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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유인간 May 08. 2020

행복하기 위하여 조금 귀찮더라도

백수가 된 지 3개월째의 일기

당신은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가.


인간이 삶에서 추구하는 것은 다양하다. 명예, 권력, 부과 같은 것이 흔히 언급되는 목표이다. 더 일상적으로는 연애, 가족(가정)과 같은 것도 될 수 있다. 한 단계 더 세밀히 들어가면 졸업, 취업, 자격증 등도 있다.


나의 경우는 기본적으로 행복하기 위하여 살고 있다. 아마도 다른 많은 이들도 행복하기 위해 산다는 말에 동의할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위에서 언급한 다른 목표를 위해 들이는 노력에 비해 행복을 위해 들이는 노력은 간과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목표를 이루려면 대단한 노력이 필요하다. 뒤부터, 즉 가장 작은 단위로 언급한 목표부터 보자. 누구나 졸업, 취업, 자격증 취득을 준비한 적이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그것을 위해서는 일상에서 꾸준한 노력이 필요하다. 자격증을 취득하려면, 어떻게 대비해야 하는지 알아보는 것부터 시작하여 시험을 신청하고, 시험 전까지 계속 공부해야 한다.


조금 더 큰 목표인 부를 보자. 추구하는 부의 크기는 다르겠지만 돈을 벌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기 싫은 일을 지속해야 한다. 나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꿈꾸던 직업인 디자이너로 밥벌이를 하면 살았지만, 실제 디자이너로서의 일상 속에서는 하기 싫은 80%의 일을 해야만 20%의 나름대로 보람찬 일을 할 수 있었다.


인생에서 원하는 목표를 달성하기란 이토록 어려운 일이다.  

그리고 '행복하기'란 다른 목표와 마찬가지로 쉬운 일이 아니다. 


과거에 나는 거의 행복하지 않은 삶을 살았다. 사춘기가 빨리 찾아와 거의 10대가 되자마자부터 왜 사는가에 대한 고민을 했다. 삶의 의미에 대해, 행복하지 않은 나의 삶에 대해 생각하며 많은 밤을 울며 보냈다. 가장 행복했어야 할 10대의 나는 행복이란 감정을 많이 느껴보지 못했던 것 같다.


지금의 나는 대체로 행복하다. 그 사이엔 지속적으로 '행복'에 대해 생각한 많은 시간과 과정이 있었다.


내 행복은 남편과 함께라는 점에 기반하고 있다. 나의 경우, 사랑하는 사람과 안정된 집이 있다는 점이 행복을 만들어주는 기본적인 요소인 것 같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항상 행복한 것은 아니다.

 

나는 남편과 싸우거나, 누군가 나에게 화를 내거나, 생각대로 일이 잘 되지 않거나, 혹은 아주 운이 나쁠 때, 당연히도 행복하지 않다.


그렇다고 그저 괴로운 일이 없다고 항상 행복한 것도 아니다. "아, 지금 정말 행복하다”라고 말하며 행복감을 느끼는 순간들을 구체적으로 분석해보면 그건 내가 ‘조금 귀찮더라도’ 노력해서 만들어내는 일상 속 순간들이다.  


나는 혈액순환이 잘되지 않는 편이고 비염이 있어서 추우면 쉽게 짜증이 난다. 초가을, 초봄에는 날씨도 맑고 선선해져서 산책하기 참 좋다. 그런데 아무 준비 없이 밖에서 산책을 하다 보면 어느새 추워지고 몸이 덜덜 떨린다. 내가 왜 나왔을까 짜증이 나기도 하고 심하면 다음날 감기에 걸리기도 한다. 남편의 잔소리를 동반한 몇 번의 경험 이후로는 조금 무겁고 귀찮지만 따뜻한 여벌의 옷과 스카프를 챙겨서 나간다. 따뜻한 옷을 입고 산책을 하다 보면 웃음이 나고 행복해진다. 조금이라도 추웠다 싶으면 몸을 따뜻하게 해 줘야 감기에 안 걸린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래서 조금 귀찮더라도 그런 날은 집에 돌아와 욕조를 청소하고 목욕물을 받는다. 따뜻한 욕조에 몸을 녹이면 행복하다는 소리가 절로 나온다.

 



대전에서 인천공항 가는 공항버스를 타면 휴게소 정차시간을 포함해 편도 2시간 30분이 걸린다. 그리 긴 시간이 아님에도 중간에 휴게소에 한 번 들르기에 의아했는데 가만 생각해보니 매일 운전해야 할 버스기사님의 건강을 위해서인 것 같다.


최근 지인의 차에 편도 3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탈 일이 있었다. 버스는 2시간 정도의 여정에도 휴게소에 들르는데, 내가 얻어 탄 차의 주인은 가는 동안 한 번도 차에서 내리지 않았다. 심지어 내가 부탁해 중간에 휴게소에 정차했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나는 당연히 그분이 화장실에 다녀올 줄 알았다. 적어도 내려서 기지개라도 켤 줄 알았다. 그러나 거듭된 권유에도 일행 세 명 중 오직 나만 차에서 내렸다.


사실 나 역시 화장실이 급해서 휴게소에 가자고 한 것은 아니었다. 그동안의 경험으로 2시간 이상 차에 앉아있으면 힘들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다 함께 기지개도 켜고 조금 걷는 휴식을 취하기 위함이었다.


오가는 길에는 지인의 수다가 계속 이어졌는데, 대부분은 삶이 힘들고 불만족스럽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단 1분만이라도 시간을 들여 기지개를 켜지 않는 삶을 산다면 당연히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앞서 말했듯 삶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대단한 노력이 수반된다. 행복 또한 달성하고 지속하기 어렵다. 그러나 다른 목표에 비해서는 약간의 귀찮음만 감수하면 비교적 쉽게 행복을 만날 수 있다. ‘소확행’이란 말도 있지 않은가. 다른 목적에 들이는 혹은 들였던 노력에 준하여, 귀찮음을 극복하고 행복을 얻어야 한다.


날씨가 아무리 좋아도 나갈 일이 없다며 불평할 수도 있고, 맛있는 점심메뉴가 생각나지 않는다며 점심을 건너뛰고는 배가 고파서 울적해질 수 있다. 귀찮다며 잘 움직이지 않는 통에 관절이나 근육이 아파서 우울해질 수도 있고, 그저 그런 집밥은 지겹다며 짜증 낼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약간의 귀찮음을 극복하고 노력해 행복하기를 택하고 있다. 그래서 맑은 날엔 밖에 나가 산책하고, 그게 점심때라면 도시락을 휘릭 싸서 나가고, 집에서라도 운동 모드로 전환하기 위해 복장을 갖춰 입고 운동하고, 혼자서라도 브런치를 멋지게 차려서 먹고, 종종 시간을 들여 요리한다. 조금 귀찮더라도 감수하고 이런 일들을 한다. 그러면 자주 행복감이 밀려오고 행복하다는 소리가 입에서 나온다. 행복은 그렇게 노력하여 얻어내야 한다. 그리고 그 노력은 약간의 귀찮음을 감수하기만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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