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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연미 Jan 19. 2022

소리로 공간을 열다.

시작의 순간, 소리와 음악을 세팅하라.



제주도 중산간에는 감성 캠핑 ‘어라운드폴리’가 위치해 있다. 이곳은 제주도 전통 가옥을 모던하게 해석하여 ‘롯지’라는 공간을 콘크리트와 목조로 지어 놓았다. 꽤 넓은 부지, 서로 독립된 거리에 2~3층으로 구성된 ‘롯지’가 있고 각 ‘롯지’마다 캠핑 의자에 앉아 커피를 내리거나, 고기를 구워 먹거나, 해먹을 하거나, 캠핑처럼 불멍을 즐길 수 있는 앞 뒤뜰 공간이 있다. 개방감과 독립감, 캠핑의 로망과 고급 펜션의 장점만을 잘 접목해 깔끔하고 편하게 머물다 갈 수 있는 독특한 공간이다. 캠핑 감성의 넓은 공간이라 주차장에서 숙소까지는 거리가 있어 트롤리에 짐을 모두 싣고 가야만 했다. 






그 공간의 플레이리스트



우리가 ‘롯지’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감성적인 음악이 플레이되기 시작했다. 마치 누가 환영을 해 주듯 문을 열면 음악이 시작되도록 세팅되어 있었던 것이다. 음악 선별도 감성 캠핑에 딱 맞는 음악이어서 달리 준비해 간 블루투스 스피커를 꺼내지 않고 내내 그 음악을 듣게 되었다. 그 음악이 무엇인지 궁금해할 게스트들을 위해 펜션 한 켠에는 지금 듣고 있는 음악의 플레이 리스트가 정갈하게 정리된 작은 종이가 있었다. 사진을 찍어왔고 서울에 올라와 나의 플레이리스트에 ‘어라운드폴리’라는 이름의 폴더를 만들어 똑같은 노래와 순서로 다운로드하여 두었다. 가끔 그때의 감성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그 플레이리스트를 켠다. 자연스럽게 그때의 좋았던 추억이 살아난다.








어딜 가든 음악은 흔하다. 소리도, 소음도 넘쳐 난다. 우리는 집에서 늘 TV를 켜 놓고 집을 나서면 이런저런 수많은 소리들에 노출된다. 차들이 오고 가는 소리, 사람들의 말소리, 카페의 음악 소리, 엘리베이터 층수 안내 등 모든 기계에서 흘러나오는 백색 소음으로 가득하다. 드문 드문 재난 알림으로 드르륵거리는 핸드폰 소리도 성가시다. 들리지 않도록 소리를 꺼둔 핸드폰 진동 모드, 그 마저 깜짝깜짝 큰 소리로 울려대곤 한다.


도심 소음을 피해 캠핑이라도 가면 바로 옆, 앞 텐트 한 장으로 걸쳐 들려오는 각종 시끌시끌한 소리에 또 함께 버무려진다. 10시 소등을 하고 누워도 옆 텐트끼리 서로에게 누가 될까 조용히 이야기하며 서로에게 피해가 되지 않게 잠을 청해야 한다. 소리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곳에 살고 있다. 좋은 음악 소리마저 또 다른 소리와 중첩되어 이내 싫어질 때도 있다.










언제 어디서 무엇이 들릴지 미리 기획하는 것



음악과 소리가 넘쳐나는 시대에 소리 연출의 핵심은 ‘언제 어떤 순간에서 무엇이 들리게 설정하는가?’다. 조용한 곳에서, 의외의 장소 또는 순간에서 생각하지 못한 음악이나 소리가 들리게 되면 어떨까?

몇 년 전 일본 도쿄 출장 중 어느 유명 고급 카페에 시장 조사 겸 들렀다. 유명 화장품 회사에서 운영하는 카페였다. 정적이고 주문 목소리마저 작게 해야 할 정도로 조용한 고급 디저트 카페였다. 


잠시 화장실에 들렀는데 반짝 순백의 타일로 마감된 화장실이었다. 화장실 문을 열고 앉자마자 어디선가 묵직한 ‘뎅~!’ 하는 종소리가 들렸다. 명상할 때 자주 듣는 ‘싱잉 볼’ 소리 같았다.  바쁜 일정으로 정신없었던 머리가 멍해지면서 선명해지는 순간이었다. 마치 종교의식을 치르듯 나만의 시간을 가졌던 그 짧은 찰나가 기억에 남아있다.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예상치 못한 소리를 들었기 때문이다. 


그 회사에서는 모든 고객들이 화장실 문을 여는 순간에 그 종소리가 한번 머리 위에서 울리도록 설계한 것이다. 화장품을 사러 왔다가 차를 천천히 음미하게 된 고객들에게 자신들의 화장품은 마치 마음과 머릿속마저 정화시킨다는 무언의 복선을 암시하듯 적절한 순간에 울리는 짧은 종소리는 많은 광고 효과를 뛰어넘는 장면을 연출하기에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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