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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패셔니스타 Nov 09. 2024

선생님, 나의 선생님[3]

길 잃은 나에게 다가 온 한 줄기 빛

엄마 학교

 다음 주 월요일 저녁 수업이 되었다. 3명의 수강생이 반겨주었다. 매번 조촐하게 수업하던 아침 수업 분위기와는 사뭇 다르게 이미 친해진 듯 말을 놓고 있었다. 선생님이 PPT로 자료를 준비하는 동안 웬 남자 하나가 쓱 들어와 맞은편에 앉았다. 아, 그런데 이 사람 왠지 낯이 익었다. 큰 키에 까무잡잡한 피부, 코 위에 걸쳐진 금테 안경, 반소매와 하얀 토시 사이로 보이는 얼룩덜룩한 화상 자국. 강연회장에서 책 한 권 더 달라며 선생님과 실랑이질하던 바로 그 사내였다.


 ‘엄마 학교에 웬 아빠람.’

 막상 통성명하고 보니 특별한 동기가 있어서 엄마 학교에 왔다기보다 책을 열심히 읽고 싶어서 온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나를 포함한 3명이 동갑내기였고 그 사내도 그중 하나였다. 나는 동갑내기인 미영이, 준성이와 금방 친해졌다. 수업 들으며 같은 책을 읽고 나누다 보니 자연스럽게 우리는 서로에 대해 많이 알게 되었다.


 준성이는 틱이 있는 자녀 때문에 고민이 많았다. 어머니를 교통사고로 일찍 여의고 따뜻한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란지라 처음 가정을 꾸리고 첫 아이가 태어나자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할지 몰랐다. 아이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예뻤지만, 힘 조절이 필요했다. 절대로 아버지처럼 옛날 방식으로 자식을 키우고 싶지 않았다.


 직장 생활 틈틈이 투자를 병행하며 짭짤한 수익을 올려 큰 집으로 이사도 가고 남부럽지 않은 여유를 누리고 있었다. 좋은 아빠라고 생각했지만 첫째 놈과 둘째 놈 둘 다 머리가 커가면서 자신을 무시하는 것 같았다. 발끈해서 혼을 내기라도 하면 아이들은 방문을 쾅 닫고 들어갔다. 큰애는 잔소리를 조금만 해도 틱 증상이 심해졌기에 아이들 앞에서는 최대한 말을 아껴 있는 듯 없는 듯 생활했다.

 “나는 존재감이 없어. 지들 필요할 때만 아빠를 찾아.”

 아이를 도서관에서 진행하는 숲 체험 행사에 데려다주고 나오다 강연회에 우연히 참석하면서 나도 책 한 번 읽어 볼까 하는 생각이 문득 떠올랐다. 혼자서는 무슨 책을 어떻게 읽어야 할지도 모르겠고 무엇보다 끈기가 없어서 금방 포기할 것 같았다. 책 한 권 더 준다는 말에 엄마 학교에 등록했고 이제야 조금씩 책 읽는 재미를 알아가고 있다며 씩 웃어 보였다.


 미영이는 N 은행에서 고객 관리를 전담하는 과장급 직원이었다. 고액을 예치하거나 투자한 고객에게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부서에서 일하고 있었다. 매너 좋은 사람들도 있었지만 돈 많다고 거들먹거리며 예의라고는 찜 쪄먹은 고객을 만날 때마다 스트레스가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었다.


 “돈 많은 사람들이 더 하다니까. 하나 주면 둘을 달래. 욕심이 끝도 없어.”

 나는 강연회 날 책 한 권 더 달라며 선생님을 곤란하게 만들었던 준성이를 힐끗 돌아보았다. 준성이는 멋쩍은 듯 괜히 딴 곳을 보며 머리를 긁적였다.


 미영이는 퇴근하여 잠들 때까지 소설책을 읽으며 스트레스를 달랬다. 딸아이를 데리고 책을 빌리려고 들렀던 도서관에서 강연을 듣게 되었고 엄마 학교라는 수업에 호기심이 일었다. 다양한 사연을 안고 어쩌다 한자리에서 만난 우리는 수업을 마치면 가끔 술잔을 기울이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친해지고 나니 독서보다는 친목 도모에 더 가까운 모임이 되었지만, 마지막 수업까지 결석 한 번 하지 않고 즐겁게 참여할 수 있었다.


 독서 습관이라는 멋진 선물을 선사했던 엄마 학교는 결국 2기를 모집하지 못하고 어영부영 사무실을 폐쇄했다.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일하며 가끔 만났다. 선생님은 학습지 교사 일을 계속하며 가끔 중고등학교 학생을 위한 독서법 강의에 초빙되었다. 막 연애를 시작한 남자 친구도 생겼다.


