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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주일장춘몽 Jun 07. 2022

쓰레기는 쌓아야 제 맛

할머니 툰베리

싱크대 옆에는 물을 가득 채운 볼에 유리병 몇 개쯤 담겨있다.

그 옆에는 달걀 껍데기와 양파 껍질, 물기를 짠 음식 쓰레기가 모여 있고 베란다에는 채소와 과일 껍질, 커피 찌꺼기가 널려있다. 요즘 우리 집의 너저분한 모습이다.


시작은 친정 엄마였다. 친정집 주방에는 늘 물이 가득 든 바가지가 놓여있다. 그 안에 어떤 날은 소주병이 목욕을 하고 있고 어떤 날은 간장병, 기름병이 들어앉아 있다. 잘 떨어지지 않는 스티커 끈끈이를 불려서 남김없이 떼기 위해서다. 비닐 포장지에 붙은 끈끈이를 떼기 위해 담가 둘 때도 있다.


다 쓴 칫솔을 버릴 때면 칫솔모가 붙은 부분을 부러뜨리거나 그게 여의치 않으면 칫솔모를 가위로 일일이 잘라내기도 한다. 유리병에 붙은 플라스틱 뚜껑 일부를 잘라내기 위해 칼과 가위를 모두 동원하고 잘 버리기 위해 깨끗하게 설거지하고 말리는 재활용 쓰레기들이 늘 쌓여 있다.


매주 주말이면 재활용 쓰레기를 내다 버리는 아빠는 쓰레기를 버리고 들어올 때마다 똑같은 말씀을 하신다.

우리 아파트에 재활용 쓰레기를 이렇게 버리는 집 하나도 없다고.. 이래 봐야 당신만 힘들지 내다 버리면 다 섞여서 표도 안 난다고.


매번 엄마의 대답도 똑같다.

우리 한 집이라도 잘해야지.. 젊은 사람들이야 바쁘니까 못한다 치고 시간 많은 우리라도 잘해서 버리면 조금이라도 낫겠지.. 우리 손주들 사는 세상에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이 이런 거밖에 더 있나..


요즘은 그래도 많이 나아졌다. 속이 시원하도록 한 번에 쫙 떨어지는 라벨도 많아졌고 물이 한나절만 담가 두면 제법 잘 벗겨지는 종이 라벨도 제법 된다.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는 데도 방법이 있다. 채소나 과일 껍데기는 바람이 잘 통하는 장소에서 잘 말린다. 요즘 같은 날씨에는 2~3일이면 바짝 마른다. 물기 없이 잘 마르면 일반 종량제 봉투에 넣어서 버려도 무방하다. 음식 찌꺼기도 물기를 바짝 짜서 잘 펼쳐두면 잘 마른다. 냄새와 날파리의 원인은 물기다. 물기만 줄이면 여름철 최고 골치 거리인 음식물 쓰레기 문제를 어느 정도 줄일 수 있다. 매일 숨을 참고 버려야 했던 음식물 쓰레기를 일주일에 한두 번 정도로 줄이는 것은 조금만 신경 쓰면 많이 어려운 일이 아니다.


엄마는 오늘도 또 손톱이 거칠어지도록 끈끈이를 긁고 계실 거다. 자꾸 달라지는 분리배출 기준을 힘들어하면서도 그래도 알아야 한다며 찾아보신다. 우리 엄마야말로 할머니 툰베리다. 꼭 목소리 높여 남들 앞에서 떠들어야만 환경 운동간가? 팔순 넘은 어른이 손주들 사는 세상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겠다고 저렇게 하시는데 엄마가 자식 사는 세상 위해 저 정도도 못할까.


하지만 막상 실천하려면 불편한 점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설거지 감이 많아지는 것은 물론이고 실컷 설거지를 하고 돌아서도 물에 담가 둔 각종 병들로 주방은 잔뜩 늘어져 있다. 음식물 쓰레기도 말려서 버릴 것, 그냥 버릴 것 두 종류로 나눠야 하고 물기를 바짝 말리기 위해서는 작게 얇게 잘라서 잘 펼쳐 널어야 한다. 며칠을 불려도 잘 떨어지지 않는 라벨을 떼기 위해서는 평소 쓰지 않던 철 수세미를 가까이하며 손을 긁혀야 한다.


그래도 지저분한 옷 벗고 깨끗하게 목욕한 재활용 쓰레기들을 보면 뿌듯하다. 엄마 말씀 잘 들은 착한 아이의 마음, 아이를 위해 무언가를 했다는 엄마의 마음 그 두 가지를 다 느낀다고나 할까.


야.. 재활용 쓰레기 우리처럼 버리는 사람 한 사람도 없다. 다들 엉망진창으로 막 버려. 우리도 이렇게 힘들게 하지 말고 대충 해서 버려도 되겠어..

분리배출하고 온 남편이 친정 아빠와 똑같은 얘기를 한다.  본인이 하는 것도 아니면서...


안 돼. 우리라도 제대로 해야지. 팔순 넘은 엄마도 하시는데... 앞으로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 이런 것 밖에 없어. 이거라도 제대로 해야지.


엄마 말씀 잘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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