까말까 싶게 낮으며 그 문을 넘어 시선을 돌리니 목조 마루에 구멍 하나만 있는 매우 심플한, 인간의 자연스런 행위의 결과물이 바로 아래로 떨어지는 전형적인 '옛날' 화장실이었다. 그러니까 내가 금방 뒷편에서 열려진 뒷문으로 본 그 아이들은 그러니까 몇백년 된 것은 아니고 현대 인구가 만들어낸 결과물이었던 것. 심플한 나무 구멍 옆 발을 디디는곳 근처엔 톱밥인지 다른물질인지 모를 (톱밥이길 간절히 바란다) 것들이 뿌려진 것인지 묻은 것인지 무튼.. 있었다.


아름다운 선암사에서 나는 컬투쇼에나 나올법한 사연 하나를 가지고 왔다.


고작 생각나는게 ㄸ....똥...............똥이라니........!!!!!!! ㅠㅠ


Ps. 브런치 태그는 고르는것 말고 입력좀 할 수 있으면 좋겠다. 난 똥..똥을 입력하고 싶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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