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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른아이 Jan 25. 2021

'엄마'의 'Mom'이라는 것

08. '엄마'로 향하는 마지막 관문

 





32주가 되어 만삭촬영을 하였다. 조리원 연계로 해주는 무료촬영이어서 무조건 하자! 싶었는데 막상 날짜가 다가오니 살도 찌고 예쁜 옷도 안 맞아 찍고 싶지 않은 마음이 컸다. 하지만, 이 순간을 또 언제 만날 수 있을까 싶어 간직하기로 했다.


사진 촬영하고 나서 동영상도 제작해주는데 남편의 손글씨가 담긴 편지와 짧은 영상편지가 등장했다. 남편의 따뜻함이 좋아서 결혼했는데 영상 속 남편의 마음 속 얘기를 듣는 순간, 다시 한 번 이 사람과 결혼하길 참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32주가 넘어가면서 시간이 엄청 빠르게 흘렀다. 깊게 생각하지 않았는데 성큼 다가와 있는 출산은 나를 너무 무섭게 만들었다. 출산의 고통도 무섭고, 아이가 태어나서 바뀔 환경도 두려웠다. 남편과의 관계, 시가와의 관계, 본가와의 관계. 



"모든 게 아이가 태어나면서 달라지겠지. 간섭도 생길거고, 보이지 않는 팽팽한 선도 생길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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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주가 되어 출산휴가에 들어갔다. 사실상 연가를 많이 모아둬서 정식 출산휴가 날짜는 37주6일부터다. 출산휴가 전에는 너무 쉬고 싶었는데 ... 막상 휴가가 다가올수록 컨디션이 회복되는 느낌이 들었다. 이 정도면 만삭까지 일해도 됐었나? 싶은데 다시 오지 않을 '나를 위한 시간'을 위해선 지금이 최적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출산휴가+육아휴직까지 쓰는 터라 제출할 서류들을 정리하고 후임자를 위한 인수인계 틀 까지 만들면서 점점 휴직이 실감났다.


출근 마지막 날, 상사가 케익을 사서 동료들과 함께 순산을 기원해줬다. 코로나에 영향을 많이 받은 직업군이라 일하는 동안 상사-동료들과의 스트레스도 있었는데 묘하게 아쉬운 마음이 몰려왔다. 퇴사도 아닌데 꼭 마지막 근무를 하는 느낌이 들었다.


한 시간 일찍 퇴근 후 집으로 돌아오니 온 몸이 노곤해졌다. 저번 글에도 적었지만 임산부란 이유로 일을 덜 하고 싶지 않아서 부던히도 애썼다. 무거워진 몸을 이끌며 출장을 나갈 때에도 동료의 도움을 받지 않으려 애썼고 내 나름 정말 열심히 했다고 자부한다. 근무를 마치고 돌아옴에 있어서 한 치의 아쉬움도 후회도 없었다. 그래서일까, 그 날은 온 몸의 긴장이 풀리며 오랜만에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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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기간동안 많이 자고 많이 쉬면서 하고 싶은 걸 하기로 마음 먹었다. 그 중 하나가 '베이킹'이었는데 직접 수업을 들으러 가고 싶었지만, 다시금 심해지는 코로나 때문에 결국 집에서 하기로 결정했다. "스콘" 과 "마카롱" 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재료와 도구들을 구매하고 1주일 동안은 베이킹에 몰두하고 매달려있었다.


나름 맛이 성공적이라 남편의 직장동료들에게도 만들어주었는데 아무래도 몸이 무거워지다 보니 한 번 할 때 마다 너무 힘이 들었다. 그래서 37주 다 되어갈 때 쯤 부터는 더 이상의 베이킹은 무리였다.


그래도 휴가기간 무기력하게 지내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느꼈다. 매일 출근을 하다가 찾아온 공백의 시간을 허투로 흘려보내기 싫었다. '나의 시간' 으로 차곡차곡 채우고 싶었고 결과적으로 출산휴가 동안 매일이 바빴고, 정말 하고 싶은 걸 해서 너무 좋았다. 


베이킹을 끝내고 나면, 피로감이 물밀듯 밀려오지만 그래도 완성했다는 뿌듯함과 남편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며 느끼는 만족감은 '나의 시간'에 큰 행복 중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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