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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패셔니스타 Mar 21. 2024

이별 연습 1

너와의 8년, 모든 순간이 좋았다.

 아침에 일어나니 몸이 찌뿌둥하고 기운이 없었다. 2월 초 감기를 심하게 앓으면서 축축 처지던 컨디션을 조금씩 회복하는 중이었는데 이상한 일이었다. 입 안이 까끌까끌하여 밥알이 넘어가지 않았다. 아침 겸 점심은 결국 한술 뜨다 말았다. 갑자기 영하로 뚝 떨어진 날씨, 창밖으로 을씨년스러운 바람이 불었다. 두꺼운 패딩 점퍼에 목도리를 둘둘 말고 마스크까지 완전무장하여 눈만 내놓은 채 집을 나섰지만, 자꾸만 몸이 움츠러들었다. 화요일과 금요일은 귀여운 초등부 아이들 대신 무서운 중등부 아이들과 수업이 있다. 겨울 방학을 보내며 콩나물처럼 키가 쑥 크더니 갑자기 철이 들어 말수가 부쩍 줄어든 중1 새내기들과 말하는 법과 웃는 법은 진즉에 잊어버린 중2 중3들이다. 오늘은 또 무슨 재롱을 떨어 이들을 즐겁게 해 줘야 하나 싶다. 잠든 개그 본능을 억지로 깨워야 하는 부담스러운 날이기도 하다. 노트북을 켜며 혹시 잊은 일정이라도 있는지 달력의 메모를 들여다봤다. 그 순간 갑자기 깨달았다. 아침부터 그렇게 몸이 찌뿌둥하고 기운이 없었던 이유를. 그날은 승윤이와의 마지막 수업이었다.     


 막 2학년이 된 승윤이가 처음 학원 오던 날이 생각난다. 승윤 어머니는 두 살 터울인 누나가 학원에 적응해 즐겁게 다니자 봄 방학 끝날 즈음 둘째도 잘 부탁한다며 내게 보내셨다. 보통 손위 형제나 자매가 학원에 다니고 있더라도 등원 첫날은 쭈뼛쭈뼛 내키지 않는 걸음으로 어머니와 함께 학원 문을 들어서는 아이들이 많다. 승윤이는 혼자서 마치 소풍이라도 온 듯 가벼운 걸음으로 내 앞에 나타났다. 누나인 예지도 그랬지만 승윤이는 특히 사랑받은 티가 많이 났다. 흰자위가 보이지 않을 만큼 까맣고 큰 눈동자를 가진 승윤이는 나를 보자 배꼽 인사를 하며 생글거렸다. 깊고 까만 눈동자 때문인지 아이는 늘 꿈꾸는 듯한 표정이었다. 어린 동생들이 장난을 걸어올 때도 있었지만, 승윤이는 늘 웃으며 장난을 받아주었다. 그래서인지 승윤이가 속한 반은 언제나 분위기가 좋았고 까르르 웃는 소리가 창문 너머까지 들렸다. 공부가 뭐 그리 재미있는지 30분 일찍 학원에 도착해 칠판에 고사리 같은 손으로 알파벳 대소문자를 가득 적어 놓고는 맞추기나 글자 조합 놀이를 하자고 조르곤 했다.           



호수처럼 깊은 눈동자를 가진 아이

 하루는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키고 있는데 저 멀리 하얀 토끼 탈이 보였다. 귀엽기도 했지만 요즘 누가 저런 걸 밖에서 쓰고 돌아다니나 싶었다. 토끼 탈이 폴짝거리며 학원 건물로 들어섰다. 도대체 누군지 너무 궁금한 나머지 나는 문을 살짝 열고 복도를 빼꼼히 지켜보았다. 승윤이가 종이로 만든 하얀 토끼 탈을 쓰고 복도 끝에서 걸어오는 게 아닌가. 미술 시간에 만든 작품을 쓰고 왔다며 자랑하는 아이가 너무 예뻐서 기념 촬영을 하여 학원 밴드에 올리고 어머니께도 사진을 보내 드렸다. 보통 아이들은 “사진 찍지 마세요!”라며 도망가거나 얼굴을 가리며 모자이크 처리해 달라며 난리 칠 텐데 승윤이는 오히려 손가락 브이를 하며 즐거워했다. 다른 사람의 눈을 많이 의식하는 또래 아이들과 다르게 승윤이는 남들에게 자신이 어떤 모습으로 비칠지 그리 신경 쓰지 않았다.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의문이 있으면 손을 들고 질문했고 공부하다 모르면 이해가 안 가니 다시 설명해 달라 말했다. 승윤이는 그렇게 자기만의 속도로 서두르지 않고 차분하게 공부했다. 사춘기가 오기 전까지는.

