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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나의 그림자 아이야[2]

우울과 불안의 근원 들여다보기

by 패셔니스타

엄마의 시간과 나의 시간이 맞닿은 곳

집으로 돌아오자 나는 엄마 껌딱지가 되었다. 어딜 가든 엄마를 졸졸 따라다녔다.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돌봄을 해 주는 공공 보육원이 생겼다. 온 동네 아이들이 그곳에 맡겨졌다. 큰 쇠창살이 달린 철문을 지나 회색 콘크리트 건물로 들어서면 쿰쿰하고 비릿한 음식 냄새가 코를 찔렀다. 커다란 방에 소복이 모인 아이들은 파란 제복을 입은 근엄한 모습의 선생님 말씀을 조용히 듣고 있었다. 길게 줄지은 앉은뱅이 탁자에 옹기종기 앉아 먹기 싫어도 밥을 먹고 자기 싫어도 낮잠을 자야 했다.


옆에 누운 아이가 벽에 걸린 커다란 시계에 박힌 숫자를 가리키며 바늘이 5에 닿으면 집에 갈 수 있다고 말하더니 이내 잠이 들었다. 아이의 쌔근거리는 숨소리를 들으며 잠을 자려하면 할수록 정신은 더욱 말똥말똥해졌다. 선생님은 아이들 옆을 느린 걸음으로 돌아다니셨다. 이불을 덮어주거나 베개를 바로 베어주는 선생님이 지나가면 나는 실눈을 뜨고 시곗바늘부터 살폈다. 바늘 2개가 얼기설기 돌아가며 숫자 5를 몇 번이나 스쳐 지나갔지만, 짧은바늘이 집으로 가는 길은 멀기만 했다.


아침이 되면 보육원에 보내려는 엄마와 가지 않겠다고 버티는 나 사이에 전쟁이 일어났다. 반나절만 놀고 있으면 데리러 오겠다고 10번 넘게 손가락 걸어 약속하고도 막상 떼어 놓으려 하면 아빠의 옷자락을 와락 붙들며 눈물 바람이었다. 급기야 보육원 안으로 억지로 데려가려는 선생님 손을 뿌리치고 달려와 쇠창살 달린 철문을 부여잡고 세상이 떠나갈 듯 울어대면 아빠는 할 수 없이 나를 다시 오토바이에 태워 일하던 공장으로 데려가셨다. 아빠가 일하는 동안 화장실도 못 가고 퇴근 시간까지 꼼짝없이 기다려야 했지만 나는 그 편이 훨씬 좋았다. 퇴근 시간이 되어 오토바이를 모는 아빠 등을 꼭 붙잡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나는 다리를 양쪽으로 늘어뜨리고 흥얼흥얼 콧노래를 불렀다. 얼굴에 살랑살랑 부딪히는 바람 속에서 엄마 냄새가 났다.

”엄마도 힘들었겠지만 나도 진짜 힘들었어.”


술기운 때문이었을까. 무의식 밑바닥에서 고요히 웅크리고 있던 마음이 툭 불거져 나왔다.


“뭐가?”


하마터면 애써 내리누른 속엣말이 입 밖으로 불쑥 튀어나올 뻔했다. 어린 시절 나는 엄마의 지나가는 말 한마디에도 널 뛰는 기분이었다고, 외가로 유배 떠날 때마다 보육원에 갈 때마다 내가 뭘 또 잘못했는지 곱씹었다고, 야단 맞거나 실수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마음처럼 쉽지 않았다고. 그래도 늘 엄마의 자랑스러운 딸이 되고 싶었다고. 내 그림자는 그렇게 아우성치고 있었다.


하지만 시퍼런 핏줄이 툭 불거져 나온 엄마의 쭈글쭈글한 손등과 식당 일을 하며 거칠어진 손을 보는 순간 주워 담을 수 없는 말로 과거의 엄마를 몰아세우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여름에도 발이 시려 덧버선을 신는 엄마의 싸늘한 발처럼 엄마의 마음마저 시리게 만들 수는 없어서 나는 우물우물 얼버무렸다.


