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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자예술감독 Aug 13. 2019

나비

생각 없는 생각


고양이에 대한 기억 01


          어느 날 느닷없이 할머니께서 새끼 고양이를 데리고 오셨다.  옆집 고양이가 새끼를 내서 한 마리 얻어왔다고, 이 고양이가 크면서 집에 있는 쥐도 잡아줄 거라고 했다. 회색빛 바탕에 검은색 줄무늬가 있었던 작디작은 아기 고양이. 너무 어려 눈도 못 뜨고 삐약 거리는 고양이를 품에 안아 우유를 먹이다가 어느 정도 컸을 때, 마당에 풀어놓고 키웠다. 성체가 된 나비는 정말로 쥐를 잡아다가 사람 지나다니는 현관문 앞에 두기도 했으며 며칠씩 집을 나갔다가 들어오면 매번 배가 불러있었다. (왠지 모르겠지만 어른들은 모든 고양이를 나비라고 불렀다.) 그런데 내가 나비의 새끼를 본 것은 딱 한 번이었다.


           우리가 살던 집을 헐고 그 자리에 아주 큰 공장이 들어선다고 했다. 이사를 며칠 앞둔 어느 날 한동안 밖에 나가 들어오지 않던 나비가 배가 불러 집에 돌아왔다. 이사 준비로 어수선했지만 엄마는 나비를 위해 조용하고 구석진 곳에 산실을 마련해주었고 나비는 그곳에서 다섯 마리의 새끼를 낳았다. 꼬물꼬물 새끼들을 구경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던 나는 차곡차곡 짐을 싸 나르는 어른들 사이에서 걸리적거리기 일쑤였다.


           이삿날 당일, 우리가 살던 그 허름한 집은 짐을 모두 옮기면 바로 철거하기로 되어있었다. 어른들은 예민할 나비의 산실 만은 이삿짐을 다 옮길 때까지 그대로 두었다가 마지막에 데리고 가기로 했다. 하지만 큰소리가 연이어 나고 많은 사람들이 돌아다니자 불안한 기색이 역력했던 나비는 새끼들을 한 마리씩 입에 물고는 바쁘게 오가는 사람들의 다리사이를 지나 바깥으로 나갔다.


“엄마! 나비가 새끼들 데리고 어디로 가려나 봐!”

소리를 치며 따라나가 보니 나비는 허름하고 좁디좁은 지붕과 천장 사이로 몸을 구겨 들어가더라. 도대체 그곳은 어떻게 발견했는지 평소 지나다니던 길처럼 능숙하게 아기 고양이들을 부지런히 옮겼다. 더 이상 나비를 따라갈 수 없었던 나는 집을 허물면 고양이들은 어떡하냐고 대성통곡을 했고 어른들은 나비가 철거를 피해 도망갔을 거라고 말했다. 아무런 힘도 없고 방법도 몰랐던 어린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그저 대성통곡뿐이었다.


           나비는 내가 학교에 갔다 돌아오면 집에 있을 때도 있고 없을 때도 있었지만 있을 때면 꼭 반갑게 다리 사이를 비비며 반갑게 맞아주었던 착하고 애교 많던 고양이였다. 나비는 가족도 알아보고 살고 있는 집도 알고 정도 많고 쥐도 잘 잡았고 말썽도 안 부렸다. 그래서 나는 안다. 고양이는 주인을 알아본다.


           아직도 나는 그곳에 그렇게 두고 온 나비와 다섯 마리의 새끼가 종종 생각난다. 정말로 어른들의 말처럼 철거를 피해 도망갔을까. 그렇다면 그 어린 새끼들은 어떻게 했으며 나비는 먹을 것을 어디서 구했을까.. 반려동물에 대한 인식과 개념이 지금과는 많이 달랐던 시절이라 지금 생각해보면 참 뜨악할 일이다. 지붕에 쥐가 다다다 돌아다녔고, 들판에 널려있던 쑥을 캐다가 먹었으며 다니던 국민학교는 걸어서 40분은 걸렸던 시골에서 자랐던 내가 고양이라는 동물에 대해 겪은 강렬한 기억 중 하나다.



덧, 지금은 고양이 한 마리를 모시고 사는 집사라 저 때의 기억은 백번을 다시 생각해도 소름이 돋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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