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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교단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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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조제 Sep 23. 2020

사원증 목거리를 차는 교사

  이번에 근무하게 된 학교는 특이하게 사원증 목걸이를 걸게 한다(학교가 회사는 아니니까 정확히 말하면 ‘사원증’ 목걸이는 아니지만 달리 표현할 말을 찾지 못했다). 카드 앞면엔 대학 막 학기에 찍은 증명사진이 프린트되어 있고, 그 밑으로는 '교 사’라고 적혀 있다. 뒤집으면 고등학교 이름과 바코드가 새겨져 있는데 무엇을 위한 바코드인지는 아직 알아내지 못했다. 카드는 촌스러운 초록 목걸이 끈에 연결되어 있는데 은근 귀엽기도 하다.


  관리자는 일과 중 목걸이 착용을 권고했지만 며칠을 서랍 속에 그냥 넣어두었다. 회사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이나 하는 줄 알았던 사원증 목걸이를 차려니 괜히 민망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어제, 서랍에서 클립을 꺼내는데 사원증 목걸이가 손에 치였다. 한 번 걸어나 볼까?하는 생각에처음으로 촌스런 초록 줄을 목에 둘러 보았다.



  기간제 교사 면접일, 자기소개해보세요~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느꼈던 당황스러움을 기억한다. 이름과 출신 대학 정도를 허접스럽게 주절거리고 나서 찾아왔던 자기 인식에 대한 빈궁함은 충격적이었다.  그.. 글쎄요 전 어떤 사람일까요?라고 되묻고 싶어 지는 이유는 나를 설명할 수 있는 말이 너무 많아서일까 아니면 전혀 없어서 일까. 사원증에서 말하는 내 아이덴티티는 너무도 명확해 조금은 당황스럽기까지 했다. 교 사. 아, 나는 가르치는 사람이구나. '가르치다'를 네이버 사전에 검색해보았다.

'지식이나 기능, 이치 따위를 깨닫게 하거나 익히게 하다'

나는 누군가에게 지식이나 기능, 이치 따위를 깨닫게 하거나 익히게 할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인가? 먼저 나는 깨달아 익히고 있는가? 언제나 대답하기 부끄러운 질문이지만 계속해서 되물어야 하는 질문이기에 나는 이 질문이 잔인하게 느껴진다.


  해가 바뀌며 고등학교 1학년 통합사회 수업을 새로이 맡게 되어 첫 번째 수업을 진행 중이었다. 한참 화면에 띄운 프레젠테이션을 가리키며 설명을 하는데 한 남학생이 손을 들더니 질문을 던졌다.

ㅡ선생님 방금 말씀하신 예시가 전에 설명하신 이론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 잘 와닿지 않습니다.

내가 학생의 이해를 돕기 위해 든 예시가 이론적인 설명과 어떤 연관성을 갖는지 잘 모르겠단 것이었다. 학생의 질문을 받고 생각하니 학생의 질문이 충분히 타당했지만 갑작스런 질문에 당황해서인지 명쾌한 답변을 주지 못했다. 그런 스스로가 부끄러워 순간적으로 온몸에 열이 올랐다.


평소 수업 준비를 나름 성실하게 하는 편이라 생각했고, 수업을 진행하는 것에 대한 부담 또한 잘 느끼지 않았기에 이런 경험은 나에게 큰 자극이었다. 학생들은 정말 나의 말 하나하나 귀 기울여 듣고 영향을 받는다는 걸 적나라하게 확인한 순간이었다. 그리고 반성했다. 혹시나 내가 작년에 고3 학생들을 가르치다 이번에 고1 학생들을 가르치게 되어, 그리고 상대적으로 시험 부담이 적은 '통합사회'라는 과목을 맡게 되어 무언가 나태한 생각을 가졌던 건 아닌가 하고. 앞으로 자료 하나하나, 예시 하나하나를 준비할 때도 더 많은 주의를 해야 할 것 같다. 그 질문을 한 학생이 몇 반의 누구였는진 기억나지 않는데 굉장히 똘똘한 친구인 것 같다.  반성하게 하고, 수업 준비에 더욱 열심을 내게 해주어 고맙다.

  사원증 목걸이에 대해 무언가 쓰고 싶어 시작한 글이 여기까지 왔다. 교무실을 슥 둘러보니 목걸이를 찬 선생님들도 몇몇 계셨지만 대부분 차지 않으신 분들이 많았다. 개인적인 다짐으론 난 앞으로 매일 이 목걸이를 찰 예정이다. 아침마다 나 혼자 하는 일종의 작은 의식이랄까? ‘나는 교사다.’ 나는 가르치는 사람이고, 깨달아 익히게 하기 위해 먼저 깨달아 익혀야 하는 사람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이 목걸이는 목에 차기 너무 무거운 것 같다.


(2019년 3월 13일 교단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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