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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패셔니스타 Sep 06. 2024

햇빛 속으로 [1]

또 하나의 인생 터널을 지나며

 차를 돌려 주차장에서 빠져나오고 있었다. 딸아이를 계절학기 수업에 내려주고 출구 방향으로 운전대를 살짝 틀었을 때였다. 어디선가 ‘쾅’하는 굉음이 들렸다. 사고가 난 건가? 어라, 왼쪽으로 큰 원을 그리는 이 묘한 느낌은 뭐지? 조금 전까지 차 앞 유리 너머로 보이던 빼곡하게 주차된 차들 대신 큰 소나무 한 그루와 하늘이 눈앞에 펼쳐졌다. 솜사탕 모양의 커다란 흰 구름이 재미난 구경거리라도 있는 듯 느릿느릿 흘러가고 있었다. 이상하다, 이 길이 아닌데. 뭔가 잘못된 게 틀림없었다. 오른발로 젖 먹던 힘을 다해 브레이크를 밟았지만 차는 잠시도 주춤하지 않고 화단 위 소나무를 향해 돌진했다. 인간의 무력함이란 이런 거구나. 차는 그대로 소나무를 들이받았다.

이미지 출처 Unsplash

 생각해 보면 여름휴가가 시작되기 전부터 정신이 반쯤 나가 있었다. 방학이 되면 아이들은 여행이나 캠프로 학원을 잠시 쉬기도 하고, 그 핑계로 다른 학원을 알아보기도 한다. 방학은 아이들이 나고 드는 일이 더 빈번해지는 시기이다. 특히 7월 말은 이사 간 아이들까지 있어서 드문드문 이가 빠진 자국 같아 수업 때마다 꽤 신경이 쓰였다. 서운하고 아쉬웠지만 계획대로 교재 진도를 마무리하고 아이들과 작별 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휴가 전날 출근길, 문자 메시지가 연이어 울렸다.

 ‘선생님, 아름이는 이번 달까지 수업 마무리하고 다음 달부터 입시 학원으로 옮기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잘 가르쳐 주셔서 고맙습니다. 건강하세요.’

 짧은 메시지 안에 더 이상 붙잡을 수 없게 만드는 모든 요소가 들어 있었다. 학원을 그만두게 된 솔직한 이유, 등원 기간, 감사함과 단호함까지. 수업을 잘 따라오고 있던 아이라 충격이 컸지만 이미 결단을 내리고 통보하는 학부모에게 더 이상의 만류는 불가능해 보였다.

이미지 출처 Unsplash

 뒤이어 몇 분 상간으로 아름이와 함께 등록했던 아이들의 퇴원 통보 메시지가 줄을 이었다. 학부모 모임을 하다 친해져 아이들을 그룹으로 묶어 같은 학원에 보내는 경우 이런 일이 가끔 있었다. 한 명이 다른 학원으로 옮기면 나머지도 줄줄이 그만두어 마음이 쓰라렸던 경험은 2년 전에도 있었지만 다섯 명이 한꺼번에 그만둔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토씨만 바뀌었을 뿐 문자 내용도 모두 판박이였다. 아이들이 들고 나는 건 일상이지만, 헤어짐은 언제나 쉽지 않았다. 아이들이 그만둘 때마다 가슴을 후벼 파는 여운이 오래 남았다. 그래도 3년을 함께 공부했는데 아이들과 인사 정도는 하고 그만두는 것이 예의라고 생각했지만, 휴가 기간과 수업이 겹쳐 그마저도 쉽지 않았다. 즐거운 휴가를 며칠 남겨 놓고 똥 씹은 기분이라니. 서운한 마음을 감출 길 없었다.


 남편에게 문자를 보냈다. 아이들이 갑자기 다섯 명이나 그만두었다고, 내가 뭘 잘못한 거냐고, 너무 서운하고 속상하다는 장문의 문자였다. 안 좋은 일이 있을 때면 부정적인 기분에 잠식되어 머리 싸매고 몇 날 며칠이고 ‘내 탓이오’를 남발하며 드러눕는 내 변변치 못한 성격을 잘 아는 남편인지라 곧바로 전화가 왔다.

 “퇴근도 안 하고 또 혼자서 들볶아대고 있었지? 내일부터 휴가니까 푹 쉬고 돌아와 또 홍보하면 되지. 너무 걱정하지 말고 빨리 들어와.”

