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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현우 Apr 12. 2020

다크소울 스토리텔링

유튜브 스크립트 용도로만 글 쓰기 싫어서 브런치에 끄적입니다.

그러므로 브런치 글에는 문맥상 있어야 하는 요소가 빠져있는 경우가 있을 수 있습니다.

살면서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을 게임에 투자했습니다. 초등학생 때부터 닌텐도 게임기와 플레이스테이션을 가지고 놀았고, 게임 덕분에 안경도 평생 쓰게됐죠.덕분에 다양한 게임에 오랜 시간을 투자했는데, 이런 제가 가장 사랑하는 게임은 <다크소울> 시리즈입니다.


<다크소울> 시리즈에 빠진 이유 중 하나는 입이 떡 벌어지는 맵 디자인입니다. 세 편의 시리즈 중 2011년에 출시한 <다크소울>이 특히 맵 디자인이 유려합니다. 튜토리얼 구역인 "북방의 수용소"에서 까마귀를 통해 처음 가게되는 지역은 "계승의 제사장"인데, 이 제사장은 문자 그대로 게임의 중심 구역입니다. 이 구역은 게이머가 게임을 진행하다보면 가게되는 모든 지점과 물리적으로 연결되어있습니다. 계단을 통해 아래로 내려가면 비룡의 계곡, 작은 론도로 갈 수 있고, 다른 방향으로 가서 승강기를 타면 불사의 교구와 바로 이어지죠. 게임의 사실상 막바지 지점과도 바로 연결되어있다는 걸 게임을 진행하다보면 알 수 있습니다. 최종 구역이 코앞에 있었는데 게이머는 이를 전혀 모른채 게임을 진행하게 되는거죠.


게임을 진행하다보면 각각의 지형들이 모두 이 계승의 제사장과 연결되어있다는 걸 깨닫게 되고 게이머는 자연스럽게 감탄하게 됩니다. 그래서 <다크소울>의 지형을 추상화하면 아래와 같은 지도가 나오기도 합니다. 특정 구역을 제외하면 모든 구역이 어떤 식으로든 연결되어있어서 걸어서 이동하는 게 가능합니다.



다만 이런 맵 디자인은 <다크소울>에서 극대화됐고, <다크소울2>는 다소 선형적인 맵 디자인을 채택합니다. <다크소울3>로 오면 다시 유기적으로 연결된 맵 디자인이 채택되기는 하는데, <다크소울>에 비하자면 다소 선형적인 구조를 띄고 있어서 이 부분은 아쉽다는 지적도 나왔죠. 그럼에도 다른 대부분의 게임에 비하자면 <다크소울3>도 충분히 아름다운 맵 디자인을 채택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옆동네 게임이지만, <바이오하자드7>과 <바이오하자 RE: 2>의 맵 디자인도 훌륭합니다.


또, 찰진 전투가 <다크소울> 시리즈의 매력이기도 합니다. <다크소울>에는 워낙 다양한 무기들이 있고, 각각의 무기들은 대부분 각자만의 무브셋(무기 모션)을 가지고 있죠. 히트박스도 세밀하게 디자인되어있어서 고인물들은 적을 때릴 때나 적의 공격을 피할 때 이 히트박스를 이용하기도 합니다. 특히 <다크소울3>의 히트박스는 가히 예술적입니다. 아래 영상처럼요.



태양의 기사 세트를 입은 이 캐릭터는 (아마도) 롱소드를 장비한 채 전기를 쓴 듯 보입니다. <다크소울3>에는 각각의 무기에 무빙셋도 다르고 각각 무기들마다 '전기'라는 이름의 특수스킬이 붙어있는데, 롱소드의 전기를 쓰면 롱소드를 아래에서 위로 올려치는 모션이 나옵니다. 이때 캐릭터가 몸을 살짝 아래로 숙이는 모션이 있는데 덕분에 적의 공격에 맞지 않는 것을 확인할 수 있죠. 이를 두고 해외에서는 Hitbox Porn(히트박스 포르노)라 표현하기도 합니다(더 많은 히트박스 포르노).


