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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밤별 Dec 12. 2019

멀어진 만큼 가까워지는

이야기 4. 가족

우리 가족은 나에게 당연함 그 자체였다.

누구에게나 있는 엄마, 아빠, 나 그리고 여동생.

내가 태어난 이후 한번도 이 조합이 아닌 적이 없었기에 우리 가족은 나에게 당연했다.


부엌에서 퉁구르닥닥 아침을 준비하는 엄마의 소리로 눈을 떠 출근 준비를 마치면 우리가족은 식탁에 둘러앉아 아침을 먹고 엄마의 배웅을 받으며 각자의 공간으로 출근을 했다.

날이 어둑할 즈음 회사에 갔다가 나는 '엄마!'를 부르며 집에 들어왔다.

결혼 후 가정 주부로서 지내신 엄마 덕에 내가 집에 돌아올 즈음 늘 우리집의 불은 켜져있었고, 엄마는 저녁을 준비하고 계셨다. 퇴근이 늦는 동생은 회사에서 저녁을 먹는 경우가 많아 나와 아빠가 퇴근하면 엄마, 아빠, 나 이렇게 셋이 저녁식사를 했다.

식사 후 과일을 먹으며 뉴스를 보고 하루동안 있었던 일을 가볍게 주고 받은 후 침대에 들어가 뒹굴뒹굴 하다보면 동생이 퇴근하고 나는 동생이 아빠와 이야기하는 소리가 저만치 멀어지는 걸 느끼며 잠이 들었다. 내가 잠이 들면 동생은 살금살금 내 방으로 들어와 내 옆자리에 누워 잠을 잤다.(TMI: 밤에 내 방으로 올 때 동생은 정말 조용하다. 어느 정도를 상상하던 그 이상으로 조용하다)


이러한 삶을 당연하다고 느낀 이유 중에는 내 주변도 거의 나와 같은 모습으로 지내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학창시절 친구들도 대부분 집에서 통학을 했고, 취업 후에도 얼마간은 집에서 회사를 다니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다 내가 나이를 먹으면서 친구들이 하나둘 독립을 했고 한지붕 아래 엄마, 아빠 그리고 장성한 자녀 2명이라는 우리 가족의 조합은 더이상 평범한 구성이 아니었다.

그 즈음해서 나도 머리가 자라 부모님과 의견이 충돌 잦아지기도 했고, 한번쯤은 서울 중심에 살면서 친구들과 지하철 끊길 걱정 없이 놀다가 택시타고 집에도 가보고 싶었다.

태산같은 걸림돌들이 산재해 있었지만, 지금이 아니면 언제 내가 혼자 살아보겠어! 하는 마음을 굳게 먹고 올해 나는 드디어 가족을 떠나 독립을 했다.


독립은 달콤했다. 집에 늦게 들어가도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았고, 주말 아침 느즈막히 일어나 침대에서 빵을 먹고 온종일 누워 휴대폰만 바라보고 있어도 나의 등짝을 때리는 사람이 없었다.

그런데 우습게도 너무 좋은데, 너무 외로웠다.

퇴근길 집에 들어가 컴컴한 집이 괜히 무서워 신발도 못벗고 후다닥 뛰어가 거실 불을 켤 때, 전자레인지에 즉석밥을 데우고 에어프라이어에 고기 한장을 구워 허기만 채울 때, 무엇보다 온 집의 불을 끄고 잠자리에 누워 혼자 잠을 청할 때 너무 외로웠다. 머리만 대면 자던 나는 새벽에도 몇번이나 잠에서 깼고, 한번 깨면 한 두시간은 뒤척이다 겨우 잠이 들었다.

절반으로 줄어든 퇴근길 집에가는 길은 더 이상 즐겁지 않았고, 지친 몸을 뉘러 안식처가 아닌 대피소로 가 잠시 쉬었다 오는 떠돌이가 된 느낌이었다.

그래도 남들도 다 이렇게 사는거라며, 이 집에도 정을 붙여야지 하는 생각에 독립 후 한달동안 이를 악물고 본가에 가지 않았다. 엄마는 '김치찌개 해줄게', '고기 삶아줄게', '큰이모가 김치보냈어 가져가'하며 부지런히 나를 유혹했지만 꾸욱 참았다. 아빠는 통화할 때마다 나에게 언제 오냐고 물었고 내가 날짜를 착각해 한 주 뒤로 얘기하던 날에는 화들짝 놀라며 '그 전주에 온다고 했잖아!' 하셨다. (다 알고 계시면서 왜 물으시는거죠 아버지)


그렇게 한달을 보내고 집에 갔다.

막상 멀지도 않은 길, 그냥 못이기는 척 자주 좀 올껄. 후회하며 돌아간 집은 당연하게도 한달 전 그대로였다.

내 방도, 가구도 그대로였고 무엇보다 엄마 아빠가 그대로 였다. 나를 본 엄마는 전쟁통에 잃어버린 딸을 찾은 것처럼 안았고 아빠는 나에게 왔냐고 묻고는 자꾸만 나를 쳐다봤다.

집 앞 놀이터에서 들려오는 아이들 고함소리, 엄마 라디오 소리에 겹쳐 들리는 아빠 텔레비전 소리, 동생도 분주하게 방들을 오가고 정신이 하나도 없는데 이상하지. 이제야 쉬는 느낌이 들었다.

그날 저녁 잔치날처럼 엄마가 상다리가 휘어지게 차려준 음식을 해치우고 수박을 먹는데 아빠는 복숭아를 깎았고, 참외를 깎았다. 아빠의 마음이었다.


이제는 제법 시간이 지나 서울집도 많이 익숙해졌다.

밤에 자다가 깨지 않고, 퇴근해서 거실 불을 켤 때 더이상 신발을 신은 채로 뛰어들어가지 않는다.

물론 때때로 외롭다. 조용한 방에 누워 자려다 아무런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는 다는 것을 순간 알아차리면 문득 세상에 혼자 남겨진 것 같은 감정도 느낀다. 그리고 생각한다. '아 그냥 집(본가)에 갈까'


언젠가 엄마가 통화하다가 그런말을 했다.

'이렇게 보고 싶은데 왜 가족이 떨어져 지내야해? 그냥 같이 살면 되잖아.'

이 말도 맞다. 그런데 여전히 나는 나오길 잘했다고 생각한다. 집에 계속 있었으면 난 엄마, 아빠와 계속 싸웠을거다.

독립하게 되면서 살과 살이 맞닿는 시간은 줄어들었지만, 그 자리는 가족에 대한 생각으로 채워졌다.

자주 보지 못하니 더 애틋하고, 말 한마디도 더 조심하게 되고, 다시 만날 때면 그리웠던 만큼 더 반갑고 좋다.


한동안은 이렇게 혼자 지내볼 생각이다. 멀어진만큼 가까워지는 신기한 경험을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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