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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성씨 Jan 02. 2024

초조함을 건너는 법



어떤 15분은 10시간 업무보다 괴롭다.

중요한 일, 사건 사고를 앞두고 내가 할 수 있는 게 거의 아무것도 없을 때. 나는 차가운 피가 발끝부터 손가락 끝까지 한 바퀴 도는 기분이 든다. 다른 데에 정신을 팔면 시간이 조금 더 빠르게 흐른다고 하는데, 기다리고 있는 사항의 중요성이 커서 도무지 다른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올해는 무언가를 기다릴 때 그런 오싹함을 종종 느낀다. 얼마 전 1,120개의 주문을 쌓아 두고 물건이 도착하기를 기다리면서도 그랬고 3주를 기다려 받은 물건이 막상 주문한 것과 색이 다를 때도 그랬다. 바다 건너 판매자의 답장이 올 때까지 손톱을 뜯으며 나는, 요동치는 찰나가 지나가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다. 

사건 사고 없이 모든 일이 흘러가면 정말 좋겠지만.


그렇지 못할 때는 원만한 해결책을 빠르게 찾는 편이 낫다. 

전화기를 들고 고객님 한 분 한 분에게 상황을 설명하면서 손가락을 꾹꾹 누른다. 


상상 속 고객님은 분노와, 불평과, 짜증의 아이콘이었지만 실제로 수화기 너머 전해지는 목소리는 참을성 있고, 따뜻하다. 도리어 상황을 알려주어 고맙다고 격려를 받기도 했다. ‘죄송합니다’, 와 ‘감사합니다’,를 반복하면서 물음표가 마침표로 바뀔수록 달달 떨리던 다리도 가지런히 바닥에 붙었다. 


한 바구니 가득 찬 운송장을 빠짐없이 체크하고 나니 마음이 가라앉는다. 이제 도착한 물건을 예쁘게 포장해서 넣기만 하면 된다. 정리된 운송장을 택배봉투에 붙이면서 그림자 놀이를 생각한다. 손가락 하나만 한 호랑이가 손전등 앞에 서면 벽을 꽉 채우는 마법. 어렴풋하고 큼직한 너울만 보면 방문을 닫고 도망치고 싶은데 실체를 만지면 웃음이 난다.


어떤 어리석은 동물은 무섬증이 일 때 땅을 파고 머리를 집어넣는다고 했다. 눈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으면 괜찮다고 믿는 것이다. 그 사이 큼직한 몸뚱이는 그대로 적에게 노출되고, 상황은 결코 더 나아지지 않는다. 도망칠 수 없는 일들이 훨씬 많다. 목에 주름이 지는 것. 이제 넷이 된 팀원의 마음을 하나로 모으는 것. 아직도 익숙하지 않은 집안일을 책잡히지 않게 해내는 것. 훌쩍 늘어난 고정비를 능가하는 성장을 만들어 내는 것.

눈에 보이지 않아도, 문제는 해결되기 전까지 요지부동 버틸 것이다. 


두려움이 손쓸 수 없게 커지기 전에 마주하는 것이 낫다. 막상 건드리면 내 생각보다 별것 아닐 때가 더 많지 않았나. 혹여 예상보다 거대한 말썽거리라면 하루라도 빨리 도움을 요청하면 된다. 

‘할 수 없어’가 잠식하기 전에 헤엄을 치면 살 수 있다.

힘을 빼고, 발장구를 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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