<다크소울> 시리즈의 전투가 재미있는 이유는 다양한 무기와 히트박스 때문도 있지만, 다른 이유도 많습니다. 일단, 이펙트 사운드가 워낙에 찰지죠. 이는 <다크소울> 시리즈뿐 아니라, 프롬소프트웨어에서 만든 게임 <블러드본>이나 <세키로>도 마찬가지입니다. 또, 게이머들이 상대하는 적이나 보스들은 개성적이고 매력적입니다. 보스들이 전투에 임하는 모습도 매력적이지만 이들에게는 모두 흥미로운 스토리가 담겨있어서 게이머 입장에서 이들을 상대하는 건 하나의 장대한 스토리의 일부가 되는 느낌도 받게 됩니다.



<다크소울> 시리즈에서 무엇보다 제가 가장 사랑하는 건 이 게임의 스토리입니다. 어른들을 위한 동화같은, 구전신화같은 스토리는 굉장히 매력적이죠. 무엇보다 스토리를 전하는 방식, 스토리텔링이 딱 제 취향입니다. <다크소울> 시리즈에는 컷신이 많지 않습니다. 히데오 코지마의 <데스 스트랜딩>을 해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코지마의 게임에는 워낙 컷신이 많고, 코지마의 인물들은 쟤 왜 저러냐 싶을 정도로 쉴새 없이 떠듭니다. 유튜브에는 <데스 스트랜딩>의 컷신을 모은 영상이 있는데 그 영상의 길이는 11시간이 넘습니다.


<데스 스트랜딩>이 정도가 심할 뿐, 대부분의 게임은 컷신이나 인물간의 대화를 통해 스토리를 전해줍니다. 영화나 드라마는 인물간의 대화나 독백, 가사있는 음악을 활용하고는 하죠. 자신들이 힘써 만든 스토리를 어떻게든 게이머나 관람객, 시청자들에게 전해주려고 온갖 장치를 동원하는 겁니다. 특히 한국이나 일본의 콘텐츠들은 이 부분에서 다소 강박적입니다. 그래서 한국과 일본의 콘텐츠에는 항상 감정적인 음악이나 가사가 섞인 음악들이 영상을 가득 채우고는 하죠. 또, 한국과 일본 콘텐츠의 인물들은 스토리를 설명해주기 위해 비현실적일 정도로 혼잣말-독백을 많이 합니다. 이런 스토리텔링은 한국인, 일본인들이 다른 국가의 사람들보다 눈치를 많이 보는 것에서 기인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데, 이 이야기를 하자면 말이 길어질 것 같으니 일단 여기서 줄이겠습니다.


<다크소울>도 일본 게임이고, <다크소울>에도 컷신이 있기는 하지만, 오프닝 컷신을 제외하면 보스전에 나오는 컷신이 대부분입니다. 그런데 <다크소울> 시리즈의 오프닝 컷신은 이야기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만을 다룰 뿐, 필요한 만큼 많은 정보를 담고있지는 않습니다. 보스전의 컷신도 마찬가지입니다. 보스전에 컷신이 없는 경우도 많고, 컷신이 나와도 보스가 직접 말을 하며 스토리를 전해주는 경우는 흔치 않습니다. 오스로에스 보스전이나 로스릭 형제 보스전에서와 마찬가지로 보스가 대사를 하는 경우에도 대체 뭔 말을 하는 건가 싶을 정도로 뜻이 모호한 경우가 많죠. 아래는 컷신에서 오스로에스의 대사입니다.



