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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주일장춘몽 Jun 18. 2022

울고 싶은 놈의 뺨을 때리는 사람은 나쁜 사람인가?

인생은 타이밍이다.


내 안에 찌꺼기가 너무 많이 쌓여 힘들 때가 있다. 버선목 뒤집듯 뒤집어서 거품 왕창 내 박박 빨아버리고 싶고 시원하게 뚜껑 열어 지저분한 감정들을 팡팡 털어내고 깨끗한 공기를 채우고 싶은데 그게 되질 않아 난감할 때가 있다.     


찌꺼기를 제 때 처리하지 못하고 계속 쌓아두면 결국 언젠간 무너지고 넘쳐버리게 된다. 언제 어떤 계기로 무너지느냐에 따라 다르지만 과정에는 대부분 약간의 알코올이 작용을 하고 결과는 눈물바람일 때가 종종 있다.

      

공주로 내려오기 전에는 가끔 만나는 술친구가 몇 있었다. 나와 그들은 절대 주당이 아니다. 그저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자리가 좋았을 뿐이고 좋아하는 사람들의 범위도 그리 넓지 않았다. 좁다고 하는 편이 더 나을까? 아무튼 인간관계의 폭이 넓지는 않지만 좁게 만나는 몇몇 친구들과 충분히 즐거웠다. 수다와 함께 쌓여가는 묵은 감정들을 풀기에도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이곳으로 내려오면서부터 대부분의 오프라인 관계가 단절되었고 내 안에 쌓이는 찌꺼기들을 털어낼 기회가 많이 사라졌다. 일이 있어서 서울을 갔다가도 차 시간에 맞춰 서둘러 내려와야 하고 며칠 친정에 머문다 해도 연세 드신 부모님 눈치 때문에 저녁 시간을 마음 편히 누릴 수가 없다. 애석하게도 이곳에서는 아직 누굴 사귈 만큼 마음을 열지 못했다.     


결국 주변의 편하고 만만한 사람을 잡고 늘어지게 되는데, 지금 나에게 그런 사람은 남편이다. 아니다. 만만한 사람이 아니라 이곳의 유일한 친구기 때문에 귀한 사람이다. 하지만 폭발 일보 직전이 되어가는 내 속에는 귀하다는 이성보다 만만하다는 감성이 앞선다.      


남편과의 술자리는 즐겁게 시작해서 즐겁게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가끔은 즐겁게 시작해서 그렇지 못하게 끝날 때도 있다. 어떤 때는 뉴스나 드라마, 영화 이야기에서 서로 다른 견해로 시작되기도 하고 명절이나 제사 문제가 시발점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무슨 얘기가 불편함의 시작이었는지 기억나지 않을 때도 많다.     


분명한 건 결단코 나도 남편도 원하지 않았지만 울고 싶었던 나의 뺨을 남편이 때렸다는 거다. 내가 속에 묵은 감정의 찌꺼기를 잔뜩 쌓아두고 어쩌지 못해 울고 싶었던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걸 건드릴 사람이 지금은 남편밖에 없으니까. 예전에야 사춘기를 겪는 아이도 있었고 같이 일하는 피디들, 절대 이해 안 되는 동료들 등등 나를 자극하고 뺨을 때리는 사람들이 사방에 있었다. 오히려 남편과 나는 일주일에 한 번만 만나기 때문에 서로 자극하지 않으려고 무척 노력했다. 하지만 지금은 남편 외에 나를 직접적으로 긁는 사람이 없다.      


남편이 나쁜 마음으로 그러는 게 아니라는 것은 안다. 대부분 특유의 무심함, 부주의함, 사소한 오해나 실수 등이 원인이다. 문제는 타이밍이다. 하필 그 타이밍에 남편이 나를 서운하게 했고 하필 그 타이밍에 내가 더 이상 참지 못한 것이다. 고백하자면 내가 그렇게까지 크게 화를 낼 일이 아닐 때도 많다. 하지만 보란 듯이 더 크게 화를 내고 시간을 끌기도 한다.          



그런데 달리 생각해보면 묵은 감정은 언젠가 어떤 계기로든 털어내야 할 것들이다. 쌓아두면 병만 되고 만고에 쓸모가 없다. 그렇다면 울고 싶어 하는 사람의 뺨을 때려주는 사람은 오히려 고마운 사람이 아닌가? 우리 모두 학교 다닐 때 울음 뒤에는 카타르시스가 찾아온다고 배웠으니까. 평소에 이런저런 감정을 쌓이게 하는 사람들이 더 문제고 그때그때 가뿐하게 털어내지 못하는 내가 더 문제인 것이지 털어낼 기회를 주는 사람을 닦달하고 몰아세울 수는 없는 거 아닐까?     


조만간(제사를 전후해서) 나는 또 울고 싶어 질 것이고 남편은 또 무의식 중에 내 뺨을 때릴 것이다. 생각해보면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것 같다. 피차 피곤하기도 하지만 묵은 감정을 정리하는 데는 비교적 효과가 있는 것도 같다. 


다만 주기가 너무 짧아지지 않도록 조심할 필요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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