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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주일장춘몽 May 24. 2022

금강교에서 떠올려 본 옛날이야기

낯선 눈으로 보고 쓰는 공주


공주 정안에 사는 밤 장수 김 서방은 오늘을 손꼽아 기다려왔다. 올해 처음으로 수확한 밤을 공주 시내로 팔러 가는 날이기 때문이다. 매 년 햇밤을 팔러 장에 가는 날이면 김 서방은 좋기도 하고 싫기도 했다. 씨알 굵은 햇밤을 제 값에 넘겨 쌀도 바꾸고 찬거리도 넉넉하게 구하는 건 생각만 해도 신명 난다. 제비 같은 새끼들 입에 맛난 음식 넣어주는 게 애비의 최고 행복 아니겠는가.      


하지만 무거운 밤 지게를 지고 흔들거리는 나무다리를 건너는 일은 암만 해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시커멓게 흘러가는 금강에 어설픈 다리채로 휩쓸려버리는 끔찍한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고, 저절로 풀려서 후들거리는 다리에 가까스로 힘을 주고 나무다리 중간쯤 이르면 비바람 몰아치는 날 가랑잎 같은 나룻배에 엉덩이도 붙이지 못하고 서 있는 것 마냥 울렁울렁 멀미가 밀려왔다.      


그런데 얼마 전에 강에 크고 튼튼한 다리가 생겼다. 금강교라든가 뭐라든가... 나무가 아니라 철로 만든 엄청 큰 다리란다. 밤 따느라 바빠서 아직 구경도 못 해봤다. 지난 장날에 먼저 다녀온 옆 집 박가 놈 말로는 다리에 지붕도 있다고 한다.     


밤 농사도 제법 잘 됐는데 안전하게 건너 다닐 다리도 생겼으니 올 해는 돈푼깨나 만질 수 있을 것 같다. 새벽녘에 급하게 한 술 뜨고 집을 나섰다. 정안천을 따라 쉬지 않고 걸었더니 해가 머리 위로 올라올 무렵  금강에 다 와 간다. 이제 금방 새로 생긴 멀쩡한 다리가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다른 날보다 곱절은 더 쌓아 올린 밤 지게가 오늘은 하나도 무겁지 않다.          



                                                                                                           1933년 10월 어느 날     





집에서 출발해 금강을 향해 걷는 길에는 많은 장애물이 있다. 구불구불 골목길에 잦은 횡단보도, 인도와 갓길을 점령한 주정차 차량들. 촬영해서 민원을 제기할까? 시청 홈페이지 시장 건의란에 바로 올릴까? 늘 생각만 한다.      


다행히 불편한 마음은 오래가지 않는다. 집에서 출발해 30~40분을 걸으면 금강에 이르는데 그곳에 내가 좋아하는 금강교가 있기 때문이다. 공주 시내에 있는 3개의 다리 가운데 가장 작고 오래된 금강교. 왠지 정이 간다.     


금강교는 1933년 일제 강점기에 만들어졌다. 공주에 있던 충청남도 도청을 대전으로 옮기면서 그에 대한 보상으로 금강교를 건설했다는데, 사람들은 이를 두고 소탐대실이라고도 한다. 충남도청이 공주에 그대로 남아있었더라면 공주는 분명 지금과 많이 다를 거라는 거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미 오래전에 그렇게 되어버린 것을.     


원래는 왕복 2차선이었던 것이 지금은 신관동에서 공산성 쪽으로만 1차로 일방통행이다. 2009년 1톤 트럭이 다리 아래로 추락하는 사고가 난 이후부터 그렇게 됐다고 한다. 다른 한쪽은 사람과 자전거가 다니는 길이다. 공주시에 있는 다른 두 다리 공주보와 금강대교는 왕복 4차로인 데다가 고속도로 나들목, 세종으로 가는 큰 도로와 연결되기 때문에 통행량도 많고 차들이 달리는 속도도 빠르다. 걸어서 건너기에는 불편한 점이 많다. 하지만 금강교는 좁다란 다리를 사람과 자전거, 차가 함께 여유롭게 이용한다. 눈을 부릅뜬 시속 30km 속도 감시 카메라가 다리 끝에 달려있다.     




금강교의 상징은 다리 윗부분을 덮고 있는 철재 구조물이라고 생각한다. 교량 건축에 사용된 트러스 구조물인데 둥근 아치형이라 고풍스럽다. 서울의 한강철교를 생각하면 비슷하다. 지난봄에 금강교를 걷다가 트러스에 걸려있는 새집을 발견했다. 언제 만들었는지 어떤 종류의 새가 새끼를 키우며 살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잘 자라기를 바랐는데 지금쯤은 혼자 힘으로 벌레를 잡아먹을 수 있을 만큼 잘 컸을 것이라 믿어본다.     





공주의 신도심과 구도심을 연결하는 금강교는 나에게 일상의 공간에서 쉼의 공간으로 넘어가는 입구가 되어준다. 산책의 장소인 공산성과 제민천, 시장 구경 사람 구경의 장소인 산성시장, 차를 마시고 책을 보다 멍 때리는 장소인 제민천 인근 찻집들, 일요일마다 미사를 드리는 황새바위 성지. 불편한 마음 내려놓고 잠시 쉬었다 가라고 다독이는 위로의 공간들이다.     


앞으로 제2 금강교를 만든다는데 너무 바짝 붙여서 만들지 않기를, 그래서 이 작고 오래된 다리의 정취가 고스란히 보존되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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