토끼같은 귀여운 제자

 6학년이 된 승윤이는 어쩐 일인지 예전만큼 수업에 집중하지 못했다. 과제는 학원 오기 전 급하게 휘갈긴 티가 났고 그마저 손도 대지 않았다. 교재를 학교나 집에 두고 오는 날이 늘어갔다. 꿈꾸는 표정이던 아이는 정말 꿈꾸는 아이가 되어 턱을 괴고 멍하니 자주 생각에 잠겼다. 몸은 교실에 두고 의식은 저 멀리 안드로메다로 날아가는 승윤이가 걱정되었다. 배운 부분을 정리하여 돌아가며 발표하는 긴장되는 시간, 자기 차례가 되어도 우주를 떠돌며 귀환에 응하지 않는 승윤이를 아이들도 의아해했다. 웃음도 많고 장난도 잘 받아치던 착한 승윤이가 몇 달 사이 뾰족해졌다. 갑자기 소리 높여 따지듯 말하거나 쉬는 시간 가벼운 농담 한 번 던진 걸로 화르르 불꽃을 튀기니 아이들은 승윤이 대하기를 조금씩 어려워했다. 지각해서 멍하니 뒷자리에 앉아 있다 수업이 끝나면 뒤도 한 번 돌아보지 않고 나가버리는 날이 계속되자 걱정이 된 나는 승윤 어머니와 자주 상담을 시도했다. 어머니는 그때마다 아이가 사춘기를 심하게 겪는 것 같으니 제 페이스를 찾을 때까지 조금만 더 기다려 달라며 길게 한숨 쉬셨다. 전에는 아무리 사소한 일도 집에 오면 미주알고주알 재잘대던 아이가 방문을 잠그고 들어가 인기척도 없으니 어머니 걱정이 얼마나 크셨을까.


 승윤이네는 캠핑을 자주 다녔다. 금요일이 되면 아버지가 퇴근하자마자 아이들을 데리고 야영장으로 출발하는 날이 많았다. 승윤이는 그때마다 아예 수업을 빠지거나 수업하다 조금 일찍 나서야 해 다른 아이들의 부러움을 샀다. 2020년 코로나를 겪으며 외출이나 여행이 힘들어지자 승윤이네도 전처럼 캠핑을 떠날 수가 없었다. 설상가상 갑자기 몰아닥친 불경기의 여파로 적지 않은 자영업자들이 가게를 접었고 작은 사업을 운영하던 사람들도 다수 도산했다. 모두에게 힘든 시기였고 승윤이네도 불경기의 칼바람을 피해 가지 못했다. 교육비가 조금씩 늦어지면 나는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아 그달을 넘기고 다음 달이 되어서야 교육비가 안 들어왔다는 문자를 보냈다. 그때마다 어머니는 황급히 원비를 보내며 미안해하셨다.


 2학기가 되자 마음이 바빠졌다. 정신 무장을 단단히 시킨 만큼 아이들은 많은 양의 과제도 거뜬히 해치웠다. 꼼꼼히 공부한 덕분에 복습 시험 결과도 우수했다. 반면 승윤이는 수업에만 겨우 참여할 뿐 학습 태도는 나아질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50점을 밑도는 점수를 받고도 낭창한 표정으로 내 속을 뒤집어 놓기 일쑤였다. 예전의 나였다면 아마 책을 집어던지고 고함을 지르며 가시가 잔뜩 돋긴 모진 말로 아이를 울렸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화를 내 본들 무슨 소용이겠는가! 나는 그저 아이를 다독이며 안타깝게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2편은 다음 주에 발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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