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 속 운명을 바꾼 인연에 대하여'
어떤 만남은 한 사람의 운명을 바꾼다. 나는 그런 만남을 소재로 한 영화와 책을 좋아한다. 평범하고 안정적으로 살아가던, 그렇지만 너무 아름다운 가정주부 ‘다이안 레인’이 뉴욕 거리에서 ‘그’를 만나는 ‘언 페이스 풀’ 같은 영화가 그렇다. 비바람이 부는 거리에서 떨어뜨린 책을 주워주며 시작된 만남이 결국 모두를 파국으로 치닫게 하는 이야기가 참 비현실적이지만 매력적으로 와닿는다.
그러고 보면 나도 항상 내 인생에 새로운 만남이 찾아와 지루한 내 삶으로부터 나를 다른 곳으로 데려가 주기를 바라고 또 바랐다. 바랄수록 내 운명을 바꾸었다고 할만한 사랑도 친구도 없었던 거 같아 상대적 초라함을 느끼곤 했지만 돌이켜보니 내게도 인생에 큰 변화를 겪게 했던 만남이 분명 있었다. 이 글에서 그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나를 알아봐 준 사람 ‘완병’
완병이와 나는 고등학교 동창이지만 수능시험이 끝난 후에야 알게 된 사이이다. 그때 우리 학교는 모의고사 평균 점수가 꼴찌를 면하지 못했고 주변 학생들에게 절대 가지 말아야 할 학교로 손꼽혔다. 나는 그 속에서 적당히 공부하면 나오는 중상위권 점수에 만족하고 있었을 때 우리 학교에서 유일하게 명문대 입학을 앞둔 완병이를 만났다. 우리는 주로 온라인으로 대화를 나누며 친해졌는데 가끔 밤새우면서 채팅으로 대화를 나누곤 했다. 그만큼 완병이와 나누는 대화는 시간 가는 줄 모르게 흥미로웠고 다른 친구들과 나눠왔던 대화보다 훨씬 큰 영향력이 있었다.
그는 내가 많은 가능성이 있는데 그것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말을 해주었다. 사법시험을 준비하던 시절, 그는 꿈에 나온 내게 ‘내가 일하는 사무실에 너도 있더라’라고 말해준 적이 있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나서 법원공무원 시험 준비를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지금 16년 차 법원공무원으로 일하고 있다. ‘앞으로 글을 썼으면 좋겠어’라는 완병이의 말은 글쓰기를 포기하지 않고 붙잡게 해주는 힘이 되었다.
안타깝게도 건강이 좋지 않은 완병은 그 이후 긴 슬럼프를 겪었다. 우리는 지금 거의 만나지 않는다. 개명했고 대학 시절 만난 연인과 오랜 시간 함께 하고 있다고 그의 동생으로부터 전해 들었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군 입대한 후 몇 달이 흘러 어느 섬에서 편지를 보내오던 내 친구 완병, 대학교 졸업식에 말없이 나타난 완병이가 있어 내 20대는 누군가로부터 깊이 영향받고 온전한 사랑을 받아본 기억으로 채워져 있다. 그는 내 인생에 정말 아름다운 사람이다.
요가선생님 ‘테레사’
나는 ‘요가는 내 인생을 바꾸었다.’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그 요가를 깊이 있게 할 수 있도록 안내해준 사람은 바로 내가 다니는 요가센터의 센터장 테레사 선생님이다. 내가 그녀에게 얼마나 의지했었는지, 설레면서 요가원에 들어와 신발을 벗기도 전에 벌써 이야기를 시작하곤 했던 내 모습이 참 행복해 보였다. 특히 그 전엔 한 시간도 못 자고 출근하던 날이 많았다가 우리가 만난 후 불면증이 사라지게 된 것에 진심으로 그녀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곤 했었다. 그녀는 내게 요가뿐만 아니라 명상에 관련한 다양한 수련 프로그램을 소개해주었다. 아마 그녀가 아니었다면 나는 요가를 운동으로만 했을 뿐 나를 바라볼 수 있는 거울로서는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그녀와의 인연은 그녀가 제주도 명상센터로 가게 되면서 끊어졌다. 서로 비슷한 성격을 가졌기에 때로는 부딪히기도 했지만 나는 그녀를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테레사 선생님은 내게 제2의 인생을 소개해 준 중요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코로나로 인해 우리가 만난 교대 센터가 문을 닫는다는 소식을 듣던 날 선생님과 함께 눈물 흘렸던 기억도 쉽게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아직도 그 건물 앞을 지날 때 자연스럽게 그때가 떠오른다.
30일의 도전팀을 만든 사람 ‘경연’
경연은 일만 시간의 법칙이라는 테드 강연을 보고 30일의 도전이라는 모임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리고 나는 그 모임의 초창기 멤버였다. 이 모임이 생긴 첫날부터 5년 후 해단식까지 이 모임의 모든 순간을 함께 했었다. 30일의 도전 모임은 한 달씩 습관을 정하고 그것을 매일매일 인증하는 형식으로 진행되는 모임이었다. 우리는 한 달에 한 번 정기적으로 만나서 습관을 도전해 보고 느낀 점을 공유했다.
나의 경우 처음엔 30분 일찍 일어나기 등 별로 하고 싶진 않지만 해야 할 것 같은 도전을 하다가 점점 내가 좋아하는 일을 찾아 도전을 하게 되었다. 어느 달은 매일 글을 썼고, 어느 달은 하루에 한 권 책을 읽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하는 도전을 보며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받았다.
나는 이 모임을 아주 많이 좋아했고 모임은 물론이고 모임의 리더인 경연으로부터 많은 영감을 받았다. 경연은 합리적이고 따뜻한 사람이었다. 무엇보다 떠오르는 생각을 행동으로 옮길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녀의 리더십은 전혀 모르던 십여 명의 사람들을 긴 시간 동안 서로의 삶을 깊이 있게 나눌 수 있게 했다.
현재 경연은 미국에 있다. 곧 출산할 예정이라고 한다. 비록 멀리 있지만 그녀가 유튜브를 하고 있기에 그녀의 안부를 알 수 있다. 그녀가 인생의 도전을 멈추지 않고 시도하는 것을 애정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고 응원하고 있다.
현재 내 일상에서 만나는 인연은 아니지만, 내 삶에 큰 영향을 주었고 그 파장이 지금 내 삶에도 잔잔히 퍼지고 있는 인연에 대해 적어 보았다. 또한 나도 누군가에게 이렇게 기억되기를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