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을 쓰고 보니 좀 그렇다. ‘시어머니의 밑반찬’이란 말이 시어머니가 해주신 밑반찬으로 읽힐까 시어머니에게 해드린 밑반찬으로 읽힐까 하는 생각이 잠깐 들었다.
결혼한 지 20년이 훌쩍 넘었지만 나는 지금도 시집 식구들이 어떤 음식을 좋아하는지 전혀 모르다. 시아버지의 입맛은 어떤지 시집에서는 양념은 무엇을 주로 쓰는지 간은 짜야 좋은지 싱거워야 좋은지 들은 적이 없다. 신행 다음날 아침부터 새색시 혼자 부엌에 서야 했으니까.
결혼해서 지금까지 시어머니가 만들어준 밑반찬을 받아본 적이 없다. 밑반찬은커녕 시어머니가 해주신 음식을 먹어본 기억도 별로 없다. 늘 내가 무언가를 만들어서 가져가거나 시집에 가서 만들었다. 시어머니는 큰며느리를 들이자마자 부엌일을 놓으셨다. 50대 후반, 그리 많은 연세도 아니었다. 물론 같이 사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평소에는 당신 손으로 음식을 해 드셨다. 그때는 시아버님도 생존해 계실 때였으니 당연히 두 식구 몫의 음식을 하셨다.
하지만 며느리가 오는 날이면 부엌 출입을 삼가셨다. 내가 아이를 가지고 제법 배가 부른 7개월 무렵에 시아버님 생신이 있었는데 그때도 시어머니는 부엌에 들어오지 않으셨다. 전날 지방 출장을 다녀오고 서울에서 영주까지 내려오느라 다리가 퉁퉁 부은 며느리를 기어이 혼자 부엌으로 들여보내셨다. 임신 8개월 무렵에는 시동생이 결혼을 했는데 지역 특성상 집에서도 손님을 치렀다. 그때 역시 시어머니는 임신한 며느리에게 부엌을 맡기셨다.
한창 일이 바쁠 때는 시집에 가져갈 음식을 하느라 퇴근하고 아이 재우고 밤을 꼴딱 세기도 많이 했다. 학교 직장만 오가던 새댁이 할 줄 아는 음식이 뭐 그리 많으며 맛은 뭐 그리 좋았으랴. 그래도 한 번을 며느리에게 음식을 해주시지도 이렇게 저렇게 하라 말씀도 없으셨다.
시어머니는 자주 말씀하셨다. 남의 집 며느리가 돼서 그것도 안 하냐고. 나한테 직접 하신 말씀은 아니라 해도 나 들으라고 하신 말씀은 분명하다. 시어머니 생각에는 시집의 생일도 명절도 제사도 며느리가 하기에 당연한 일이다. 남의 집 며느리는 무슨 큰 잘못을 저지른 죄인인가? 시집의 힘든 일을 온통 다 맡아해도 당연할 정도로 큰 빚이 있는 사람인가? 정작 둘째 며느리였던 당신은 그렇게 사셨나?
시집에서는 너무도 당연한 일이지만 내가 사는 세상 이들에게 시집의 이런 얘기를 하기가 부끄러웠다. 아직도 이렇게 며느리를 생각하는 집이 있다는 것도, 그 안에서 말 한마디 못하고 끙끙거리며 지내고 있다는 것도. 결국 나도 그 집의 일원이니까. 그럼에도 내가 사는 세상과 시집의 세상은 절대 같은 시간대가 아니었다.
브런치에 시어머니의 음식을 자랑하는 글들이 자주 올라온다. 부럽다. 시어머니의 맛있는 음식도 부럽지만 그 작가님들이 받은 복이 더 부럽다. 물론 집집마다 다 사연이 있고 개개인마다 말하지 못하는 이야기가 왜 없겠냐만 그래도 부럽다.
돌아오는 일요일에 시집에 가야 한다. 시어머니 드실 밑반찬을 만들어서. 효자 아들은 하늘이 주신 선물이겠지만 효자 남편은 참 몹쓸 물건이다. 건강검진 끝내고 기력 떨어진 어머니 걱정에 결국 나까지 덩달아 나서게 만든다. 4주 뒤면 시아버님 제사여서 제사 음식 만들어 바리바리 싸들고 가야 하는데.
아!!! 지난번 어버이날에 찾아뵀을 때 힘들다시며 제사 모시고 가라고 하셨는데. 꿀먹은 벙어리가 된 남편은 가타부타 말이 없다.
그나저나 이번 밑반찬은 무엇을 만들어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