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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유인간 Dec 15. 2020

엄마 생각 (3/3)

잘 사는 인생이란 무엇인가. 요즘 내 최대의 관심사이다.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백수로서 남은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마지막 순간에 인생을 잘 살다 간다고 할 수 있을까? 배부르고 행복한 고민이란 것을 알지만 현대인이라면 누구에게나 마음 한편에 자리 잡고 있는 질문일 것이다. 


앞서 말했듯 엄마 인생의 선택들은 내 선택과는 상당히 다른 쪽을 향하고 있다. 나는 그런 엄마가 이해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엄마의 인생은 잘 산(살고 있는) 인생인가? 그 질문에는 나도 매우 공감하며 그렇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엄마는 내가 감히 할 수 없는 선택들을 했고 언제나 최선을 다해 살아왔으니까.


어떻게 하면 잘 놀고먹으며 살 지를 매일 고민하는 지금 내 모습은 엄마와 전혀 다른 것 같으면서도, 내 삶의 궤적은 어쩌면 엄마와 무척 닮았다. 

엄마는 서울 사람으로 살며 엘리트 코스를 거쳐 마흔에 귀농해 지금껏 시골에서 살고 계시다. 나도 나름 엘리트 코스를 거치며 30대 중반까지 치열하게 살아왔고, 그러다 젊은 나이에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은퇴라는 선택을 했다. 내가 이해할 수 없다던 엄마의 인생이 사실은 내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것일지 모른다. 




내 입장에서는 점점 더 늙어갈 엄마의 건강이 걱정된다. 엄마야 말로 잘 쉬며 건강만 챙겨도 모자랄 나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을 때까지, 아니 죽기 직전까지 시골일을 하시겠다니... 나는 1년 후, 5년 후, 10년 후 엄마의 노쇠한 모습이 뻔히 그려진다. 결사 병이 있어서인지 가끔은 라이프스타일의 무언가를 내가 바꿔줘야 할 것 같은 생각도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엄마가 안쓰럽단 느낌은 그리 들지 않는다. 마치 내가 결정한 지금의 내 인생이 안쓰럽지 않듯이 말이다. 나의 엄마가 아니라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의 그녀에 대해 생각하면, 그리고 엄마와 이야기를 나눠보면, 내가 걱정할 일은 아무것도 없을 것 같다. 하나의 훌륭한 삶이고 나름의 균형이 잡힌 삶이므로. 나는 그저 딸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준비하면 되겠지.


일단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두 가지 정도 떠오른다. 


첫째는 내가 행복하게 잘 살아가는 것. 나는 자식이 없으므로 엄마에게 감정이입은 잘 안되지만, 남편에 대입해 상상해봤다. 당연히 남편이 날 사랑해주길 바라지만, 나를 위해 무언가를 포기하고 해 주기보다 그가 원하는 것을 하며 행복하게 잘 살아가면 좋겠다. 그래야 내 삶에도 에너지가 더 돌고 쓸데없는 걱정이 줄어드니까. 마찬가지로 내가 잘 살아야 엄마에게도 삶의 기초가 탄탄해질 것이다. 


둘째는 엄마에게 건강 문제가 생길 때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는 것. 엄마는 오랜 시간 동안 당뇨 환자로 살고 계시고, 10년쯤 전에는 혹으로 인해 자궁 적출 수술도 받으셨다. 지금껏은 젊으니 잘 회복했지만 앞으로는 예전 같지 않을 것이다. 몸이 아프면 시간, 에너지, 돈이 들어간다. 내가 그것을 감당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하겠다. 




어쩐지 이 글들을 쓸 때마다 엄마에게 전화를 하게 된다. 나 혼자만의 어떤 몰랑몰랑한 감정으로 전화를 걸면 엄마는 지극히 일상적이라 나 또한 평온해지곤 했다. 아마도 오늘 안에 엄마와 또 통화를 하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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