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March. [김진애의 도시 이야기]를 읽고 나서
도시, 사실 나의 깜냥이 감당할만한 수준의 영역은 아니다. 하지만 이 글을 쓰고 있는 나의 책상부터 시작해 오피스, 우리 층, 오피스 빌딩, 역삼동 그리고 서울까지 조금씩만 확장해 나가다 보면 결국 도시에 이르게 된다. 한 회사의 오피스 생활자들을 위한 여러 영역을 다루다 보니 '도시'라는 아젠다에 대해서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출근길에 자주 듣는 '김어준의 뉴스공장'을 비롯해 여러 매체에서 유쾌하고 명쾌한 도시 해설을 하던 김진애 작가의 책이라 사실 오래전에 구입해 두었다. 사실 '책이란 구입하는 순간 반은 내 지식이 된다'라는 소신을 믿고 산다. 그 핑계로 이 책은 사두고 오랫동안 책 꽃이에 내 지식인양 놓여 있었다. 그러다 내겐 나름 오피스 빌딩 리뉴얼이라는 큰 도시를 설계해야 하는 프로젝트가 생겼다. 어떤 프로젝트를 만나던지 항상 하루 종일 만나는 모든 것들이 이와 연결된다.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동안에는 그 순간적인 감각들에 집중하며 살아간다. 아마 이 책도 지금 읽기 위해서 지금껏 책장에 꽂혀 있었나 보다. 이책은 그렇게 시작됐다.
사람이 들어오면 도시는 이야기가 된다
모든 사람은 그들만의 이야기가 있다. 그리고 사람들은 타인의 이야기에 관심을 가진다. 특별한 이유는 없다. 재미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기장을 몰래 훔쳐보는 게 재미있고 타인의 SNS를 보다 보면 시간이 금방 잘 지나간다. 타인의 서사가 꼭 극적이거나 운명적일 필요는 없다. 다소 지루하더라도 나의 삶의 태도와 맞닿았을 때 흥미가 생기고 관심이 생긴다. 개인의 이야기는 타인과의 만남을 통해 관계를 맺고 풍부해진다. 그리고 그렇게 풍부해진 이야기들이 모여 도시의 이야기가 된다. 사람들이 이야기를 만들때 도시의 다양한 장소들을 이용한다. 그래서 도시는 사람들과 상호작용을 통해서 이야기들을 만들어 낸다. 도시와 사람이 서로 주고 받는 이야기들의 축적이 각각의 기억으로 남고 그들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
나는 서울의 강서구에서 태어나 40년을 가까이 한 번도 이곳을 떠나지 않았다. 물론 엄청난 계획으로 의도한 건 아니다. 이곳에서 태어나 학창 시절을 거쳐 결혼을 하고 딸이 태어나 그 친구가 다시 초등학교를 들어갈 때까지. 옆집 숟가락이 몇 개인지 아는 수준은 아니지만 그동안의 나의 삶과 이곳은 서로 기억을 주고받았다. 서울의 화려한 강남은 아니지만 40년 동안 나와 쌓은 애틋함으로 내게는 상당히 소중한 곳이다. 내 옛 친구들과 연인과 지금의 가족과 쌓은 많은 이야기들이 있는 곳. 사람과 공간은 이렇게 이야기는 매개로 서로 감정들과 기억들을 쌓아간다.
나이가 들어 서울이라는 큰 도시를 겪으면서도 내 마음이 가는 곳과 뭔지 모를 어색함이 있는 곳들이 생겼다. 도시가 가지고 있는 다양한 콘텍스트 중 내게 맞는 영역과 아닌 영역이 구분되었다. 주로 나에게 맞는 영역은 세월의 흔적이 잘 축적되어 있는 곳들이었다. 멋지고 화려하지는 않아도 그 위치에서 올곧이 자신을 지키며 있는 공간들... 그런 공간들을 경험하며 내 방식대로 이 서울이라는 도시를 기억하고 읽어 내려갔다. 내가 나이 듦과 같이 도시도 시간이 지나면서 변화한다. 다양한 이해관계를 거치며 도시는 변한다. 변화는 과정 속에서 그 지역과 장소가 가지고 있는 본질을 잃기도 하고 탄탄한 뿌리를 내리기도 한다. 어느 것이 옳고 그릇되었는지는 바로 판단할 수는 없다. 결국 어떤 방식의 변화일지라도 사람들이 있는 공간은 이야기를 만들어 낼 것이고 사람들을 기억할 것이다. 그리고 그 기억으로 도시의 변화는 재평가 된다.
