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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윤 Jan 12. 2022

#1 글쓰기를 시작한 이유

사회에서 잃어버린 나의 개성 찾기


어느 날, A가 말했다.

"보라보라이고, 빨강이는 빨강인데, 내가 보기에 넌 색깔이 없어, 흐리멍덩해 "

친구가 나한테 한 말인데, 난 이 말을 당시에는 칭찬으로 받아들였다. 어떤 색깔도 품어줄 수 있는 살구색과 같다는 말인가? 당시, 내가 지향하는 바였다. 다년간 서비스직에 종사하던 중이라 서비스 마인드를 탑재하기 위해 노력했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고 보니까, 사회에서 잃어버린 개성을 나한테 다시 되찾아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왕이면, 갈색으로 찾아주고 싶다. 뽑히지 않고 깊게 뿌리박은 고목나무 색깔처럼, 나에게 색깔을 부여해주고 싶다. 그리고, 나무는 수천 년 동안 남아있지 않은가? 그렇게 나의 사유도 기록으로 남기고 싶었다. 베스트셀러는 안되어도 나중에 자손의 자손의 자손이  [조상님이 쓰신, 지혜의 책]이라고 보관해주길 바라는 나의 귀여운 욕망도 포함한다. (사실, 여행 다니면서 돈 버는 하루키 팔자 정도 노리고 있다.)



어느 날, A가 말했다.

"넌 너무 생각이 많아"

이어서 "무슨 소크라테스 야?"

나는 진심으로 부러워서 대답했다.

"넌 생각이 없어서 좋겠다."

그랬더니, A는 몹시 성을 냈다.

"아, 아니... 불필요한(?) 생각 없어서 좋겠다고"

당황하면서 달래주었다.



이전 직장상사도 퇴사할 때 나한테 말했다.

“OO 씨는 18세기에 태어났어야 해, 에디슨 같아, 질문이 너무 많아...”

이건 바로 수긍하고 적용했다. 다음 직장에서부터는 질문을 자중했다. 근데, 좀 서글펐다. 사원들이 그분을 히스테릭하다고 씹을 때, 나는 쉴드 쳐줬다. 다른 유부남 상사들과 다르게, 그분은 “우리 애가 이유식을 안 먹어서 고민이에요” 한탄을 하고, 일 끝나면 애 데리러 가야 한다고 곧장 귀가하고는 했다. 그래서 함께 뒷담에 동조할 수 없었다.



코로나 때문에 모임도 줄어들었다, 모임 나가서 신나게 남의 뚝배기 깨고 간혹 분위기 흐리면서 놀다가 집> 회사, 회사>>집 만 오가다 보니까, 어느새 나는 니체가 되어 버렸다. ​


 산기슭에 처박혀서 책만 읽는다.

그러다가, 지난날의 나를 좀 반성하는 중이다. 오만했다. 소크라테스 말년이  다구리 당하고 사형인데, 나는 그렇게까지 지(知)에 이르고 싶진 않다.


고립되고 싶지 않다. 나는 사람이 좋다. 하물며, 내가 철학자도 아니다. 물론 철학 재밌다. (와타시와 철린이) 모든 학문의 기초이자, 문명의 시작이라고 본다. 그걸 좀 재밌고 읽기 쉽게 풀어서 꿀벌과 같은 역할로 달콤하게 전달하는 것도 이 시대가 바라는 작가상인 것 같다.


​혼란하다, 혼란해. 하던 와중에 너무 무겁게 생각하는 습관들을 내려놓기 위해 책을 쓰기로 결심했다.


생각해 보면 신기한 게, 나만큼 자기 세계 갇혀있는 사람이, 사회성은 좋고, 사람과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많다는 것이다. 모순적이지만, 나를 괴롭게 하는 게 너무 포커스를 내부에 두는 습관에서 비롯된 것 같다. 자아의 밸런스를 맞추기 위해 대상을 자세히 보려고 노력하고 글을 쓰면서 좀 더 관심을 외부로 돌리려고 한다.

여하튼, 자가 치유와 자신의 기준을 공고히 하기 위한 글쓰기를 시작하는 게 나의 신년 목표이다.  

내가 원래 용두사미형이어서, 일부러 이렇게 글로 남긴다. 포기하지 말라고, 내 장기 프로젝트는 글쓰기라고, 책 쓰는 거라고,


개성을 발견하고 키우려면 저지르지 말고 관찰해야 한다. 느끼지 말고 생각해야 한다. 충동은 마음이라는 바다 표면에서 끊임없이 일렁이는 물결과 같다. 또는 동굴 입구에서 부는 바람과 같다. 프로이트와 융을 들먹이지 않아도 우리는 동굴 속이 어떻게 생겼는지 모른다. 잠수함을 타고 수면 아래로 내려가 보자. 횃불을 들고 동굴 안으로 들어가 보자. 자문자답이 우리의 잠수함이고 횃불이다.  
솔직함을 막는 두 번째 요소는 자신을 치장하고 싶고, 뽐내고 싶은 욕심이다. 누구라도 이 욕심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허영의 대상이 지식이 아니라, 도덕적 우월감이나 예민한 감수성, 사회에 대한 비판의식, 아름다운 문장, 유머감각일 수도 있다. <장강명_책 한번 써봅시다>
주위 사람들이 무지 또는 편견, 잔혹성에 사로잡혀 있는 경우, 주위 사람들과 사이좋게 지내지 못한다는 것은 남다른 재능이 있다는 것을 드러내는 징조이다. 그리고 어떤 환경이든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무지와 편견, 잔혹성과 같은 특징을 가지고 있다. 사회를 바라보는 통찰력을 지나치게 발전시키는 것은 좋지 않다. 그렇게 되면 자신이 어떤 의견을 내놓으면 사회적인 적의에 직면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떨게 된다. 바람직한 해결책은 바로 이러한 적의를 될 수 있는 한 대수롭지 않은 것, 또한 될 수 있는 한 아무런 영향력도 발휘하지 못하는 것으로 만들어 버릴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를 찾는 것이다. <버트런트 러셀_행복의 정복>



찌질하더라도 진정성 있게 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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