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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성씨 Jul 06. 2024

사장인데 엄마까지 되려니

생각이 끊이질 않네


고민이 시작된 건 꽃이 피기 시작한 3월이었다.

상반기와 하반기 매출이 2배 이상 차이가 나는 것을 줄여보려고 안간힘을 쓴 봄과 여름이었다고, 생각한다.

1월부터 6월까지 매출은 전년 대비 딱 2배 늘었으니 수고했다고 어깨를 두드려 줘야할 지

그만큼 비용이 늘어 수익률은 떨어졌으니 잘 좀 하자고 질책을 해야할 지 모르겠어서

해가 뜨면 기분이 좋고 좀 흐리면 우울한 채로 7월을 맞았다.


머리 속은 늘 복잡하다.

아주 열심히 걸어서 원점으로 돌아온 것은 아닐까. 지금 이 방법이 최선인가. 더 빠르고, 더 효과적이고, 더 훌륭한 길은 없나에 대한, 생각, 생각들이 꼬리를 문다. 어떤 생각은 고맙고, 대부분은 시간 낭비다. 불필요한 생각이 들러붙으면 물먹은 솜처럼 기분도 무거워지기 마련이라, 떨쳐내려고, 걷는다.


어제도 오랜만에 해가 좋아서 30분 정도 동네 산책을 했다. 길고 눅직한 초여름의 뙤양볕을 걸으며 작년, 어느 여름 밤들을 떠올린다. 새벽에, 불러주는 이도 없이 술에 취해 몇 시간이고 걷고 걸었다. 혼자서, 걷다가 술이 조금 깨면 다시 술집에 들어가 조금 마시고, 또 한참을 걷다가 조금 깨면 다른 곳에 들어가 마시고, 더이상 지쳐서 걷지도 마시지도 못하게 되어서야 겨우겨우 침대에 기어들었다. 마음이 텅 비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올해 그런 밤이 하루도 없던 것은 내 멘탈이 아주 건강해져서라기보다 물리적으로 불가능해서, 일 것이다. 혼자 몸이 아니니까 당연히 술이며 카페인이며, 그런 것은 입에 댈 수 없다. 뱃속에 누구 하나 들어섰다고 마음이 오셀로판처럼 뒤집혀 하얗게 변하기라도 하는걸까. 숨쉬듯 들이키던 절망이 조금은 옅어진 기분이다.


예비 엄마가 된 것이 너무 기뻐서 내 삶이 뒤바뀌었다거나, 그런 것은 분명 아니다. 오히려 아주 준비되지 못한 편에 가깝다. 지금 생각으로는 이름 붙이지 못한 아이보다 내가 더 소중하다. 너무 불경한 생각이라 차마 입밖에 내지 못하지만, 행여 누가 들어도 '막상 태어나면 다르다'고 하겠지만. 누구의 엄마, 누구의 아내로만 살아갈 생각은 조금도 없다.


오직 세 아이의 엄마이자 한 남자의 아내로 살아온 우리 엄마가 들으면 기가 찬다고 하려나. 대부분의 여자가 묵묵히 짊어지는 그 역할을 가볍게 여기면서까지 이루려고 하는 게 도대체 뭐냐고 물으실까. 그래서 나는 그 답을 찾기 위해 온갖 거창한 것들을 생각해보는 지도 모르겠다. 세상을 바꿀 엄청난 일을 하기 위해, 엄마의 짐은 좀 가볍게 매겠다고 변명하기 위해서.


알겠지만 그런 것은 없다. 물론 몇몇의 노력과 수고로 지구인의 일상이 가깝고, 빠르고, 새롭고, 다채로워지지만, 지금까지 평범했던 내가 어느 날 갑자기 화성에 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최선을 다해 내 앞마당만 잘 가꾸어도 훌륭한 삶인 것이다. 그러니까 나는 내가 더듬어 가꿀 수 있는 범위의 마당에 꽃도 심고 고구마도 캐고 그렇게 살고 싶은 것인데, 이 소박한 꿈을 위해 김장은 종갓집에 맡기고 설거지는 식세기에 맡기고 밥은 박사님이 만든 분유로 하고 육아는 각종 육아템과 이모님께 맡기며 살겠다면, 너무 이기적인걸까.