 준성이는 여전히 아이들과 친해지려 무던히 애쓰며 좋은 아빠가 되려고 노력했다. 미영이는 고객 관리팀에서 업무 지원팀으로 옮겼다. 이제 진상 고객을 보지 않아도 된다며 그녀는 후련하게 웃어 보였다. 그리고 나는 우여곡절 끝에 노동청의 도움으로 밀린 월급을 받아 목돈을 챙겨 작고 아담한 교습소를 꾸렸다. 선생님의 분주한 새 출발을 지켜보면서 나는 누구보다 설레었고 그녀가 행복하기를 기원했다.

 세월이 흘렀다. 매월 날짜를 정해 아예 정기모임을 하자던 의기투합이 무색하게 각자의 촘촘한 삶에 허우적거리다 보니 약속을 지키지 못할 때가 많았다. 영원한 우정을 나눌 것 같았던 우리의 만남은 차츰 시들해졌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연락이 끊겼다. 휴대전화를 바꿀 때마다 연락이 뜸한 전화번호를 정리하는 습관이 있는 나로서는 굳이 그들의 연락처를 간직할 필요가 없었다. 교습소를 운영하며 바쁘게 살아가다 보니 엄마 학교는 그저 빛바랜 추억이 되어 기억 속에서 아련해졌다.     

 

가을이 오면

 며칠 전 시내 교보 문고에 갔다. 오랜만에 아이들 교재도 둘러보고 신간도 구경하며 여유롭게 서점 곳곳을 누볐다. 그때 2층 매대에 서 있던 한 남자의 뒷모습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큰 키에 까만 피부, 팔에 낀 하얀 토시의 낯익은 조합에 나는 도저히 눈을 뗄 수 없었다. 설마 하면서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넌지시 다가가 얼굴을 슬쩍 올려다보았다. 준성이었다. 나의 갑작스러운 출현에 그도 얼마나 놀랐던지 말을 잇지 못했다.

 

 10년이 훌쩍 넘어 다시 만난 우리는 반가움을 감추지 못하고 근처 카페로 자리를 옮겼다. 가족의 안부와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서로의 소식을 물었다. 무엇보다 선생님의 안부가 궁금했다. 준성이는 그 후로도 꽤 오랫동안 선생님과 연락을 주고받았다고 했다.


 “그때 선생님 연애 중이셨잖아. 좋은 소식이라도 있었어?”


 국수 한 그릇 먹었다는 말이라도 나올 줄 알았는데 준성이는 괜히 뜸을 들였다. 이윽고 그의 입에서 거짓말 같은 대답이 이어졌다.


 “그분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대.”

 “뭐?”


 머리를 세게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선생님을 마지막으로 뵈었을 때 행복해 보이던 모습이 떠올랐다. 결혼과 이혼, 독립을 거치며 선생님의 남은 인생에 사랑이라는 단어는 없다고 생각했는데 좋은 사람이 생겼다며 활짝 웃던 얼굴이 눈앞에 어른거렸다.


 “소식은 들었는데 뭐라 말해야 할지 모르겠더라. 차일피일 미루다 보니 시간만 흘렀어. 나중에 전화해 보니 번호가 바뀌었는지 선생님과 연락이 안 되더라고.”

 

 준성이와 헤어지고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나는 계속 자책했다. 뾰족한 가시 하나가 심장을 콕콕 찌르는 것 같았다. 가끔 안부 인사라도 할 걸 뭐가 그리 바쁘다고 귀한 인연을 이렇게 쉽게 놓아 버렸을까. 차창 밖으로 엄마 학교 수업을 위해 드나들던 건물이 보였다. 벼랑 끝까지 몰려 어디론가 달아나고 싶었던 그날이 문득 생각났다.

 백 마디 위로의 말보다 어깨를 조용히 토닥여 주시던 선생님의 말간 얼굴과 따뜻한 손길이 자꾸만 떠올랐다. 그렇게 큰 위로를 받았는데 정작 나는 아무것도 해 드린 게 없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얼마나 황망하셨을까? 홀로 된 시간을 견디느라 얼마나 힘드셨을까? 당장이라도 달려가 만나 뵙고 싶었지만 달리 방도가 없었다.


 집에 오자마자 나는 책장 하단의 문을 열었다. 그곳에는 13년 묵은 낡은 공책들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그 시절 책을 읽다 마음을 울리는 문장을 만날 때마다 한 줄 두 줄 필사해 둔 공책이었다. 색이 누렇게 바랜 공책을 뒷장에서 앞으로 한 장씩 넘겼다. 필사의 첫 장을 장식한 책은 선생님이 선물로 주셨던 ‘갈매기의 꿈’이었다.

