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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패셔니스타 Nov 30. 2024

너와 나의 해피엔딩[1]

행복은 뺄셈이 아니라 덧셈

 알람이 연이어 울렸다. 남편이 옆에서 뒤척이다 이불을 푹 뒤집어쓴 채로 내 어깨를 툭툭 쳤다.

 “아, 시끄러워. 저거 좀 어떻게 해 봐.”

 남편의 짜증스러운 말투에 떠지지 않는 눈을 겨우 비벼 뜨고 손을 뻗어 휴대전화 알람을 해제했다. 잠자리에 든 지 5분밖에 안 된 것 같은데 벌써 6시라니. 새로운 한 주를 활기차게 시작해 보겠다는 일념으로 전날 밤 맞춰 놓은 알람이 무색하게도 몸을 일으키기가 죽기보다 싫었다.

 ‘월요일이다, 공포의 월요일.’

 출근할 생각을 하니 이른 아침부터 두려움이 밀려왔다. 갱년기 증상인가? 벌써 은퇴를 고려해야 하는 나이인가? 가만히 드러누워 두려움의 진원지를 파악해 보려 눈을 다시 감았다.


 아이들의 얼굴이 하나둘 생각 속을 스쳤다. 그중 한 아이의 얼굴이 둥실거렸다. 성범이었다. 유난히 산만하여 가만히 앉아 있지를 못하는 아이였다. 몸을 연신 옆으로 흔들다 뒤로 젖혔다 엎드렸다 하는 통에 보고 있노라면 내 정신도 나갈 정도였다. 처음에는 자세가 흐트러질 때마다 똑바로 앉으라며 1분에 한 번씩 아이의 이름을 부르며 잔소리했다. 잠깐 자세를 고쳐 앉는가 싶어도 성범이는 다시 바람에 나부끼는 풍선 인형이 되어 버렸다. 자기 차례가 와도 멍하니 앉아 있다 옆에 앉은 아이가 “야, 박성범. 네 차례야.”하고 몇 번이나 쿡쿡 찔러대어야 겨우 정신을 차리곤 했다. 때로는 주제에서 벗어난 엉뚱한 이야기를 끝도 없이 늘어놓아 수업에 방해되기 일쑤여서 적당한 때에 말을 잘라야 했다. 과제를 확인하느라 아이들 사이를 돌아다니고 있을 때면 과제가 있었냐며 되물었다. 또 안 해왔냐고 핀잔을 주면 하면 되지 않냐며 퉁명스럽게 말하거나 급하게 단어를 흘려 쓰며 즉석에서 과제를 푸는 시늉이었다. 문제를 읽어 보지도 않고 답을 아무렇게나 표기하여 화를 돋우는 일도 잦았다. 친구들과 잘 지내다가도 약점을 잡아 놀리거나 말꼬리를 물고 빈정거리다 주먹질로 이어지는 일은 비일비재했다. 상대편 아이의 어머니가 도저히 참을 수 없다며 찾아와 아이들 싸움이 어른 싸움으로 번질 뻔한 일도 있었다. 성범이 어머니와 상담을 자주 했지만, 부모님도 아이를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난감한 눈치였다. 수화기 너머로 전해지는 성범이 어머니의 한숨 소리에 내가 다 미안할 지경이었다. 말썽꾸러기 성범이와 티격태격하고 나면 첫 수업을 시작했을 뿐인데도 기운이 다 빠져나갔다.


 하나부터 열까지 마음에 들지 않는 아이였다. 기분 좋게 출근했다가도 성범이가 올 시간이 되면 가슴이 두근거리고 맥박이 빨라졌다. 아이 앞에서 화도 못 내고 감정을 숨기려 하다 보니 자꾸만 스트레스가 쌓였다. 고작 애 하나에 이런 어이없는 고통을 느껴야 하나 싶어 나 자신이 너무나 나약하게 느껴졌다. 고민이 깊어 가던 차에 성범이 어머니에게서 연락이 왔다.

