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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se in paris Feb 15. 2023

헤어지는 마당에도 끼니가 걱정되는 관계란

이별은 처음이라서요.

나 없어도 꼭 잘 챙겨 먹어야 해요


헤어지기로  마당에도 그가 끼니는  챙겨 먹을는지 걱정이 되는 관계란 무엇인가. 러니한 마음에 혼란스러워하면서 그의 냉동실에 쟁여놓을 돈까스를 만들었다. 돈까스는 그가 가장 좋아하는 반찬  하나이면서 겹겹이 쌓아 냉동실에 보관하기에도 가장 좋은 메뉴이기 때문이다. 차곡차곡 정리한 마음을 모아 차가운 냉동실에 쟁여넣었다. 그가 이걸 하나하나  씹어 넘기면 남은 우리 마음도 깨끗이 사라지는 걸까?


그는 내가 요리를 해 주는걸 아주 많이 좋아하는 사람이었고, 나는 요리를 하는 걸 아주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요리를 하면 마음이 차분해진다. 뚝딱뚝딱- 주방의 따뜻한 소음에 마음을 가다듬으며 우리의 마지막 만찬을 준비했다. 마지막 만찬이라니 왠지 우습지만 더 이상 이걸 잘 표현할 단어가 없으므로 그냥 사용하기로 한다.


그가 좋아하던 갈비찜을 만들고 있을 때 갑자기 그가 스윽 다가와서 조용히 양파를 써는 것을 도와주었다. 같이 요리를 하는 모습이 좋았다. 잔잔한 음악을 틀어두고 엉덩이를 오른쪽으로, 왼쪽으로 씰룩이며 같이 요리하는 건 나의 로망이었다. 내가 그에게 이걸 말한 적이 있었던가? 없었던가? 있었어도, 없었어도 문제다. 소통. 그래 소통이 열쇠였다. 원하는 바가 있으면 꼭 말로 표현을 하고, 들으면 이해하고 노력하는, 그 소통.  문득 그의 로망은 뭘까 궁금했지만 묻지는 않았다. 그가 말을 안 했던 걸까, 아니면 그가 말을 했던걸 내가 기억을 못 하는 걸까?


슬픈 눈으로 작게 미소를 띄우는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시력이 아주 나빠서 안경을 끼면 눈이 콩알만 해 지는데 나는 이상하게도 그게 무척 귀엽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오늘따라 왜 그것도 짠한 건지 마음이 이상했다. 아무튼 우리는 헤어짐을 함부로 말하는 커플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 미소가 화해의 미소가 아니라는 건 알 수 있었다. 글쎄, 그날은 별 모든 게 다 눈물이 날 것 같은 밤이었는데, 무엇보다도 우리가 주방에서 함께 요리하는 모습이 너무 좋아서, 그게 하필 마지막 날이라서 자꾸만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인생은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 했던가. 정말로 멀리 지나고 나서 보니까 꾸역꾸역 눈물을 참으면서 마지막 만찬을 나눠먹던 우리가 마냥 귀엽고 애틋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내 생에 이별은 처음이라. 어떻게 해야 되는 건지 잘 몰랐다. 음, 그냥 안녕하고 가면 되는 건가? 그러면 진짜 끝나는 건가? 그래도 우리가 함께한 시간이 있는데 그렇게 끝나는 건 이상한 것 같고, 뭔가 잘 마무리를 해야 할 것만 같았다. 마지막 선물을 하나 준비했다. ‘2013년은 나에게 정말 특별한 해였어요. 오빠를 만났으니까요…’라고 시작하는 편지까지 하나 고이 적어서 건넨 선물은 2013년 밀레짐 샴페인이었다. 아 샴페인이라니. 헤어지는 게 뭐 좋은 일이라고 파티라도 하라는 건가 싶었겠지만 그런 비꼬는 의미는 전혀 없었다. 2013년은 나에게 정말로 특별한 해였고, 그에게도 특별한 해로 기억되기를 바랐다.


나는 우리가 처음 만난 날을 떠올렸다. 우리는 어느 날 저녁 Hotel de ville 역에서 만났고, 샴페인이 왜 샴페인이라고 불리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하며 루프탑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샴페인은 샴페인 지역에서 만드는 것만 샴페인이라고 부를 수 있어요’ 샴페인을 마시는 걸 꽤 좋아했는데, 그런 사실은 그날 처음 알았다. 전면유리로 된 루프탑 레스토랑에서는 아름다운 파리의 야경이 한눈에 내려다 보였다. 특히 가까이에서 노오-랗게 빛나는 노트르담 대성당의 모습이 예술작품처럼 아름다웠다. 저녁 식사와 함께 와인 한 병을 비워내는 동안, 나는 ‘좋아하는 색깔, 좋아하는 숫자, 좋아하는 동물, 이제는 강아지를 키울 수 없게 된 이유 등등..’ 조잘조잘 많은 이야기를 쏟아내었고, 그는 깍지를 낀 두툼한 두 손을 턱 아래 곱게 받친 채 내 이야기를 경청했다. 미소를 머금은 채 용수철 인형처럼 반사적으로 고개를 끄덕끄덕이고 있던 그의 맑은 눈빛이 좋았다. 그날의 눈빛과 표정을 떠올리면 나는 쉽게 눈물이 난다.


코를 훌쩍이면서 적은 편지와 고심해서 고른 밀레짐 샴페인이었다. ‘이 헤어짐으로 그날의 순수한 눈빛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어요.’라고 마무리했다. 이렇게 하면 되는 건가 긴가민가 하면서 이별이란 걸 시작했다.


이 이야기는 늦었다면 늦은 나이에 맞닥뜨린 첫 이별 극복기이자, 사랑의 정의를 찾아 떠난 모험기이자, 자기 자신을 발견해 가는 30대 여자의 성장기. 2020년 11월, 그날부터 시작해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평생 잊고 싶지 않은 날들의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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