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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유인간 Jun 16. 2021

백수의 설렁한 일주일

어떤 사람들은 직장을 다니다 그만두면 심심해하거나 심지어는 우울하기도 하다는데 어쩐 일인지 나는 퇴직한 지 1년  훅 넘어갈 때까지 뭔가 일을 벌여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남은 인생은 어떻게 보내야 잘 사는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공기처럼 마음 한편에 항상 흐르고 있었지만 말이다.

그러다 그냥 이렇게 흘러가는 대로 삶이 살아진다면 그대로도 괜찮은 것 같다는 생각.


백수인 내 일주일은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월요일은 주말에 남편과 내내 시간을 보냈으니 적당히 혼자 집에서 쉰다. 밥을 지어먹고 빨래를 하거나 집안을 정리한다. 커피를 느긋하게 마시고 화초에 관심을 준다. 기분 따라 운동을 하거나 독서를 하기도 한다. 주말에 잘 못 본 넷플릭스를 몰아 보기도 한다.


화요일은 도예공방에 가서 시간을 보내다 들어온다. 사실 공방에 다닌 지 꽤 오래돼서 실력이 늘은 바람에 선생님과 모종의 계약을 맺었다. 공방 일을 도와주고 공방을 무료로 사용한다.


수요일, 목요일은 가끔 친구를 만난다. 물론 친구가 많지 않으므로 월요일의 패턴일 때도 있다. 사실 그럴 때가 더 많다.


금요일도 도예공방에 가서 시간을 보내다 들어온다.


주말은 남편과 보내야 한다. 남편은 나에 대한 욕심이 많은 편이다. 주말에 같이 정성스럽게 시간을 보내지 않는다면 삐질 위험이 크다.


30대 후반이라는 나이에 이렇게 설렁한 밀도의 시간으로 1년 6개월을 넘게 지내도 별 위기감이 안 드는 사람이 그렇게 많지는 않은 것 같다.


난 좀 느릿한 편인가 보다.

다니던 회사가 지겨워도 너무 지겹다는 생각을 한 지 3년이 되어서야 첫 번째 회사에서 퇴직을 했다. (결국 8년이나 다녔다.)

두 번째 회사에서도 주말부부를 곧 끝내야만 한다고 결심한 지 1년도 넘어서야 실행에 옮겼다.


사실은 그 시간 동안 이리 재고 저리 재는 것이다. 그러느라 시간이 오래 걸린다.


퇴직 후  개월, 혹은 1년 정도 면 뭔가 해볼 생각이 들기도 한다는데 나는 1년 반이 훌쩍 넘어가도록 그 느낌이  오는 것.

오히려 브런치에 글을 쓰는 것 마저 부담이 되어 안 하고 있었단 말이지. 백수 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야 새로우니 쓸 말이 있었지, 그것도 익숙해지니 별로 할 말이 없었다.


나란 인간은 쉬는 것도 이렇게 오래 걸릴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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