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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른아이 Sep 15. 2020

'엄마'의 'Mom'이라는 것

06. 태아보험 & 태교여행 & 임신성 당뇨검사




06. 태아보험 & 태교여행 & 임신성 당뇨검사




* 태아보험에 관한 이야기



아기집을 보고 난 뒤 병원 수납처에서 임신확인서와 함께 국민행복카드 발급을 하라고 말을 해줬다. 또, 두 번째로 태아보험에 대해 상담받고 가라고 얘길 했다. 임신이라는 게 아직은 얼떨떨한 부모에게 '국민행복카드' '태아보험'은 머릿속에 물음표를 그리게 했다.


등 떠밀리듯 병원 한편에 마련되어 있는 테이블로 가니 그곳엔 보험회사 직원분이 앉아있었다. 우리가 앉자마자 직원분께서는 태아보험에 대해 방대한 정보를, 본인 나름대로 아주 열심히 알려주셨다. 하지만 임신 사실을 안 지 얼마 되지 않은 초보 엄마 아빠에겐 그 얘기를 소화하기에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 후론 한참 태아보험을 잊고 있다가 기형아 검사를 하고 나서부터 슬슬 보험 걱정이 되었다. 그때마다 간간히 남편과 대화 주제로 태아보험이 나왔다.



"태아보험 어떡하지?"



질문으로 시작된 대화는 늘 결론 없이 마무리되었다. 그러다 22주 이내까지 태아보험을 들어야 한다는 얘기를 듣고 마음이 조급해졌다. 결국 주변 출산한 친구들에게 문의해본 결과 대다수가 '태아보험은 꼭 들어야 된다!' 고 했다. 내가 갈 길을 먼저 걸어간 선임자의 말을 들으니 다시금 귀가 팔랑거렸다. 직장 동료들도 혹시나 일어날 수 있는 상황에 대비가 필요하다며 태아보험을 드는 걸 추천해줬고 결국 우리는 21주 5일째 태아보험을 들었다.



'들자!'라고 마음을 먹으니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고, 이 때도 남편의 역할이 컸다. 찾아보는 걸 귀찮아하고 꼼꼼하지 못한 나 대신 남편이 밤을 새워가며 여러 보험회사를 뒤져가며 보험 비교분석을 했다. 그리고 우리만의 태아보험을 설계하게 되었다. 이때 우리는 필요한 것과 불필요한 것을 거르면서 했는데 나름 잘 설계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About 태아보험 : 우리는 100세 만기를 하지 않고 30세 만기로 결정했다. 시세차이가 큰 이유였다. 그 때의 물가와 지금의 물가가 같다는 보장도 없고, 혹여나 큰 병에 걸렸는데 보장금액이 작을까봐 걱정이 되었다. 만기나이를 결정하니 세부사항은 결정하기 쉬웠다. 30세 쯔음에 다시 보험을 들어야 하니, 나이가 들어서 발병할 위험이 높은 질병들에 대한 항목은 빼고 설계했다. 




* 태교여행에 관한 이야기



태아보험을 고민했던 시기에 강원도로 태교여행을 다녀왔다. 코로나만 아니면 해외로 떠났을 건데, 아쉽지만 어쩌겠는가.. 그래도 국내라도 여행을 갈 수 있음에 감사함을 느끼며, 강원도 삼척 - 강릉 - 동해 루트로 여행을 짰다. 다행히 삼척에 친구 집이 있어서 친구 집에서 하룻밤 묵을 수 있었다.


사실 나는 로망이 크게 없는 편이다. 무던하고, 욕심이 없다. 그래서인지 태교여행, 만삭 사진 이런 것들을 꼭 해야 하나?라는 생각도 들었다. 귀찮음이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사실 그런 것을 크게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편이다. 결혼을 앞두고도 그랬던 것 같다. 결혼식 로망도 없었고, 굳이 브라이덜 샤워에도 흥미가 없었다.


