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해와 용서에 대한 이야기'
나는 유독 내 것이 아닌 것을 좋아했다. 내가 가장 많이 좋아했던 사람도 그 이유가 그가 내가 아니어서 좋았을 정도로. 그렇다면 ‘내 것’은 과연 나에게 무엇일까? 스스로 질문해 본다. 그러자 바로 유년 시절이 떠오른다. 유년 시절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나에겐 너무 싫은 ‘내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어린 시절 나는 30년 전에 재개발로 사라진 서울 외곽 11평짜리 시영 아파트에서 할머니와 부모님, 언니와 함께 살고 있었다. 어릴 적 아버지와 둘이 대화를 나눈 기억이 드문데도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다. ‘우리 아빠는 대학을 나왔다.’며 대학이 뭔지도 모르는 어린 내게 그 말을 하도록 시키며 웃는 아버지의 얼굴.
아버지는 비밀이 많은 사람이었다. 평소 아버지의 감정을 잘 알 수가 없었고 실은 무슨 일을 하는지도 잘 몰랐다, 자신의 어머니인 할머니를 모시면서도 할머니를 투명 인간처럼 지나쳤다. 그 표정은 할머니가 돌아가실 때도 별다를 게 없었다. 가끔 너무하다 싶은 비아냥거리는 말로 날 밀쳐냈고 사랑이 없는 표정으로 바라보곤 해서 어린 내 마음도 닫혔다. 주말에 어머니가 일이라도 나가면 아버지랑 집에 있어야 하는 시간은 고역이었다. 참 불편한 사람. 나는 우리 집에 들어가기 싫어 친구 집에서 눈치가 보이도록 오래 놀다가 들어가곤 했다. 밖에서 있는 시간이 집보다 편했다.
내가 아버지를 불편해하다가 아버지를 공포스러운 존재로 생각하게 된 계기가 있다. 난 아주 곤히 자고 있던 새벽 2시에 어머니의 비명 소리에 놀라서 잠에서 깼고 안방으로 달려갔다. 아버지는 어머니와 다툼 중에 ‘죽여버리겠다’는 무서운 말로 손에 피를 묻히고 어머니 목을 조르고 있었다. 그날은 나에게 ‘트라우마’가 되었고 아버지는 어떤 사람으로서가 아닌 ‘공포’로 남았다.
그날 이후 나는 표면적으로 아버지에게 반항하는 자식은 아니었지만 단 한 순간도 아버지를 진심으로 사랑하지 않았다. 내게 아버지는 그저 ‘불편함’과 ‘공포’로 남은 존재였다.
그런 아버지를 내가 몹시도 미워하게 된 것은 아버지가 70대에 들어서고 암환자가 되고 나서였다. 아버지는 암 수술 이후에 그 전의 모습은 찾기 힘들 정도로 늙어버렸고 오랫동안 수술 후유증에 시달리게 되었다. 처음엔 치솟는 미움이 왜 생기는 것인지 몰랐다가 이제 아버지가 늙었기에 내가 그를 마음껏 미워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그동안 아버지가 무서워서 미워하지도 못했구나. 나는 아버지를 미워하고 또 미워했다. 내 인생이 잘 풀리지 않는 이유는 아버지로부터 들었던 모진 말, 눈빛, 남들 앞에서 나를 지켜주지 않던 행동 때문이라고 생각하면서.
작년에 지인의 소개로 어느 자기 계발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되었다. 그 프로그램에서는 ‘원 가족과의 화해’를 강조하는 내용이 주를 이루었다. 아버지가 떠올라 불편해서 듣는 둥 마는 둥 했지만 점점 다른 사람들이 하는 나눔을 귀 기울여 듣게 되었다. 그들은 상처를 주는 아버지이기도 했고 나처럼 상처받은 자식이기도 했다. 나는 그동안 내가 가지고 있는 내 아버지에 대한 부끄러운 마음과 불편함이 오롯이 나만의 것이라 생각하며 살아왔는데, 다른 사람의 나눔을 들으면서 거울처럼 내 경험을 비추어 볼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내 마음을 열게 했다. 그 직후 아버지가 나보다 훨씬 더 강해져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시절을 살아왔다는 사실과 섬세한 성격을 가졌지만 그만큼 상처를 잘 받는 사람이라는 사실이 난생처음 생생하게 와닿았다. 그것은 아버지가 내 가슴속에 너무 싫은 어느 느낌으로만 존재하다가 처음으로 한 사람으로 나타나는 경험이었다. 돌이켜보니 아버지를 미워하는 마음을 가슴에 품고 살아왔을 때 나는 현실에서 아버지가 떠오르는 순간에 그 미움으로부터 영향을 받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렇게 아버지를 미워하는 것이 나를 위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채자 동시에 아버지에 대한 연민을 느꼈다. 그는 공부를 하고 싶었지만 초등학교만 졸업했고 그 이후는 일만 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자식 앞에서 부끄러워했다. 나는 아버지가 평생 할머니로부터 사랑받지 못했다는 미움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한평생 일용직 노동자로 살았고 손가락이 굽혀지지 않는 장애를 얻었다. 늙어서는 일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고 딸의 미움을 받고 있다.
나는 아버지에게 다가가 그 프로그램에서 알려준 형식으로 글을 쓰고 읽어드렸다. 그동안 아버지를 미워해 왔지만 실은 충분히 사랑받지 못했다는 원망이었고 이제 내가 아버지에게 사랑을 드리겠다는 내용이었다. 내 말을 들은 후 아버지는 아버지답게 아무 말 안 하셨지만 표정이 봄날의 햇살처럼 화사해졌다. 처음 보는 표정이었다. 그렇게 나를 긴 시간 붙잡았던 아버지에 대한 미움과 완전히 이별했다. 그리고 작년 여름 처음 부산으로 아버지, 어머니, 나 셋만의 여행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