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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밤별 Nov 05. 2019

왜 나만 안될까

이야기 3. 취업

나는 22살에 학업을 마쳤고 6개월 졸업 유예를 한 후, 그 기간동안 인턴을 하고 23살 여름에 대학을 졸업 했다. 또래에 비해 조금은 빠른 졸업이었다.

그 즈음 취업시장이 어렵다고 듣긴 했지만, 이런 저런 회사에서 인턴도 했었고 영어 성적이나 학점도 왠만큼은 만들어 놨으니 취업이 되지 않을까? 하고 막연하게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서류 지원을 몇 번쯤 했더라. 너무 오래전 일이라 가물가물한 기억이지만 최소 100 군데 이상은 지원 했던 것 같다. 그리고 가뭄에 콩 나듯이 면접을 봤고 떨어졌다.

취업 준비생 기간동안 오전에는 '다른 사람과 공동의 업무를 수행하면서 부딪혔던 기억'에 대해 곱씹고 오후에는 '가장 성취감이 컸던 일과 그 이유'에 대해 고민하고 밤에는 '실패한 경험과 그를 통해 얻은 것'에 대해 쓰다보면 하루 해가 저물었다.

회사마다 다른 입사 지원 양식을 나도 몰랐던 나의 이야기들로 채우다 답답한 마음을 안고 잠자리에 누우면 이런 저런 생각에 잠이 잘 오지 않았다.


처음에는 집에서 구직 활동을 했었는데 엄마도 매일 집에 있는 내가 답답했던지 잔소리가 늘어갔고, 불편한 마음을 견디다 못해 도서관으로 출근을 했다. 그렇지만 그것도 하루 이틀이지, 사회의 어느 곳에도 소속되지 못하고 나 혼자 쳇바퀴를 돌리고 있다는 느낌은 생각보다 나를 더 좌절하게 만들었다.

'난 더 이상 학생도 아니고, 직장인도 아니야. 그럼 난 이 사회에서 없어도 되는 존재인걸까?'


어디에라도 소속되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 단기 아르바이트를 했다.

꽤 여러 일을 했는데, 감사하게도 거의 매번 좋은 아르바이트 자리를 만나 좋은 사람들과 맛있는 점심을 먹으며 일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순간순간 속상했다.

그 사람들은 아무말도 하지 않았는데 아르바이트를 계속 하면 내가 취업을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만천하에 알려지는 것 처럼 느껴져 오래 일하는 것도 싫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 때 나는 잎새에 부는 바람에도 상처받던 시기었다.


이런 일도 있었다.

아르바이트를 해서 받은 돈으로 적금을 가입하러 지하철을 타고 은행에 갔다. 대기표를 뽑고 은행 창구 앞에 있는데 갑자기 울컥 화가 났다.

지하철에는 역무원이, 은행에는 은행원이 일하고 있는데 왜 나만 일을 못하고 있지?

다들 사회의 일원으로 역할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는데 내가 뭐가 그렇게 부족해서 나만 이렇게 백수일까?
그들도 그들 나름의 고충이 있을텐데 그 시기의 나는 내가 제일 비참하고 내가 제일 참담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들은 떠오를 때마다 나를 매순간 끝 없는 나락으로 떨어뜨렸다.

누군가에게 기대도 됐고 마음을 털어놨어도 됐는데 그러고 싶지 않았다. 나의 상황이 부끄러웠고 이 시기가 지나고 나면, 보란듯이 취업하고 나면 그 때 정말 힘들었다고 얘기해야지 라고 되새겼다.

마음이 많이 아픈날에는 이대로 사라져버리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그 때 나를 가장 힘들게 했던 것은 끝을 모른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노오력하다보면 정말 내가 취업이 되긴 하는지 알수가 없었다. 끝이 없는 것 처럼 느껴지는 터널을 걷고 또 걸어도 빛이 한줄기도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도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터벅터벅 걷는 것 밖에는 없었다. 이 캄캄한 곳에서 주저앉아 있을 수는 없으니 부르튼 발을 절뚝거리며 걸었다. 쇳덩이 같은 마음을 질질끌며 걸었다.

그렇게 취업준비생 생활이 일년하고도 6개월이 지날 즈음 결국 나는 취업을 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일을 하고 있다.


취업만 되면 세상 근심이 다 사라질 것 같았는데, 여전히 나의 삶에는 돌부리들이 놓여져있다.

삶의 굽이마다 불쑥 튀어나와 있는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기도 하고, 언제인지도 모르게 또다시 빛 한줄기 느껴지지 않는 동굴 속을 걷고 있는 순간도 있다.

그런데 나는 예전에 나와는 다르다.

지치면 잠시 쉬어가기도 하고 하늘을 보며 원망하기도 하지만 믿는다.

반드시 이 일에도 끝이 있을거라고. 아무리 길고 깊은 어둠처럼 느껴져도 반드시 끝은 있다는 것을 믿는다.

취업을 준비하던 때의 나는 지금 다시 떠올려도 가슴한켠이 시큰해져 꼬옥 안아주고 싶은 작은 아이었지만, 그 시간을 통해 나는 어떤 어려움도 견디면 결국은 해쳐나갈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내가 생각지도 못한 더 좋은 일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요즘 나는 힘든일이 있을 때면 생각한다.

좋은 일이 있으려고 이러나보다. 좋은일이 있으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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