하지만, 지금 내 뱃속에 있는 아기를 품은 건 일생의 단 한번 있는 일이고 특별한 순간이며 그 기록을 남기지 않으면 후회할 것 같다는 생각이 마구 들었다. 이 특별한 순간을 그저 일상으로 넘겨버리기엔 나조차 아쉬웠다. 더욱이, 아기가 태어나고 그 아이가 자라서 자신을 품은 순간을 예쁘게 기록한 걸 보면 너무 행복하지 않을까?라는 기대감도 들었다. (이 맘 때쯤 남편과 함께 태교일기도 쓰기 시작했다.)


태교여행을 앞두고, 소품으로 뭘 준비할까 고민하다가 토퍼로 결정했다. 그리고 여행 내내 나와 아기가 연결된 탯줄 마냥 토퍼를 손에 꼭 쥐고 다녔다.


그리고 이때 삼척에서 만난 친구는 우리가 만나지 못한 시간 동안 출산을 하고 작년에 태어난 귀여운 아가야와 함께 살고 있었다. 뱃속에 있는 우리 아기와 같은 성별이라서 더 눈길이 갔다. 뽀얗고 통통한 아기를 보니까 기분이 너무 좋아졌다. 그리고 어찌나 순둥이던지, 말 그대로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고.. 너무 사랑스러운 아기였다.


아기를 보러 가기 전 빈 손으로 가기 뭐해서 필요한 게 뭐냐고 물으니 친구의 남편은 '아기를 돌봐줄 사람'이라고 했다. 그만큼 육아가 힘들다는 거겠지? 근데 남편과 나는 친구 집에 있으면서 오히려 우리 아기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함께 할 날들이 더욱 기대됐다. '헬 육아'라는 말도 많이 들었지만, 친구 집에 있는 동안 아기 웃음소리, 아기 울음소리, 아기가 칭얼거리는 소리 등이 그 어떤 노랫소리보다 좋게 들렸다. 나 만큼 들뜬 남편도 우리 세 가족이 함께 할 미래를 기분 좋게 그리고 있었다.


친구와 나는 아는 사이지만, 남편끼리는 어색할 법도 한데 둘이서 나름 대화를 잘 이끌어나갔다. 도대체 무슨 얘기를 하는 걸까 싶어서 가만히 들어보니 두 사람의 대화의 주제가 '육아'였다. 기저귀는 어떤 게 좋고, 분유는 어떤 게 좋고, 유용한 어플 등 - 그 모습에 웃음이 비집고 나왔다.


나도 친구랑 육아를 주제로 많은 얘기를 나눴다. 다만, 몇 년 전 만해도 우리의 대화 주제는 '일' '연애' '인간관계' 였는데 이제 대화 주제가 달라지는 게 신기하고 기분이 묘했다.


"아기 낳을 때 많이 아팠지?"


시간이 흐를수록 출산에 대한 궁금증과 두려움이 높아진 나는 친구에게 출산에 대해 조심스레 물어봤다. 내 질문에 친구는,


"꼭 애가 크면 제왕 절개해. 나 진짜 죽을 뻔했다."


아픈 걸 잘 참는 편인데 출산의 고통은 정말 다시 겪고 싶지 않다며 본인의 후일담을 늘어놓았다. 새하얗게 질려가는 내 얼굴은 모른 채.. 친구는 몇 번이고 나에게 애기를 크게 놓지 말라는 말을 되풀이했다. 그리고 애가 크면 꼭 제왕절개 하라는 말도 몇 번이고 덧붙였다.


아직 와 닿진 않지만, 점점 두려움이 커진다. 별 이벤트가 없으면 자연분만을 할 생각이긴 한데, 내가 과연 할 수 있을까?


고민과 걱정도 잠시, 아이가 자고 난 뒤 육아에서 해방된 친구네 부부를 데리고 새벽 3시가 넘어서까지 우린 보드게임을 했다. 우리가 웃고 떠들어도 깨지 않던 아기 덕에 우리는 더 재밌게 놀 수 있었고, 오랜만에 즐거웠다는 친구 말에 마음이 짠해졌다.


다음 날 친구는 떠나는 날 위해 자신이 쓰던 육아용품을 열심히 챙겨주었다. 두둑해진 짐만큼이나 마음도 푸근해졌다.




* 공포의 임당 검사



24주, 임당 검사를 했다. 기형아 검사와는 비교도 안 되게 긴장되었다. 