누군가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그래, 그렇게 살면 된다, 그렇게 살고 싶다면 그만큼 벌면 된다고 한다. 재능을 팔아 돈을 벌고, 벌어들인 돈으로 편리함을 사고, 그러고도 남음이 있을 만큼 다재다능한 사람이 되면 된다. 문제는 없다. 이 문장에서 재능에도 자신이 없고, 벌어들임에도 한숨이 나온다면, 앞마당이고 꽃이고 뭐고 주어진 역할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꿈을 꾸기엔 현실이 너무 무거운 상태니까.


덧셈과 뺄셈처럼 깔끔한 정리가 나를 속상하게 한다. 어느 것 하나 공감가지 않는 부분이 없는 현실적인 말 앞에서 종이에 끄적인 그림들은 초라한 낙서가 된다. 이미 시간은 충분했고 그 긴 청춘의 해 동안 이룬 것이 이게 전부라면 이제 그만 순응하라는 명령이, 그러니까 뭐 좀 해보려는 마음도 접고 그냥 하던대로 살라는 소리가, 점점 커진다.


포기하면 편하다는 말은 때로 진실이다. 인생의 난이도가 높아질수록 포기는, 더 달콤한 선택지가 될 확률이 높다. 그래서 온전한 '나'로 살고자 하는 열심도 하루하루 조금씩 흐려지다 어느 온데간데 없어질까봐 겁이 난다. 어느 문득, 잠에서 깨어 일상을 돌아보았을 때, 인간 조윤성은 하나도 남지 않고 엄마, 아내, 딸과 며느리로서의 '나'만 남아있다면, 나는 충만할 자신이 없다.


잠이 점점 줄어든다. 아이가 태어날 날이 가까울수록 기대와 설렘이 높아지는, 딱 그만큼 불안도 커진다.

사장님 없이도 회사와 매출이 괜찮을까. 지금까지 목표했던 것 정도로 충분한가. 아는 것이 많아질수록 부족한 것이 늘어나고 뭐라도 팔아 메꾸고 싶은 마음이 밤낮 울고 보챈다. 좋은 엄마가 되고 싶은 마음은 내가 무엇을 해 줄 수 있는가를 자꾸만 묻는 것이다.


복잡한 머릿속은 납작했던 배가 불러온 시간만큼 이 과정을 실타래처럼 반복했다. 나의 열 달은 그렇게 끄트머리를 향해 간다. 이제부터 일어날 일은 지금까지의 노력이 감긴 힘으로 알아서 굴러갈테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후회, 또는 감사로 바라보는 것 뿐이다. 좋은 생각으로만 열 달을 오롯이 채우지 못해 미안한 마음이다. 소파에 길게 누워 이솝 우화, 모차르트의 클래식을 듣기보다 브랜드 스토리, 언더독이 시장에서 승리하는 법같은 글을 더 많이 읽은 엄마에게서 어떤 아이가 태어나려나.


내 고민과 별 상관없이 시간은 흐르고, 아이는 자라고, 고맙게도 매출 역시 조금씩 늘어난다. 어쩌면 지금 하는 것도 불필요한 걱정, 기분을 솜처럼 무겁게 하는 소나기같은 생각일 지 모른다. 주변을 기웃거리기보다 오늘 내가, 나로서 할 수 있는 것에 최선을 다하다보면 - 행복한 사장님이자, 행복한 엄마로 웃는 날도 오겠지, 그냥 딱 그 정도만 생각하며 살면 될는지도.









3-4개월간 매주 토요일을 행복하게 해주었던 랜선미술공방이야기가 지난주로 끝이(!) 났습니다.

작성은 끝났어도 삶은 계속 되기에 계속 적다보면 또 나눌 말들이 생기겠지요..?

읽어주신 분들, 감사합니다. 브런치 북으로 발행해 보는 건 처음이네요 : )

https://brunch.co.kr/brunchbook/little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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