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쇼핑몰은 파티용품을 팔았었는데 접은 이유가 진짜 황당하다.
가장 잘 팔리는 상품이었던 숫자풍선이 광고 없이 1 페이지에 잘 노출되다가 차츰 밀려 3페이지까지 떨어지자 유입수도, 매출도 뚝뚝 떨어졌다. 그게 무서워서 그만뒀다.
당연히 모든 상품이 판매 수명도 있고 운도 있고 게다가 숫자 풍선이야 중국에서 누구나 가져다가 팔 수 있는 것이니 경쟁이 당연한 건데 다른 제품들을 더 팔아보거나 나만의 상품을 개발하기보다 '안 할래' 해버린 내가 참 우습다.
두 번 째도 비슷했다. 그 때는 옷을 떼다가 팔았는데 이거 저거 유행한다는 옷 스타일을 사입해서 부지런히 찍고 올리고 찍고 올려도 영 반응이 없었다. 무관심을 견디는 게 힘들었다. 스타일에 대한 고민이나 고객의 니즈같은 건, 없었다. 그냥 돈을 벌고 싶었다. 소리 소문 없이 열었다가 아무도 모르게 문을 닫았던 두 번째 쇼핑몰 이후로 나는 물건을 파는 일에는 좀 소질이 없는가 보다는 생각을 했다.
슬프지만 그래도 뭔가를 팔아야 했다. 퇴사한 지는 1년 반이 넘어가고 있었고 주머니를 뒤적이면 바닥이 만져졌다.
물건은 안되겠으니 내 시간을 팔았다. 그림을 그리는 일에 시간당 3-5만원을 내겠다는 사람은 숫자풍선을 사는 사람보다는 적었지만 테디베어 코트를 사는 사람보다는 많았다. 해바라기도 그리고, 공작새도 그리고, 호숫가 풍경도 그리면서 오랜만에 행복했다. 작은 수입이라도 내가 오롯이 나의 팔과 발로 벌어내는 소득이 있다는 것이 기뻤다.
코로나가 오지 않았다면 나는 계속 미술 공방 선생님으로 살았을까. 그랬을지도 모른다. 더 이상 시간을 팔 수 없게 되었을 때. 그래도 월세를 내야하는 날이 꼬박 꼬박 다가오는 것을 보면서. 무언가를 팔아야한다면 첫 번째와 두 번 째 쇼핑몰처럼 아무도 봐주지 않아도 계속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항상 내 옆에 있었고 앞으로도 계속 있을 것들. 물감과 파스텔과 색색의 종이들은 그렇게 그 때부터 오늘까지 내 일상에 달라붙어있다.
시작부터 떼돈을 벌어서 운 좋게 바퀴를 굴려 가는 사람도 있지만 나의 회사는 아주 느리게 계단을 오른다.
하루에 100명이 사는 날이 있고 10명이 사는 날도 있다.
어제는 웃고 오늘은 우는 날들을 지겹게 걸어오고 나서
확실히 알게 되는 것은 내가 이 작은 시장의 한귀퉁이에서 물감을 팔고 종이를 파는 일을 그만두지 않으리라는 것이다.
그림을 너무 사랑해서 이 일을 한다고 말할 자신은 없다.
그만두기에는 아직 못다한 것들이 너무 많다는 것만 안다.
내가 만든 부채가 어느 군부대에서 만들기 재료로 쓰이고 공룡 모양 종이가 제주며 부산의 학교 책상 위에 펼쳐진 것을 생각하면 재밌다. 신기하고 감사하다. 세상은 넓고 그릴 것은 무한히 많다. 상상력을 펼쳐놓을 그릇을 만드는 일은 평생 해도 다 못하지 싶다. 더 좋은 도구, 더 괜찮은 제품만 생각하면서 살다보면 주먹만한 눈덩이가 데구루루 굴러 언제 이렇게 됐지, 할 날이 오지 않을까.
연말이 다가온다. 고객님들이 출근 하셨을 때 우리가 그간 차려놓은 밥상에 젓가락 놓으실만한 제품이 많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아, 이렇게 생각하기까지 5년이 걸렸다. 마음 놓고 사랑할 고객과 엉덩이 붙이고 앉을 시장, 열과 성을 다해 만들 제품군. 이 3가지를 깨닫는데에 그렇게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아직도 배우고, 깨달으면서 올라야 할 계단이 참 많다만. 내 첫 계단은 3페이지로 밀린 숫자풍선에 대한 회피였으니, 도망치지 않는다면 일단 우상향이다. 계속 걷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