“아니, 애 키워 보니까 엄마 마음 알겠더라고.”


엄마는 갑자기 눈물이 그렁그렁하여 말을 잇지 못하셨다. 엄마의 눈물에 전염된 건지 뭔지 모를 감정이 차올랐다. 우리는 아무 말 없이 서로의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먼 산을 보며 눈물만 뚝뚝 흘렸다.


“우리 딸 진짜 열심히 사는 거 엄마가 잘 안다. 엄마는 네 생각만 하면 가슴이 미어진다.”


내가 자식을 키우며 힘들 때마다 엄마와 내가 보냈던 시간으로 거슬러 올라갔던 것처럼 엄마도 현재의 내 모습을 통해 과거를 투영하고 계셨나 보다. 엄마의 시간과 나의 시간이 맞닿은 어느 시공간에서 엄마와 나는 서로를 애처롭게 바라보고 있었다.

비밀과 화해

휴지로 눈물을 훔쳐내고서 괜히 머쓱해져 앨범을 빠르게 넘기던 나는 중학교 졸업사진을 발견했다. 방학 동안 끝만 살짝 말아 멋을 내려했던 파마가 너무 잘 나와 뽀글 머리 아줌마가 되어버린 여자아이가 멋쩍은 웃음을 짓고 있었다. 공교롭게도 오빠의 고등학교 졸업식과 내 졸업식이 겹쳐 엄마는 누구 졸업식에 가야 할지 당일 아침까지 고민하셨다. 3학년 대표였던 오빠의 졸업식에는 꼭 참석해야 한다며 대신 큰어머니와 사촌 언니가 올 거라는 말에 나는 풀이 죽었다.


그랬던 엄마가 졸업식 마칠 때쯤 나타났다. 졸업식 두 탕을 뛰느라 평소에는 돈 아까워 거들떠보지도 않던 택시를 잡아타고 오셨다. 졸업식 시작 전 엄마는 오빠와 미리 사진을 찍고 졸업식이 거행되는 걸 조금 지켜보다 학교 밖으로 달려 나오셨다. 치렁치렁한 한복 치마를 휘날리며 가까스로 택시를 잡아타고 기사님께 딸아이 졸업식 마치기 전에 꼭 가야 하니 세게 밟아 달라고 부탁했다. 연세가 꽤 있으셨던 기사님은 귀띔으로도 듣지 않고 안전 운행 규정을 꼬박꼬박 지키며 네거리의 신호등마다 통과하지 못하고 멈춰 섰다. 차라리 버스를 타는 게 더 빠를 것 같았다. 혼자만 여유로운 콧노래를 부르는 느림보 기사님 뒷자리에서 엄마는 발만 동동 굴렀다.

택시에서 내리자마자 엄마 생애 최고의 달리기 속력을 내며 다시 한번 한복 자락을 휘날렸다. 고무신이 벗겨질 듯 말 듯 아슬아슬한 순간을 몇 번이나 지나 턱에 숨이 끝까지 찬 엄마가 “이상으로 OO여중 졸업식을 마치겠습니다.”라는 선생님의 말씀이 끝나기가 무섭게 교실 뒷문을 열고 나타났다. 땀으로 뒤범벅된 엄마의 얼굴이 어찌나 반가웠던지 아침부터 먹구름이었던 내 얼굴은 햇살처럼 환해졌다.


“저 때는 기운이 펄펄 났지. 아, 이분은.”


엄마는 사진 하나를 가리켰다. 1년 내내 웃는 얼굴을 본 걸로 치자면 다섯 손가락 안에 꼽을 수 있던 중3 때 담임 선생님과 함께 찍은 사진이었다. 엄마는 내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담임 선생님과의 비밀 이야기를 30년이 지난 지금에야 털어놓았다.


-3편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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