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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른아이 Oct 28. 2020

'엄마'의 'Mom'이라는 것

07. 서른의 성장통





07. 서른의 성장통




임신기간 중 나의 생일을 맞이했다. 중, 고등학교 때 까지는 생일에 큰 의미를 부여했는데 20대 후반부터 생일이란 것에 무덤덤해졌다. 그저 흘러가는 일상 중의 하루였고 내가 축하받기 보다는 오히려 부모님께 감사한 날이 되었다.


어렸을 때는 내 생일이 특별했고 많은 축하와 선물을 받는 게 좋았다. 누군가 내 생일을 잊으면 그렇게 서운할 수가 없었고, 선물을 많이 받으면 어깨가 우쭐하고 이유 모를 자신감이 마음속을 가득 채웠다.


보여지는 것이 전부였던 어리디 어렸던 시절, 그 속의 나는 상대에게 바라는 만큼이나 나도 상대에게 많은 시간과 마음을 쏟아부었다. 그로부터 여러해가 흐른 지금, 나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진다.



“그 시절 나의 생일을 챙겨주고, 선물을 건넨 친구들 중 몇명과 연락하고 있나?”



나는 나이가 들고 사회생활을 경험하면서 인간관계에 회의적이고 이골이 가득 나 있는 사람 중 하나가 되어있었다. 누군가와 친해지는 것, 곁을 내어주는 것은 피곤한 일이고 '친하다' 라는 이유로 서로 인생에 너무 많은 관여를 하게 되는 게 싫었다. 적당한 선과 적당한 벽이 오히려 더 편하다는 걸 생각하는 나이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누군가에게 나의 얘기를 하고 마음을 열기 보단 말을 아끼고 적당한 거리를 두었다. 그러다보니 내 생일에 무뎌지는 만큼 나도 타인의 생일에 무덤덤해지고 그저 그냥 그런 일상 중의 하나라고 여겨서인지 친구들에게서 예전만큼의 연락은 오지 않는다. 어쩔 땐 잊고 넘어갈 때도 있고 그것에 대해 그리 서운한 맘이 들지도 않는다. 


하지만, 1년 365일 중 364일 동안 연락을 안해도 단 하루, 나의 생일마다 빠짐없이 연락이 오는 친구가 있다. 중학교 때 부터 알고 지낸 친한 친구인데 매해 내 생일마다 빠짐없이 카톡이 온다.


그 친구의 한결같음에서 가끔 순수했고, 친구의 옅은 고민 하나에도 진하게 반응했던 어린 시절의 내가 떠오른다. 


타인과의 관계 하나하나 연연해하고 전전긍긍해했던 그 때의 나, 순진무구했지만 여리고 따뜻했던 그때의 나. 




-






28주~30주가 들어서면서 점점 일이 버거워지고 몸이 무거워지는 것이 느껴졌다. 직장생활이 조금씩 지쳐가고 있었다. 나름 남들보다 편하게 직장생활을 했다고 생각했지만 일은 일이라 나 스스로 꽤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던 것 같다.


직장생활에서의 내 모습을 살펴보면 나는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는 게 싫은 사람이다. 내 일은 내가 마무리하고 싶고, 내 몫은 열심히 하고 싶다. 그래서인지, 같이 일하는 동료들이 다 여자고 거의 임신과 출산을 경험해본 사람들이라 나를 많이 배려해줬지만 이상하게 임산부라서 일을 덜 하게 되는 건 스스로가 용납이 안됐다.


임산부는 마이너스 인력은 아님을 보여주기 위해 좀 더 열심히 했던 게 화근이었을까.


부쩍 악몽도 많이 꾸고 내 스스로 몸과 마음이 소진이 되어감을 크게 느꼈다. 출산휴가 날짜를 최대한 늦게 쓰는 게 좋다고 하는데 나는 아무래도 일찍 들어가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다. 아이를 낳기 전 내 시간도 조금은 가지는 게 좋다는 주변의 얘기도 한몫했다.


휴가 날짜를 정할 즈음 친한 친구가 공무원시험에 합격했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긴 시간동안 힘들었던 친구의 마음을 알기에 내 일보다 더 기뻤다. 내가 직장생활을 하는 동안 친구는 오로지 한 길만 팠다. 그 시간동안 본인도 불안하고 힘들었을텐데, 오랜시간 자신을 믿고 무너지지 않은 게 대단했다. 그리고 준비한 만큼 그 값진 성과를 얻은 게 멋졌다.


같이 식사를 하며 얼굴에 꽃이 핀 친구를 보니 내심 부러운 마음이 들었다. 임신, 곧 다가올 출산을 앞둔 나는 시든 꽃 같았고 친구는 이제 막 망울을 터트린 꽃 같았다. 친구를 보며 오래 전 누군가 나에게 했던 말들이 떠올랐다.



“아이가 생기면 정말 하고싶은 걸 할 수 없을지도 몰라. 무언가를 도전할 때는 혼자일 때 하는 게 가장 좋아.”



공부를 하든, 도전을 하든 신경쓸만한 것들이 없을 때 가장 잘 된다는 말이겠지.


그 당시는 몰랐지만 아이를 품고 보니 나의 미래를 생각할 때 나의 삶이 아이와 가정에 맞춰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문득 우울할 때가 있었다. 누군가의 엄마, 아내이기 전에 나의 삶이 소중한 한 사람으로써, 친구처럼 나의 시간과 노력을 쏟아부을 무언가를 앞으로 할 수 있을까?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가 나의 발목을 잡는 것 같고 여러 제약들이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친구의 앞길을 축복해주고 응원하지만 이럴 때 예고없이 찾아온 '비교'란 마음은 내 마음을 우중충하게 만들었다. 100% 본인의 삶에 만족하긴 어렵지만 그럭저럭 나쁘지 않은 삶이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눈에 띄는 성과는 없는 것 같고 앞으로 무언갈 할 때도 어려움이 많을 것 같아 마음에 먹구름이 끼었다.



참 사람이 못나지는 건 한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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