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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주일장춘몽 Jun 28. 2022

모자라면 모자라는 대로,
많으면 많은 대로


며칠 전 좋아하는 브런치 작가님의 글을 읽다가 마음에 훅 들어와 버린 구절이다. 


“모자라면 모자라는 대로, 많으면 많은 대로”


이 작가님의 브런치에는 초보 자취생의 요리 체험기가 올라오는데 초보의 탈(?)을 쓴 고수의 느낌이 팍팍 풍겨 재미있게 보고 있다.     


그래. 맞다. 요리는 이런 거지. 우리네 엄마들이 언제 인터넷에서 레시피 찾아보고 음식 만들었던가? 엄마의 취향과 입맛에 맞게,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그렇게 요리해서 똑같은 된장찌개 김치찌개여도 집집마다 음식 맛이 다 다르고 우리 엄마 음식 맛은 정확하게 구별해낼 수 있었던 거 아닌가. 도시락 반찬으로 자주 등장하던 달걀말이도 맛과 형태가 똑같은 것이 하나도 없었다. 어떤 것은 다른 재료 없이 달걀로만 만든 깔끔한 달걀말이, 어떤 것은 갖은 야채를 다져 넣은 알록달록 달걀말이, 또 어떤 것은 김을 올려 강렬한 대비를 이루는 달걀말이, 반만 깨물어도 입안 가득 차는 퉁퉁한 달걀말이, 날씬날씬 달걀말이 등등.        


그런데 요즘은 어떤가? 000의 레시피, ㅁㅁㅁㅁ프로그램의 레시피 라면서 인터넷에서 정확한 조리법을 찾아보고 정확한 계량을 통해 음식을 만들기 때문에 음식의 맛과 모양이 천편일률 획일화됐다. 레시피에 나오는 재료 가운데 하나만 없어도 요리를 할 수 없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어떤 음식이 유행하면 너도나도 같은 음식을 만들어 인증숏을 올려 인터넷만 보고도 지레 그 음식에 질려버릴 때도 있다.     



요리뿐이 아니다. 어떤 기준 하나를 정하고 거기에서 조금 벗어나면 가차 없이 ‘틀렸다!’고 한다. 함부로 ‘가치 없다!’는 판단을 하기도 한다. 한 때 나도 그랬던 것 같다. 나만의 기준을 세워두고 거기에 맞아떨어지지 않으면 부족하다, 열심히 하지 않는다, 옳지 않다는 판단을 했던 것 같다. 그게 나를 향할 때도 있고 남을 향할 때도 있었지만 대체로 남을 향해 날을 세웠을 것이다. 고슴도치처럼 잔뜩 바늘을 세우고 나는 열심히 잘하고 있으니까 누구든 나를 건드리기만 해 봐. 가만 두지 않겠어.     


지금 와 생각해보니 여유가 없어서 그랬다. 자신이 없어서 그랬다. 내가 생각하고 정해놓은 틀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유연하게 대처할 여유가 없으니까. 내가 죽을힘을 다 해 하고 있는 일이 잘못된 것이라고 하면 다 버리고 다시 시작할 자신이 없으니까. 


우리 엄마들은 다른건 몰라도 가족들 먹일 요리에는 일가견이 있었다. 소금이 부족하면 간장으로 대체하거나 반대로 설탕을 넣어서 짠맛을 돋보이게 하는 비법을 알고 있는 요리 고수다. 어떤 한 재료가 부족하거나 많아도 전체적인 맛의 조화를 이루는데 지장이 없게 할 여유가 있다. 그러니 재료 한두 가지, 조리 순서 따위는 전혀 장애가 되지 않았다.      



"괜찮아, 대세에 지장 없어."


요즘 내가 좋아하는 말이다. 뜨거운 커피를 좋아하지만 좀 식은 커피를 받아도 싫은 소리를 되돌려줄 만큼의 큰 일 아니고 어차피 해야 할 일, 하루 이틀 빠르거나 늦어도 남에게 피해만 되지 않는다면 괜찮다. 100년 사는 인생, 몇 년쯤 딴짓하며 돌아가도 대세에 지장 없다.     


알고 있다. 다 알지만 모자라면 모자라는 대로, 많으면 많은 대로가 음식 만들 때는 좀 되는 것 같은데, 왜 다른 곳에 적용하는 것은 여전히 잘 안되는지 그건 모르겠다.               




p.s. 호호야님~ 맛있게 즐겁게 잘 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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