 남편 말대로 더 앉아 있어 봐야 지금 당장 답도 없는데 나 자신을 계속 쪼아댈 게 뻔했다. 나는 대충 자료를 정리하고 집으로 향했다.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있으면 시궁창 속에서 허덕일 것 같아 집 근처 산으로 갔다. 한낮에는 뜨거운 열기로 걸을 엄두조차 못 냈는데 밤이 되자 제법 시원한 바람이 불었다. 오랜만에 신을 벗고 맨발 산책길을 걸었다. 바닥에 흩뿌려진 작은 돌과 모래가 발바닥을 오목하게 파고들어 떨어지지 않았다. 흙바닥을 디딜 때마다 박혀 있던 작은 돌 때문에 발바닥이 따끔따끔하여 속력을 낼 수 없었지만, 어둑어둑한 밤 산길을 오가는 동네 사람들의 일렁이는 이야기 소리와 귀에 익은 풀벌레 노래가 지친 마음을 달래 주었다. 일이 잘 풀리지 않거나 마음이 복잡할 때 나는 언제나 밖으로 나와 걸었다. 80년대 유행하던 디스코 풍의 팝송을 들으며 한참 걷다 보면 구슬땀이 뚝뚝 떨어졌고 흘러내린 땀만큼 기분이 한 꼬집 좋아졌다. 그런데 그날은 아무리 걸어도 도무지 기분이 좋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깊은 한숨에 맞춰 발걸음이 점점 무거워졌다.

이미지 출처 Unsplash

 몸은 산길을 걷고 있었지만 마음은 휴가가 끝난 후 몇 안 남은 아이들이 듬성듬성 앉아 있을 교실에 가 있었다. 아이들 틈으로 쌩하고 부는 적막한 바람이 얼굴에 닿았다. 중심 잡지 못하고 해이해진 마음을 다잡고 2학기 모집을 서둘러 빨리 손실을 만회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휴가 기간에 다녀올 여행 생각으로 풍선처럼 붕 떠 있던 마음에 큰 대바늘 하나가 꽂혀 나락으로 떨어지는 듯했다. 위기감이 엄습했다. 잠을 자려고 누웠지만 자는 듯 마는 듯 생각 속에 어지러이 둥둥 떠다녔다. 결국 뜬눈으로 밤을 새웠다.


 새벽 4시 50분. 평소처럼 알람이 울렸다. 겨우 몸을 일으켜 새벽 기상 모임에 참여했다. 몽롱한 기분으로 해야 할 일을 다이어리에 기록하고 언제 할 것인지 얼마나 걸릴 것인지 대충 시간을 가늠해 보았다. 그날은 딸아이 계절학교 수업이 있었다. 밤새 뒤척이며 한숨만 푹푹 쉬던 내가 안쓰러웠던지 남편이 아이를 데려다주겠다며 나섰다. 그때 남편에게 맡기고 차라리 조금이라도 눈 붙였다면 그런 불상사는 없었을 텐데.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혼자만의 시간과 장소가 절실했다. 아이가 수업하는 세 시간 남짓 학원에 들러 현 상황을 한 번 더 직시하고 홍보물을 만들 요량으로 내가 가겠다고 남편에게 고집 피웠다.     


다행 VS 불행

 ‘남편 말 들을걸.’ 씁쓸한 후회가 입 안에 맴돌았다. 나는 있는 대로 인상을 그리며 뒷목 잡는 시늉으로 차에서 내렸다. 사실 너무 얼떨결에 일어난 일이라 가슴만 쿵쾅거릴 뿐, 통증은 거의 없었다. 차가 나무를 들이받으며 튕겨 나와 여기저기 부서져 흩뿌려진 사이드미러며 헤드라이트 파편을 보자 슬그머니 화가 치밀어 올랐다. 분명히 차가 없는 걸 확인하고 좌회전했는데 도대체 저 차는 어디서 갑자기 나타난 거지? 덩치 큰 RV차량에 박혀 경차는 앞부분과 조수석이 종잇장처럼 구겨져 버렸다. 이래서 다들 큰 차를 타는 거구나.


 아무리 그래도 교내에서 얼마나 속력을 냈길래 차가 높은 화단까지 올라가 나무가 휘어지도록 들이받은 건가. 상대편 차량으로 갔다. 문을 열고 나오려고 용을 썼지만, 운전석 문이 열리지 않자 상대편 여자도 적잖이 놀란 모양이었다. 운전석 문에 움푹 파인 자국이 있을 뿐 다행히 사람은 다친 듯 보이지 않았다. 사고 난 와중에도 주차장을 빠져나가려는 차들이 경적을 울리며 차를 다른 쪽으로 옮겨 달라고 아우성쳤다. 한낮 뙤약볕 찜통더위 속에서 매미가 온 힘을 다해 지치지도 않고 울고 있었다.


