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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유인간 Apr 27. 2020

넷플릭스 대신의 여가생활

백수가 된 지 5개월째의 일기 

내가 온전히 내 시간을 활용할 수 있을 때 하는 일. 
바쁜 생활 속에서도 그것을 하면 행복해질 수 있지 않을까?


회사일을 그만두니까 의외로 넷플릭스를 보지 않는다. 

대신 책 읽기, 요리, 운동, 그림, 도예, 집 가꾸기 등으로 시간이 꽉 채워진다. 


2018년 초에 피부 절제 수술을 했을 때에 한 달 정도 넷플릭스를 정말 많이 봤다. 부위가 엉덩이라 움직이지도 못하고 하루 종일 눕거나 앉아 있어야 해서 넷플릭스라는 것에 처음으로 가입해서 보기 시작했다. 얼마나 빠져들었던지 남편이 아침에 출근하고 저녁에 퇴근하기까지 해가 지는 것도 모른 채 불도 안 켜고 보기도 했다.


회복한 후에는 다시 회사에 다녔으므로 당연히 그만큼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평균적으로 하루에 한 시간씩 꾸준히 본 것 같다. 사람들과도 넷플릭스 프로그램 소재로 이야기를 많이 했다. 이야깃거리로 언급되는 웬만한 프로그램은 다 본 것 같다. 하루 3시간씩 넷플릭스를 보는 것을 지향한다고 공공연히 말하고 다녔다. 


그랬기 때문에 나는 내가 회사를 그만두면 넷플릭스를 정말 많이 볼 줄 알았다. 원 없이 보겠단 생각에 들떴었다. 그런데 막상 내게 온전한 시간이 주어지니 오히려 넷플릭스를 잘 안 보게 된다. 오늘도 한 편도 보지 못했다. 넷플릭스 좀 봐야겠다고 마음을 잡고 앉아야 비로소 한두 편을 겨우 보는 것 같다. 세상에나. 이게 무슨 일일까? 


딱히 바쁜 것은 아니다. (코로나 사태 전이었으므로) 오늘은 아침에 일어나서 운동을 한 시간 다녀왔고, 샤워를 한 후 점심을 해서 먹고 치우고, 문화센터에서 그림을 그리고 옆자리 수강생과 커피를 하고 왔다. 분명 여유로운 삶이다. 그런데도 내가 그렇게 좋아한다고 생각했던 넷플릭스에 할애할 시간은 좀처럼 나질 않는다. 


'여가'라는 것이 그렇다. 에너지가 없을 때에는 남는 시간이라고 할 지라도 시간을 수동적으로 소비하게 되는 것 같다. 회사를 다닐 때는 하루 종일 에너지를 소모하느라 바빴고, 그래서 나에게 주어진 여가 시간에는 내 에너지를 쏟지 않으며 즐거움을 얻고자 했다. 넷플릭스(혹은 다른 동영상들)를 보는 것이야 말로 딱 맞는 방법이었다. 내 에너지는 들지 않고, 즐거움은 얻어지는 수동적인 여가 생활.


그런데 나에게 하루, 일주일, 한 달이 넘는 어마어마한 시간이 떡하니 주어지고 그 모든 시간을 내가 스스로 계획할 수 있게 되니, 능동적인 여가를 위주로 보내게 된다. 거창하진 않다. 운동, 배움(주로 그림, 도예, 비행기 기종 공부), 친구와의 커피 타임, 요리, 청소, 빨래, 화분 가꾸기와 같은 소소하지만 스스로 해내야 하는 일들로 일주일이 채워지고 있다.


이제 회사를 그만두고 놀겠다고 선언했을 때,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은 정말 놀기만 할 거냐는 것이었다. 정말 그렇다고 대답했을 때 두 번째 질문은 뭘 하면서 놀 것인가였다. 내 대답은 “청소하고 도예 배울 거예요.”였다. 많은 사람들이 믿지 않는 듯 보였지만 그 말은 찐이었다. 아무런 발전적인 행위를 하지 않겠다는 것도 믿기 어려웠겠지만, 청소나 도예쯤은 회사를 그만두고 할 정도의 놀이가 아니라 일을 하면서도 언제든 할 수 있는 것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사실 요즈음 내가 시간을 보내는 일의 대부분은 회사를 다니면서는 그저 귀찮지만 해야 하는 일이었을 뿐 놀이가 아니었다. 그렇지만 이제 나는 그렇게 '놀면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정말로 그렇게 놀아진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이 이런 능동적인 여가를 보낼 수 있다면 어떨까? 


마치 나의 과거와 현재를 반 씩 섞은 것처럼, 모든 사람이 에너지가 방전되지 않을 정도로 일을 하고, 나머지 시간에 능동적인 여가를 보낸다면, 인류의 발전과 영속에 아주 긍정적인 효과가 있을 것이다. 이 개념은 사실 영국의 철학자인 버트런드 러셀 아저씨의 '게으름에 대한 찬양'이라는 책에서 본 것이다. 이 분은 전 세계 사람이 4시간씩만 일한다면 여가를 즐길 수 있어 훨씬 행복할 것이며 거기서 얻는 에너지로 인류는 더 발전할 것이라고 아주 설득력 있게 풀어놓았다. 책으로만 읽을 때도 말이 된다고 생각했는데 나의 여가를 몇 달 정도 경험한 지금은 더 격하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나의 경우를 특정해 보자. 일에 에너지를 반만 쓴다면 이렇게 금세 퇴직하지 않았을 것이다. 따라서 '나'라는 자원을 세상이 이용할 수 있는 시간의 합이 지금보다 훨씬 길어질 것이다. 반면 능동적인 여가 생활로 인하여 내 삶의 행복은 더 커질 것이다. 이걸 인류로 확대하면, 이용할 수 있는 인간의 노동력은 훨씬 많아질 것이고, 각 개인의 행복은 더 커질 것이다. 그리하여 인류는 더욱 행복하고 발전하게 될 것이다.  


나의 여가 시간을 보내는 패턴의 변화에서 기인한 거창한 상상이다.  




바쁠 때에도 행복해지는 방법 (몇 달 후의 추가 단상)


파트타임으로 한 달 정도 잠시 일을 했더니 다시 넷플릭스를 종종 보게 됐다. 너무 접근하기 쉬운 스트레스 해소법인 것이다. 하지만 그런 시간들을 보내는 것으로 인해 행복을 느끼진 않는 것 같다.

오히려 중간중간 요리와 운동을 하며 힐링의 시간을 가진다. 그 시간들은 뿌듯하다. 


결국,

자기 자신을 잘 관찰하고 

온전히 내 시간을 투자했을 때 좋아하는 일을 발굴해서  

평소 바쁠 때도 넷플릭스를 보는 대신 부러 그런 일들을 한다면

일을 하면서도 조금 더 행복해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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