Ahh, dear little Ocelotte.
...아아, 사랑스런 오셀롯.
Where have you gone? Are you hiding from me?
어디니? 어디로 갔니?
Come out, Come out, don't be afraid.
이리 오렴, 하나도 무서워 할 것 없단다.
You were born a child of dragons, what could you possibly fear?
왜냐하면 넌 용의 자손, 그렇게 태어났으니.
Now, now, show yourself, Ocelotte.
그러니, 자아, 오셀롯.
My dear, little Ocelotte.
우리 오셀롯.
(참고로 한글 자막은 영문의 원 뜻과 다릅니다)


오스로에스는 "오셀롯"이라는 아이를 언급하는데, 정작 그의 품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를 통해 게이머들은 오스로에스가 미쳐버렸단는 걸 알 수 있죠. 하지만 이 컷신만으로는 오스로에스가 왜 미쳐버렸는지, 왜 로스릭 성 아래 인간의 고름들이 득실거리는 구역에 있는지, 성당 기사들은 왜 오스로에스 보스전 구역 앞에 있는건지, 성당기사들이 그를 가두고 있는건지, 아니면 그를 지키고 있는건지, 오셀롯이라는 아이의 정체는 무엇인지-실제로 존재는 하는 인간인지, 그 아이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살았다면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프롬뇌로 불리고는 하는 게이머들은 오셀롯이 살았다는 것을 전제로 게임 공간을 사방팔방 뒤지면서 오셀롯으로 추정되는 인물을 추측하고는 합니다. 하지만 추측할 뿐, 누구인지 특정하지는 못하죠. 즉, <다크소울> 시리즈의 컷신은 의문을 해소시켜주기는 커녕, 오히려 증폭시키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안에 힌트가 담겨있기는 하지만요.


그러면 <다크소울>은 어떻게 스토리텔링을 할까요? 게임의 거의 모든 요소를 활용해 스토리를 전합니다. 위에서 살짝 언급한 맵 디자인도 그 중 하나입니다. 모든 지역은 스토리를 머금고 있습니다. 그 지역에 있는 몬스터,  그 지역에 있는 몬스터가 쓰는 장비, 그 몬스터가 사용하는 마법, 그 지역에 있는 아이템, 그 지역에 있는 NPC, 특정 지역에서 갑자기 출연하는 암령, 그 지역과 연결된 또다른 지역 등은 모두 간접적으로 스토리를 전합니다. <다크소울>은 장인-미야자키 히데타카가 만든 게임답게 우연적 요소가 거의 없다시피 하거든요. 가령, 앞서 언급된 오스로에스를 처치하면 게이머는 "요왕 오스로에스의 소울"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 소울에는 그에 관한 스토리에 담겨있습니다.



이 소울을 통해 게이머는 오스로로에스가 한 때 로스릭이라는 국가의 왕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왕은 피를 구하는 과정에서 어떤 이유에선지 "발광"했고, 이후 "대서고의 이단과 이어졌다"고 합니다. 그 뒤에는 "백룡 시스의 일그러진 신앙이었다"는 문구가 있는데, 이를 통해 오스로에스가 <다크소울> 1편에 등장했던 백룡 시스처럼 불멸의 존재 혹은 고룡이 되려고 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이는 한 때 사람이었지만 지금은 용과 비슷한 형상을 취하고 있는 요스로에스의 외형을 통해서도 추측할 수 있죠. 


하지만 이 소울만으로는 "대서고의 이단"이 어느 세력을 지칭하는 것인지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게이머들은 이를 확인하기 위해 다른 아이템의 설명을 읽어야 하고, 필요하다면 대서고에도 다시 방문해서 그 곳에서 누가 세력을 과시하고 있는지 파악해야 합니다. 탐험을 끝내면 게이머는 "대서고의 이단"이란 존재가 머리 위에 촛불을 달고 다니는 현자 세력이란 걸 알 수 있게 되죠. 또, 현자 세력이 로스릭에서 이단 취급을 받았다는 정보도 취득하게 됩니다. 모순적인 것은, 로스릭의 현자가 기사, 제사장과 함께 로스릭의 3기둥으로 평가받기도 한다는 겁니다. 그러면 대서고에 있는 그 촛불 머리들은 현자가 아닌 걸까요? 아니면 한 때는 3기둥으로 평가받았지만 어느 시점부터 이단으로 평가받은 걸까요? 이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추가적인 정보가 필요한 듯 보입니다. 게임은 설명해주지 않거든요. 


