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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자예술감독 Aug 13. 2019

뽀미

생각 없는 생각


강아지에 대한 기억 01

             뽀미는 길거리에 유기된 요크셔테리어였다. 내가 국민학교 5학년 무렵이었다. 비가 오던 어느 날 하교를 하고 있었는데 웬 요크셔테리어가 집 앞 길가에 앉아서 비를 맞고 있었다. 바로 집으로 데리고 들어가면 왠지 엄마에게 혼날 것 같아서 집에 들어갔다가 10분 뒤에 다시 나왔을 때도 있으면 데리고 들어오기로 결심했다. 집에는 엄마가 안 계셨고 10분 후 동생과 함께 다시 나가보니 그 아이는 그 자리에서 아직도(고작 10분이었지만 체감상 1시간도 넘은 것 같았다.) 오돌오돌 떨고 있었다. 차갑고 축축한 감촉. 집에 들어와 살펴보니 요크셔 치고는 못생긴 얼굴이었고 몸집이 컸으며 털은 미용의 흔적이 있었다. 그리고 검은 발톱은 다듬은 지 한참이 지났는지 발바닥을 파고들어있었다. 누군가 버린 걸까. 그게 아니라면 집에서 우연히 나왔다가 집을 찾지 못한 걸까.

             집에 돌아온 엄마는 나를 혼내는 대신 강아지 사진을 찍어 전단지를 만들어 붙이라고 하셨고, 아무래도 주인이 있는 개인 것 같으니 주인이 나타날 때까지만 데리고 있자고 하셨다. 우리는 강아지를 동물 병원에 데려가 발톱을 깎이고 건강상 별 이상 없다는 소견을 듣고 집으로 데리고 왔다. 그래도 데리고 있는 동안 부를 이름은 있어야 하니 아무 이름이나 불러보고 반응 제일 잘하는 이름으로 임시로 부르기로 했다. 난데없는 가족회의가 벌어졌다. 하늘이, 코코, 담비, 뽀삐, 럭키, 마루, 복순이, 예삐, 쫑….생각할 수 있는 모든 발음으로 다 불러보았고 가장 반응이 좋은 뽀삐와 예삐가 유력했다. 나는 쌍비읍 발음에 반응하는 거라면 얘는 여자니까 뽀미라고 부르자고 의견을 냈고 통과되었다. 그냥 아무 이름이 아니라 내가 이름을 지어준 셈이어서 뿌듯한 기분이 들었던 게 생각난다. 회의가 끝나고 소파 위에서 바들바들 떨고 있는 이 소심한 개를 지긋이 쳐다보며 평생 같이 살고 싶다 생각했다. 나는 이 못생긴 개를 누가 버린 게 틀림없다고 생각했었거든.

             결국 한 달이 지나도록 그 누구에게서도 연락이 없었고 엄마도 이제는 포기하신 건지 어느새 뽀미는 우리 가족의 일부가 되어있었다. 뽀미 물건이 하나 둘 집안에 생겨나기 시작했고 덕분에 가족들과 산책도 자주 나갔었다. 애교가 많거나 똑똑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말썽을 피우지도 않았던 참으로 무던한 성격의 강아지였던 뽀미. 그렇게 가족이 된 지 5년 여정도 되었을 때 우리 집은 이사를 했고 이사 간 그 집에서도 잘 적응하는 듯했다. 할머니가 현관문을 열어놓은 것을 깜박하고 외출하시기 전까지는.

             그 사이 고등학생이 된 나는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다가 현관문이 열려있는 것을 보고 등골이 오싹했다.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지. 아니나 다를까 뽀미는 온데간데없었고 그날 밤 온 가족이 날이 새도록 뽀미를 찾아다녔다. 새로운 동네라 아직 적응도 못했을 텐데 차도에 뛰어들어 사고를 당하지는 않았는지, 그때만 해도 돌아다니던 개장수에게 잡혀가지는 않았는지, 짖지도 않는 애가 어디 깊은 하수구에 빠져 허우적대는 것은 아닌지…

             그 후 며칠 동안 찾아봐도 뽀미는 어디에도 없었다. 난데없는 이별이었다. 5년 전 내가 처음으로 뽀미를 발견했던 날, 누군가 이 못생긴 강아지를 버린 거라고 확신했던 그 날. 그날도 이렇게 누군가 고의로 유기한 것이 아니라 이 바보가 어쩌다 집 밖으로 나왔다가 다시 돌아가지 못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마치 내가 일부러 뽀미를 유기한 것만 같았고 그로 인해 하지도 않은 행동에 대한 자아비판까지 해대며 느꼈던 상실감은 어린 나에겐 너무나 크게 다가왔다. 이 사건은 내 인생 속 반려동물과의 세 번째 이별이었다.

             지금 키우고 있는 고양이의 탈출을 막기 위해 방묘문, 방묘창을 꼭꼭 해두는 것은 이때의 경험이 크게 작용한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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