 

날개의 쓰임이 단지 생존을 위해 물고기 대가리나 빵부스러기를 주워 먹기 위함이 아니라는 걸 믿는 조나단 리빙스턴 시걸은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는 비상을 꿈꾼다. 갈매기 사회 기득권자들의 거듭된 경고에도 아랑곳하지 않던 조나단은 미친 녀석이라는 오명을 달고 끝내 무리에서 추방당한다. 배척당했다는 분노와 슬픔도 잠시, 그는 멀리 떨어진 고독한 절벽에서 극한의 연습을 계속했고, 완벽한 비행에 근접해 간다.


 그때 그의 앞에 스승이 나타난다. 난다는 것은 단순히 날개를 움직여 빠른 속도로 이동하는 게 아니라 생각만으로도 원하는 장소에 간다는 걸 배우게 된 그는 이제 완전히 다른 차원의 존재 방식을 깨닫게 된다. 사랑에 대해 계속 배워 나가라는 스승의 말을 지키기 위해 그는 자신을 추방한 무리로 다시 돌아와 그와 같은 생각을 가진 자들도 그처럼 완전한 존재가 될 수 있게 도우며 새로운 꿈을 꾼다.

 처음으로 책이라는 걸 진지하게 읽어서일까? 달뜬 희열을 담아 연필로 꾹꾹 눌러쓴 감회가 공책을 한 페이지씩 넘길 때마다 수줍게 비쳤다.


 ‘매달 같은 날이면 돌아오는 공과금, 어린이집 원비, 보험금, 대출금 상환과 카드값에 목매며 아침부터 밤까지 아등바등 살아가는 게 과연 옳은 삶일까?’


 ‘내 삶의 목적은 뭘까?’


 ‘책 읽는 게 너무 좋은데 나도 독서로 비상을 꿈꿀 수 있을까?’


 ‘무리에서 쫓겨나는 걸 감수하고서라도 지켜내고 싶은 것이 내게도 있을까?’


 고단한 인생의 굴곡 속에서도 책을 읽고 새 삶을 개척하려 무던히도 애썼던 정재은 선생님, 그녀를 만나며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술 마시며 현실도피 하기보다 책 한 권을 펼쳐 드는 습관이 생겼다. 무심코 읽어 내려가다 가슴에 콕 박히는 문장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문장 속에 내 고민이 스며들어 있었다. 언어의 한계에 부딪혀 답답한 심정을 뭐라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때 정갈한 언어로 표현된 문장을 읽다 보면 그제야 내가 처한 상황과 현실을 직시할 수 있었다. 제삼자의 눈으로 나를 바라보니 누군가 내 마음을 알아주는 기분이 들어 속이 시원했고 책을 읽다 해결책을 찾는 일도 종종 있었다. 엄마 학교에서 선생님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나는 지금쯤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하루하루 닥치는 세상사에 일희일비할 테지. 주위 사람들의 말에 휘둘리며 여전히 불안해하고 있겠지.


 비가 억수같이 내리던 금요일 저녁이었다. 엄마 학교 모임의 식사 약속에 늦어 바지와 신발이 젖는 줄도 모르고 내달렸다. 막 지하철역 밖으로 나온 사람이 미처 우산을 가져오지 못했던지 서류 가방을 우산 삼아 양손으로 들고 빗물을 튀기며 후다닥 뛰었다. 택시를 잡으려는 사람들은 지나가는 택시를 놓칠세라 연신 손을 내밀며 흔들었다. 약속 장소인 카페에 들어서기 전 뛰어오느라 가쁜 숨을 고르며 물기 묻은 우산을 털고 있으려니 선생님의 모습이 창 너머로 아른거렸다. 선생님은 은은한 불빛에 의지한 채 창가 자리에서 책을 읽고 계셨다.

 시간이 멈춘 듯했다.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 주문한 음료가 나왔다며 손님을 부르는 아르바이트생의 외침, 그리고 분위기에 맞지 않는 최신가요 음악 소리로 카페 안은 시끌벅적했지만 유독 선생님이 계시는 곳만은 시간이 휘어진 듯 고요했다. 조나단 리빙스턴 시걸의 스승이 그랬던 것처럼 완전히 다른 차원의 세계가 우리 삶 속에 있다는 걸 깨우쳐 주신 선생님은 분명 그녀 몫의 사랑과 행복을 찾아 비상했으리라.


 여름에서 가을로 가는 길목 오늘처럼 비가 오는 날이면 선생님이 하염없이 그리워진다. ‘똑똑’ 창문을 두드리자 주룩주룩 흘러내리는 빗방울 사이로 번지던 선생님의 하회탈 미소가 정말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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