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Rose in paris Jan 16. 2023

잘못은 없는데, 문제는 있다.

바라는 건 아주 사소한 것이었을 뿐인데

01. 잘못은 없는데 문제는 있다.


준비없이 마주한 풀기 어려운 문제였다. 기약없이 길어지는 프랑스의 락다운 상황에 나는 지쳐가고 있었다. 2012년, 플로리스트 공부를 하러 프랑스에 와서 꽃만 보고 달려 온 세월이었다. 혼자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네트워크를 넓혀 프랑스 현지 클라이언트들이 생기기 시작했고, 프랑스의 유명 플로리스트 선생님들과 함께 플라워 워크샵을 기획하기도 하면서 이제야 조금 자리를 잡는구나 한숨을 내쉬던 차에 맞닥뜨린 재앙이었다. 아무리 웃으며 극복해 보려고 노력을 해도 조금씩 사그러지는 생기를 붙잡기는 어려웠다. 세상은 마치 죽은 듯이 고요했지만, 마음 속은 지진이라도 난 듯이 흔들리던 날들. 아무도 만나지 않고 조용히 혼자있고 싶다는 생각 뿐이었다. 그렇게 여유를 잃고 삐걱거리던 우리는 잠시 시간을 가져보기로 했다.


‘짐깐, 그런데 시간을 가져본다는 게 무슨 뜻이지? 우리가 앞으로 계속 함께할지 말지를 고민한다는 뜻이 아닌가? 아니 우리에게 그런 옵션이 존재할 수 있단 말이야?’


지금까지 내 사전에 이별은 없었다. 그는 내가 인생을 함께하기로 결심한 첫 사람이었고, 앞으로 우리가 인생을 끝까지 함께 하는건 너무도 당연한 것이어서 한치의 의심을 가져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런 옵션이 우리 사이에 존재할 수 있다는걸 알게된 것만으로도 나에게는 큰 충격이었다. 그럴 수도 있구나. 우리가 남은 인생을 함께 하지 않을 수도 있구나. 우리도 헤어질 수 있는 사이였구나.


우리는 시간을 갖는 동안 서로에게 바라는 점을 적어서 검토 해 보기로 했다. 막상 바라는걸 적으려고 보니까 그가 넘치게 잘해주었던 장면만 떠올라서 자꾸만 마음이 짠했다. 그는 어떤 일이 있어도 100% 나를 믿어주는 사람이었고, 나의 부족한 부분들을 채워주는 사람이었고, 순수한 눈빛과 바른마음을 가진 사람이었으며, 진실된 사랑이 무엇인지 알려준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우리가 이렇게 된건 도대체 왜일까 그의 탓이 아니라면 내 탓인걸까. 도무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처음 마주하는 감정들이 두서없이 밀려오는 시간. 그리고 그렇게 고민고민해서 적어내린 바라는 점이라는 것도 그다지 대단한 것이 아니라 더 속이 상했다. 그는 내가 좀 더 외향적인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했고, 나는 우리 둘만의 시간이 더 많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맙소사. 세상 이렇게 소소한 바람들도 없을텐데 그게 상충된다니..


나는 우리가 달라서 더 잘 만났다고 생각했다. ‘이 녀석이 앞만 보고 달리던 녀석인데, 덕분에 꽃도 보고 별도 보고, 즐길 줄 알게 된 것 같아서 좋네요.’ 그를 대신해서 고마워하던 그의 친구의 말이 다시금 떠올랐다. ‘저는 꽃도 보고 별도 보고 하느라 정신이 없는데, 덕분에 척척 앞으로 나가는 법도 배우는 것 같아요’ 라고 대답하면서 밝게 웃었던 그때의 내 모습도 떠올랐다. 그렇지만 결국 우리의 문제도 우리가 다르다는 것이었다. 꽤나 많은 것이 달랐지만 가장 중요한건 우리가 가장 원하는게 다르다는 거. 잘못은 없다. 명확하게 잘잘못을 가릴 수 없는 문제는 슬프다.


그러니까, 이게 다 코로나 때문이란 말이다.



파리의 밤, 씁쓸했던 레드와인
 이야기는 늦었다면 늦은 나이에 맞닥뜨린  이별 극복기이자, 사랑의 정의를 찾아 떠난 모험기이자, 자기 자신을 발견해 가는 30 여자의 성장기. 2020년 11월, 그 날부터 시작해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평생 잊고 싶지 않은 날들의 기록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