이렇듯, <다크소울> 시리즈는 스토리를 직접 전달해주지 않고, 게이머가 직접 아이템의 설명을 읽고, 여러 구역을 탐험해야만 스토리를 이해할 수 있게끔 유도하고 있습니다. <데스 스트랜딩>처럼 '입 벌려 스토리 들어간다'면서 스토리를 반강제적으로 전달하지 않기 때문에 <다크소울>을 수차례 플레이했어도 이 게임의 스토리를 전혀 모르는 게이머들도 적지 않습니다. <데스 스트랜딩>식의 스토리텔링을 '친절한' 스토리텔링이라 하고, 반대로 <다크소울>식의 스토리텔링을 '불친절한' 스토리텔링이라고 여기는 사람들도 없지는 않습니다. 저는 <다크소울>의 방식이 게이머들에게 상상의 나래를 펼칠 자유를 준다고 면 때문에 선호하지만, 이런 스토리텔링을 불편하게 느끼는 사람도 분명히 존재하기는 하죠.


한편, 게임을 모두 플레이하고, 게임의 모든 정보를 습득한다고 해도 <다크소울> 시리즈의 스토리를 완전히 이해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다크소울>을 제작한 회사는 프롬소프트웨어인데, 부족한 퍼즐조각으로 스토리를 짜맞추는 걸 "프롬뇌 굴린다"는 식으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다크소울>은 스토리를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퍼즐 조각을 제공하기는 하지만, 이 퍼즐 조각들을 모두 조합해도 하나의 완성된 그림을 만들 수는 없습니다. 왜? 조각이 빠져있거든요. 결국, 게이머들은 부족한 퍼즐 조각만을 가지고 전체 스토리를 상상해야 합니다. 그래서 게이머마다 <다크소울>의 스토리를 각각 다르게 해설하기도 하죠.  유튜브에서는 Vaatividya라는 유저가 프롬 게임 스토리를 해설해주는 것으로 유명한데, 결국 이것도 프롬뇌로서, 정답은 아닙니다. 정답 자체가 존재하질 않습니다.


<다크소울> 시리즈의 감독은 미야자키 히데타카입니다. 미야자키는 크툴루 신화로도 잘 알려진 H.P 러브크래프트의 광신도이면서 <드라큘라>를 쓴 브램 스토커의 팬입니다. 제가 <드라큘라>는 아직 안봐서 뭐라 코멘트를 못하겠는데, 러브크래프트의 작품은 <다크소울> 시리즈나 <블러드본>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미야자키의 작품에서 러브크래프트의 작품을 오마주한 부분도 많이 찾을 수 있지만, 특히 러브크래프트의 스토리텔링을 대거 탑재했죠. 러브크래프트 역시 모든 정보를 독자들에게 전하지 않습니다. 다만 부족한 퍼즐 조각을 나눠준 뒤에 나머지는 독자들의 상상에 맡기죠.


독자들에게 상상할 여지를 줘서인지, 독자들이 직접 스토리를 써내려갈 수 있게 여지를 줘서인지, 미야자키 히데타카의 게임이나 러브크래프트의 작품은 여전히 컬트적인 인기를 받고 있습니다. <다크소울> 시리즈나 <블러드본>은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플레이하고 있고, 밈도 꾸준히 생성되고 있습니다. 또, 러브크래프트를 기리는 팬아트 역시 꾸준히 만들어지고 있죠. 미국의 헐리우드나 게임 제작자들은 여전히 크툴루 신화에서 모티브를 얻어 게임을 제작하고 있습니다. <서던리치: 소멸의 땅>, <버드박스>에서 러브크래프트의 흔적을 찾을 수 있고,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리그 오브 레전드> 같은 러브크래프트와 무관해 보이는 게임에서도 러브크래프트의 흔적을 찾을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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