 “맴맴 맴맴.”

 “아이 씨, 문이 안 열려요.”

 “빵빵.”

 “아, 바빠 죽겠는데 뭐해요? 아무리 사고가 났어도 다른 차가 나갈 수 있게 옮겨 주셔야죠.”


 사방에서 쉴 새 없이 날아오는 소음이 귓전에 윙윙 울렸다. ‘조금만 더 조심할걸.’ 후회를 곱씹다가 나는 그만 울고 싶은 심정이 되어 버렸다.

이미지 출처 Unsplash

 사고 경위를 조사하기 위해 보험회사에서 파견한 담당자가 도착했다. 블랙박스를 수거하고, 차를 견인했다. 학교 행정실에는 사고로 나무를 들이받았다고 알렸다. 연락받고 남편도 다급하게 달려왔다. 남편 얼굴을 보자마자 나는 눈물 콧물을 쏟으며 엉엉 울었다. 땀이 비 오듯 흘러 휴가 때 입으려고 아껴두었던 원피스가 흠뻑 젖어 있었다. 담당자의 진두지휘 아래 사고 현장은 재빨리 수습되었고 딸아이가 수업을 마칠 때까지 두 시간이나 남아 있었다. 이미 학원으로 가 일을 하겠다는 마음은 저 멀리 사라지고 없었다. 근처 카페로 가 시원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놀란 가슴을 진정시켰다.


 “다치지도 않고 이만한 게 어디야? 액땜했다고 생각해.”


 남편 차로 이동하면서 열 번도 넘게 들은 말이었다. 백 개를 얻어도 한 개를 잃으면 그 잃은 한 개가 아까워 배가 아플 만큼 인간은 손해 보기를 싫어한다. 천만다행으로 다치지 않았으니 백 개보다 많은 것을 얻은 셈인데도 사고 수습에 할애된 시간이며 앞으로 겪게 될 불편함과 번거로움의 기회비용은 떠올리기만 해도 눈살이 찌푸려졌다. 관자놀이가 찡 울릴 만큼 차가운 음료를 남편 몫까지 덜어와 벌컥벌컥 마셨지만, 갈증이 채워지지 않았다. 열한 번째 액땜이란 단어를 듣는 순간 나는 짜증이 솟구쳐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놈의 액땜 타령 좀 그만해!”


 방귀 뀐 놈이 성낸다고 어이없어하는 남편의 얼굴을 피해 잔에 고개를 처박고 빨대로 열심히 음료수를 빨아 당겼다. 나도 알았다. 그런 사고에서 다친 곳 하나 없이 차만 망가졌다는 건 운이 억세게 좋았다는 걸. 하지만 쉴 새 없이 걸려 오는 사고처리 관련 전화와 그제야 슬금슬금 욱신거리기 시작하는 허리와 목 통증은 다행보다는 불행의 온도를 지폈다.

이미지 출처 Unsplash

 무엇보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사고를 겪은 직후 시댁 식구들과 여행을 떠나야 하는 오늘의 일정도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 한동안 왕래도 없던 시누이가 갑자기 어머님을 모시고 바닷가로 여행을 가자고 했을 때 속에서 신물이 올라왔다. 무던한 시어머니와 무던한 며느리여서인지 함께 산 지 20년이 넘었지만 우리는 고부 갈등 따위로 한 번도 얼굴 붉힌 적 없었다. 하지만 시누이가 집에 다녀가고 나면 남편과 나는 별것 아닌 일로 말다툼하거나 평소에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던 어머니 말씀에 괜히 섭섭해져 며칠 동안 저기압으로 지내곤 했다. 그렇지 않아도 심경 복잡한 날 시누이와 함께 시간을 통째로 보내야 한다니 마음이 영 내키지 않았다.


 “여행 안 가면 안 돼? 여기저기 다 쑤시고 속도 울렁거려.”


 최대한 아픈 시늉을 하며 환자 코스프레를 시작했지만, 이미 2주 전에 극성수기 요금을 내고 숙소와 식당 예약까지 마친 남편에게 내 어설픈 연기는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계약서 쓰다 연락받고 달려와 뒷수습하며 내 기분을 맞춰 주려고 온갖 애를 다 쓰던 남편의 이마에 참을 인 세 개가 동동 떠다녔다.


 “벌써 예약도 마쳤고 소미도 집에 와서 기다리고 있는데 자기는 못 간다고 말하라고?”


 남편의 살짝 높아진 목소리는 ‘이제 떼쓰기는 그만’이라는 신호였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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