 “선생님, 죄송하지만 성범이 학원을 한 달 쉬어야 할 것 같아요. 어제 밖에서 축구하다 넘어져서 발목을 접질렸어요.”

 인대 손상이 심해 당분간 목발을 짚고 다녀야 하는데 집이 멀다 보니 등 하원이 어렵다고 했다.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드디어 이 악몽에서 벗어나는구나. 희열이 듬뿍 담긴 목소리를 들킬까 봐 나는 최대한 걱정하는 투로 빨리 나아 다시 만났으면 좋겠다며 아이의 쾌유를 빌었다.


 말썽꾸러기가 사라졌다. 월요일 출근길은 주말을 앞둔 금요일처럼 산뜻했다. 화를 참느라 가슴 벌렁거릴 일이 없을 거란 생각에 웃음이 피식피식 새어 나왔다.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이었다. 성범이가 사라지자 남다른 존재감을 드러내며 성범이의 난 자리를 차지하려는 놈이 있었다. 얼굴만 봐도 장난기가 덕지덕지 붙은 주원이었다. 성범이가 대놓고 과제를 안 하고 말귀를 못 알아들어 속 썩이는 타입이라면, 주원이는 지능적으로 농땡이를 부렸다. 강약 박자를 맞춰가며 어떤 날은 눈치껏 성실하게 참여하고 또 어떤 날은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짓거나 귀에 거슬리는 괴성을 지르며 수업 분위기를 흩트렸다. 성범이에게만 너무 신경 쓰느라 다크호스였던 주원이의 기행을 알아차리지 못한 나의 불찰이었다. 말대답은 물론이요, 모두가 수긍할 수 있는 규칙에도 예외적인 상황을 수도 없이 만들며 나를 시험에 들게 했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었다.


 “녹음 과제는 밤 11시까지 꼭 제출해 주세요. 선생님도 검사할 시간이 필요하니 11시 이후에 보내면 과제를 안 한 걸로 알고 다음 날 추가 과제 나갑니다.”

 “화장실 가느라 11시 1분에 내면요?”

 “11시 넘기면 추가 과제 나간다고 했죠.”

 “그러면 숙제는 끝냈는데 볼일 보느라 전송을 늦게 해서 11시 넘기면요?”

 “잊지 말고 전송 버튼을 눌러야죠.”

 “전송하려고 하는데 와이파이가 안 터지면요?”

 “...”

 차라리 숙제하기 싫다고 할 것이지 과제를 제출할 수 없는 말도 안 되는 이유를 수십 개나 늘어놓으며 내 인내심의 간을 보는 주원이. 달아오른 얼굴로 나도 모르게 언성을 높이자 아이는 언제 그랬냐는 듯 시치미를 뚝 떼며 얌전히 앉아 있었다. 주원이의 능글능글한 태도가 재미있게 비친 듯 다른 아이들까지 주원이의 말대답을 따라 하며 키득거렸다. 끝내 아이들은 내 복수심이 가득 담긴 숙제 폭탄을 안고 처량한 표정으로 교실을 나서곤 했다.


 “한 놈이 없어지니 또 한 놈이 말썽이네.”

 나는 아이들이 나간 텅 빈 교실에 앉아 화끈거리는 얼굴을 식혀보겠다고 부질없는 손부채를 펄럭였다.

 다음 날 주원이 어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선생님, 주원이 주말에 중요한 축구 시합이 있어 학교 마치자마자 훈련 가야 해요. 죄송하지만 오늘 수업 하루만 쉴게요.”

 그날 수업이 순조롭게 잘 흘러갔느냐고? 전혀 그렇지 않았다. 이번에는 상민이가 두 아이의 바통을 넘겨받았다. 단어시험 점수가 예상을 밑돌자 아무도 뭐라 하지 않는데도 상민이는 수업 내내 뾰로통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질문이라도 하면 가시 돋친 말로 톡톡 쏘아붙이며 성질을 부리는 통에 나는 수업 내내 상민이의 눈치를 살폈다. 차라리 성범이가 있던 시절이 나았다.     


[2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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