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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주일장춘몽 May 28. 2022

제민천에서 떠올려 본 옛날이야기

낯선 눈으로 보고 쓰는 공주

  

“에잇, 또 피라미 새끼야”     


이번에도 낚싯줄에 걸린 것은 말라빠진 피라미다. 한 나절은 족히 앉아있었던 것 같은데 어망을 들여다보면 한숨밖에 안 나온다. 여름도 뒷꼭지를 보이는 때라 연둣빛이 점점 사라져 가는 피라미 너 댓 마리가 전부. 어머니와 약속한 스무 마리를 채우려면 아직 아직 멀었다.      


아버지 어릴 적에는 제민천에 팔뚝만 한 어름치도 있고 갈겨니며 납자루도 심심치 않게 잡혔다는데 요즘은 눈 씻고 찾아볼래야 볼 수가 없다. 가끔 붕어나 쏘가리가 잡히기도 하지만 그건 대부분 기술과 미끼가  좋은 어른들 차지다. 큼직한 붕어 한 마리만 잡으면 피라미 열 마리보다 나을 텐데... 그러면 스무 마리 다 안 채워도 어머니가 뭐라 안 할 텐데...     


아침 먹고 오전에는 내도록 금학산에 있었다. 누렁이 먹일 꼴도 베고 몇 주 전부터 어머니가 개복숭아를 따오라 해서 일이 더 많아졌다. 친구들은 여름 방학이 끝나고 이번 주부터 학교에 가기 시작했다. 심심해서 다시 학교에 갈까 생각도 해봤지만 공부는 영 별로다. 아버지 말로는 내가 공부 머리가 없는 것 같단다. 공부 머리도 없는데 비싼 월사금 내면서 심심풀이로 학교에 다닐 형편도 아니지만 그러고 싶은 생각도 없다. 나는 우리 집을 이끌어 갈 장남이 아닌가 말이다.     



앗, 누나가 빨랫감을 가지고 천변에 나왔다. 그나마 잡히던 피라미도 소식이 없어 덥고 짜증 나던 차에 학교 마치고 멱 감으러 온 친구들 꼬임에 넘어가 물에 뛰어들었던 게 화근이다. 누나가 조금만 더 가까이 오면 들킬게 뻔하다. 일단 물속에 납작 엎드려 몸을 숨기고 봐야겠다. 누나는 엄마보다 더 한 잔소리 쟁이다. 게다가 고자질 쟁이다.  잡으라는 만큼 고기는 다 잡았냐 어떤 고기를 잡았냐 고기 잡다 말고 놀면 어떻게 하냐 어머니한테 확 일러버린다며 잡도리를 할 텐데 생각만 해도 짜증이 머리끝까지 치민다.      



좀 전까지만 해도 시원하기만 했는데 한참을 들어앉아있자니 제민천 물이 얼음장 같다.          



                                                                                                                 1954년 8월 어느 날               






요즘 공주에서 가장 핫한 곳을 꼽으라면 단연 제민천 일대다. 주변에 볼 일이 있거나 할 일 없이 걸으러 나갈 때마다 주변이 조금씩 달라지는 것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분명 지난 산책길에는 있었던 전파사가 이번 산책길에 보면 이미 사라지고 없다. 지난번에는 대통길 인근 집을 리모델링하더니 이번에는 제민천길 초입에 있는 집에서 공사를 시작했다.      


공사하는 집은 대부분 오래된 가정집이다. 몇 주간 계속되는 공사가 끝나면 늙고 병들었던 집이 전혀 새로운 젊은 공간으로 탈바꿈한다. 사람이 사는 일반 주택으로 다시 서는 일은 거의 없다. 대부분 영업을 위한 공간으로 바뀐다. 카페가 가장 많고 스테이라고 부르는 숙박시설도 심심치 않게 들어온다. 세종이나 대전에서 공주로 나들이 오는 외지인들을 위한 시설이라 여겨진다.     


공주에서 산 지 1년이 조금 넘었지만 나는 나 스스로를 공주사람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여전히 공주에 대해서 잘 모르고 여러모로 낯설어하는 외지인이다. 그래서 탈바꿈하는 공주의 구도심에 대해 별 생각이 없다. 아니, 오히려 반가워했다는 게 맞는 말이다. 공주의 인상이 좀 더 깨끗해지고 밝아지는 것 같아서, 가끔 가족들이나 지인들이 오면 안내할 곳이 많아져서 좋았다.     


그런데 공주에 뿌리를 내리고 사는 진짜 공주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할까? 물론 도심에 사람이 살지 않는 낡은 집이 흉물스럽게 방치되어 있는 것보다는 훨씬 나을 것이다. 하지만 정작 이곳 사람들보다는 외지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공간이 속속 들어오는 것이 반갑기만 할까?      


평일 제민천 일대는 조용하기 그지없다. 주변의 많은 음식점들이 점심 장사 반짝, 3~5시 브레이크 타임(2시부터 쉬는 가게도 다), 저녁 장사 반짝, 9시 영업 끝. 이런 식으로 운영된다. 카페도 평일 저녁 7~8시면 마감이다. 그만큼 사람이 없다는 얘기다. 그나마 주말이나 휴일이 돼야 인근 도시에서 놀러 오는 사람들로 카페도 음식점도 하루 종일 손님이 드는 정도다.     


대안을 얘기하라면 할 말은 없다. 제민천 일대가 달라지면 안 된다는 것도 아니고 외지인보다 공주사람이 무조건 우선 되어야 한다는 것도 아니다. 다만 공주 구도심에 살던 토박이들이 점차 떠나고 그 자리가 외지인들을 위한 시설로 채워지는 것이 못내 아쉽지 않을까 싶어서 떠올려 본 생각이다.     



아무리 달라진대도 제민천 일대에는 공주 사람들이 더 많다. 아침저녁으로 제민천 산책로를 걷는 사람들이며 산성시장, 제민천 인근에 몰려있는 중·고등학교, 공주 시청을 찾는 사람들이 모두 공주 사람들이다. 제민천에서 한가롭게 헤엄치는 물오리, 송사리들도 공주 토박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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