서울이라는 도시, 더 작게는 강남 역삼역 주변의 빌딩관리를 담당하게 되면서 타워 주변의 지역을 더 알아가고 탐구하고 싶어졌다. 왜 이곳은 지금 이 모습을 가지고 있으며 어떠한 변화의 시행착오를 겪고 있고 더 나은 변화를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 이곳의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서 내가 맡고 있는 공간에는 어떠한 콘텐츠가 필요할까. 그리고 이 콘텐츠를 공간이 어떻게 다뤄야 하는가. 도시부터 출발한 나의 고민은 결국 공간의 콘텐츠로 이어졌다. 공간의 콘텐츠가 곧 이곳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지금 이 건물은 건축 당시의 이곳에서 맡았던 건축적 역할을 충분히 해내었고 지금 이 자리에 서있다. 하지만 지금의 사회 문화는 그때의 태도와 사뭇 다르다. 지금의 시대적인 요구에 이 타워가 잘 대응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저 묵묵히 자신의 위치에서 충분한 역할을 한 이곳은 무료해졌다. 그래서 나는 이야기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판단했고, 변화를 준비중이다. 그렇다고 대단한 변화를 한 번에 만들 수는 없고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다. 건강한 변화를 위해서 이곳의 생활자들에게 조금씩의 변화를 보여주며 상호작용 하는 게 더 옳고 생각한다. 그래야 작은 이야기들이 커지고, 축적되어 본질을 잃지 않는 태도 지키며 이를 생활자들이 이해하게 된다. 그러면서 본인들의 이야기를 이곳을 통해 만들고 그렇게 이곳에서 살아가게 된다.
이 책을 읽고 쓰기전에는 대통령 선거 전이었다. 3월에 발행하겠다던 나의 약속은 상당히 간단한 이유로 미뤄졌다. 선거가 끝나고 한동안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렇게 또 몇 년의 퇴보를 겪고 다시 일어나 조금의 성장을 만들어야 하나'라는 생각을 나 같은 소시민이 하고 있었다. 너무나 당연하게 여겼던 상식이 무너지는 게 내가 이 선거에 너무 과몰입했던 건 아닐까라는 반성이 되었다. 빨리 잊기 위해서 아껴두었던 드라마를 시작했다. 다행히 따뜻한 이야기로 치유되었다. '스물다섯, 스물하나'에 나오는 그 시절 이야기는 내가 지금껏 서울을 겪으면서 함께 했던 이야기다. 그 기억들 한 장 한 장을 되짚으며 다시 웃었고 다시 일어났다. 별거 아닌 일에 매몰되어 있었던 나를 그 이야기들로 치유해주었다. 그리고 다시 돌아와 예전의 나처럼 일을 시작했다.
다시 돌아와 보니 어쩌면 나는 작은 사회에서도 권력자일 수 있다는 걸 깨달았을 때 정신이 바짝 들었다. 처음 이곳에 와서 그렸던 많은 상상들이 이제 실제 눈 앞에 다다르니 덜컥 겁이났다. 이 건물의 변화를 위해서 다양한 이야기를 만들어야 겠다는 내 생각이 불연듯 무서워졌다. 하지만 해야한다. 여기서 생활하는 사람들을 위한 이야기들로 채워나가다 보면 될 것이다. 고집하지 않고 반성할 줄 아는 태도를 잃지 않으면 크지는 않더라도 생활인들이 충분이 공감해줄 이야기들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 위해서 먼저 그들의 생활에 더 다가갈 것이며 그들의 불편함에 대한 작은 해결책들을 제안해 볼 것이다. 이 작은 노력이 크게 대단하지는 않더라도 조금씩 조금씩 쌓여서 건강한 이야기로 만들어 지기를 기대한다. 힘들고 지쳐도 우리는 사람과 호흡하며 극복하고 지내왔다. 그렇게 해보면 된다. 생각해보면 그리 별게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