아마 20주에,


"주수에 비해 배가 크네요."


라는 의사의 말 때문이었던 것 같다. 배가 큰 이유로 양수가 많은 편이라는 얘길 했는데, 나는 그 후 임당 검사를 할 동안 그 말에 꽂혀 살았다.



'양수가 많다니.'

'양수가 많으면 아기가 크다는데, 그러면 임당 확률이 높다던데!'


여기서 의사가 양수가 많은 편이라 했지 '과다하다, 엄청 많다'는 표현은 쓰지 않았다. 동전의 양면처럼 어쩌면 가볍게 생각하고 넘길 수 있는 말인데도 혼자 걱정이 많아졌다. 복숭아가 당긴다고 과일을 마구 먹었던 것도 생각이 나고, 후회가 밀려왔다. 그리고 24주가 될 때까지 아침마다 혈당 재는 게 루틴이 되었다.


임당 검사 당일, 나는 오후 진료로 예약했고 간호사 선생님은 점심식사는 하고 오되 너무 많이 먹지 말라고 하셨다. 그리고 오기 1시간 전엔 금식을 하라 했다. 딱 그 시간을 지키고 갔고 가자마자 간호사는 나에게 시약을 줬다. 인터넷에서 김 빠진 환타 맛이라고 했는데 딱 그 맛이었다. 시약을 먹고 1시간 뒤 채혈을 하고, 또 결과 나올 때까지 기다려야 했는데 거의 2시간 넘게 기다리니 진이 빠졌다.


그래도 기다리는 동안 입체 초음파도 진행했는데 입체 초음파를 보니 걱정되었던 마음이 한시름 놓였다. 너무 귀엽고 사랑스러운 아이를 만나니 기분이 너무 좋았다. 이럴 수가! 나는 누굴 닮았다 라는 생각보다 너무 귀엽다 란 생각을 했는데, 보는 사람마다 남편을 닮았다고 한다. 남편은 시어머니를 꼭 빼닮았는데... 정말 유전자의 힘이 강한가?


입체 초음파를 요리조리 볼 동안 어느덧 진료가 다가왔고 다행히 나의 결과는 정상이었다. 4주간 체증이 쑥 내려가는 기분이었다.




* 20주 ~ 27주까지의 기분변화



25주 들어서면서 잠자기 불편해지고 허리 통증이 생겼다. 특히 운전하거나 앉아있을 때 심해졌고 똑바로 누울 때도 아파왔다. 유독 오른쪽 엉덩이 부분이 아팠는데 아플 때마다 뭔가 서러워졌다. 초기 때는 괜찮았는데 중기에서 후기로 가면서부터 기분변화가 너무 심해졌다. 좋고 나쁨의 폭이 너무 커져 늘 남편이 나의 성질을 받아주는 감정 쓰레기통이 되었다.


그리고 꿈은 왜 이렇게 많이 꾸는 걸까? 다 안 좋은 꿈이었다. 심란한 내 마음인 건지... 중기에서 후기로 갈수록 나는 출산방법에 대한 영상을 막 찾아보기 시작했는데, 그 두려움 때문인 자기 마음이 자꾸 심란해졌다. 심란해지는 마음은 또 나를 약하게 만들었다.


그래서인지, 나를 살펴주는 말에 눈물이 났다. 많이 힘들지 않니? 라는 살가운 말 앞에선 마음이 뜨끈해지며 눈물이 핑 돌았다. 관심병인가? 싶을 정도로 혼자서 많이 울컥했다. 또 엄마가 해준 음식, 따뜻한 밥 한끼가 그리워지는 순간이 많았다. 20주가 넘어서면서 뒤돌아도 배고플만큼 허기가 진다는데 나는 오히려 밥 챙겨먹기 귀찮을때가 많았고 아기가 커질수록 배도 쉽게 더부룩해지는 증상이 크게 느껴졌다.


이 시기에 유독 누가 날 서운하게 만드는 말에는 이상하게 평소보다 더 오래 담아두게 되고, 그게 오랫동안 잊히지 않게 되었는데 가까운 사람일수록 그게 크게 느껴졌다.


임신 기간동안에 하는 말은 평생 간다는 말이 또 한번 몸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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