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병 말호봉이니 참았지 만약 이병이나 일병이었다면 차마 돌아오는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지난 주말 아들 면회를 다녀왔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 군대 보내고 15개월 만에 간 첫 면회이자 마지막이 될 면회. 그동안 코로나 때문에 면회 제한이 잠깐 풀렸다 무기한 재개되기를 두어 차례 반복하는 사이 그만큼의 시간이 흘렀다.
아들은 경기도 연천에 있는 부대에서 포병으로 복무하고 있다. 어쩌다 한 번 사진으로 슬쩍슬쩍 보는 아들의 부대 풍경은 심란하기 짝이 없다. 보이는 거라고는 산과 숲, 그 속에 있는 낡은 컨테이너 가건물들 뿐이었다. 잠깐 제한이 풀렸을 때 면회를 가겠다고 했더니 아이가 자기는 적응해서 괜찮은데 엄마가 여기 왔다 가면 너무 속상해할 것 같으니 오시지 않는 것이 좋겠다며 말렸다. 그래도 아들 군대에 보내고 면회 한 번도 안 가는 부모가 될 수는 없다며 이번에는 꼭 가봐야겠다고 우겨서 면회를 가게 됐다.
아들 면회 가는데 가장 중요한 준비물은 아이가 먹고 싶다는 음식도, 면회 올 때 가져다 달라는 생필품도 아니다. 그것은 바로 “코로나 자가진단키트”. 아이는 면회 전 날도 면회 가는 길에도 전화로 진단키트를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그게 없으면 부대 앞에 와도 자기를 볼 수 없다면서. 부대에 도착하니 정문 앞으로 당직사관이 나와서 진단키트가 미개봉 제품인지 확인하고 검사를 진행한 후 음성인지를 다시 확인했다. 테스터기의 한 줄을 확인받고 나서야 대기하고 있던 아이와 함께 부대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부대 안으로 들어가서 본 모습은 사진으로 보던 것보다 훨씬 더 리얼했다. 아이가 왜 그렇게 면회를 걱정했는지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연병장이라는 곳은 어지러운 중장비 바퀴 자국에 여기저기 물웅덩이가 호수를 이루고 있고 생활관 시설들은 지금껏 내가 한 번도 보지 못한, 아니 상상도 하지 못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하긴 대대장실도 오래되고 낡은 컨테이너 박스 건물이니 다른 시설은 말해 무엇하랴. 아직도 이런 환경의 부대가 있고 내 아이가 이런 곳에서 1년 6개월을 사는구나, 그냥 사는 것도 아니고 밤낮 없이 뭐가 됐든 시키면 해내야 하는 고되고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구나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다.
면회실로 안내하면서 아들은 이곳이 제가 작년 여름에 돌 나르고 흙 퍼 나르며 새로 단장한 곳이라고 제법 그럴듯하지 않냐며 웃었다. 아들이 꼭 먹고 싶다던 초밥과 닭강정은 뻣뻣하게 굳어있었다. 이른 시간에 출발해야 해서 전날 저녁에 사둘 수밖에 없었으니 그 맛이 온전할 리 있을까. 하지만 아이는 다 굳어빠진 초밥과 닭강정을 맛있게 먹어치웠다. 여기서 이런 음식은 TV로만 보는 거라며. 기껏 초밥에 닭강정이 뭐라고. 오랜만에 맛있는 바깥 음식을 실컷 먹어서 저녁은 안 먹어도 되겠다는 아이에게 저녁도 꼭 야무지게 챙겨 먹으라고 당부했다. 너희들 밥 먹이려고 엄마 아빠가 세금을 얼마나 내는지 아느냐는 볼 멘 소리와 함께.
가끔 TV에 등장하는 군부대들을 보면 요즘 군대 많이 좋아졌다 소리가 절로 나온다. 몇 년 전 국군의 날 특집 다큐를 하면서 가봤던 부대도 생각보다 시설이 나쁘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우리 아들이 있는 2022년의 부대는 TV 속 부대와도 내가 직접 보고 온 부대와도 전혀 달랐다. 오죽하면 남편이 자기 군대생활하던 때보다도 못하다고 속상해했을까. (...남편은 공군이었다...)
아들은 이번 주에 병장으로 진급한다. 그리고 한 달 후면 전역 전 휴가를 나오기 시작한다. 그동안 쌓아둔 50일 정도의 휴가를 소진하기 위해서 무려 4회에 걸쳐 휴가와 복귀를 반복해야 한다. 미복귀 전역을 시켜주면 좋으련만. 들어갈 때와 마찬가지로 나올 때도 내 마음처럼 되는 것, 합리적으로 조율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 같다. 그게 군대의 특성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