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한 번도 운전 하면 안 되는 사람으로 표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운전면허 학원은 외곽에 있을 것으로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S운전면허학원은 지하철역에서 매우 가까웠다. D지하철역에서 5분 정도 걸으니 S운전면허학원이 나왔다. 학원에 들어서는 순간, 1990년대의 공간으로 순간 이동한 느낌이 들었다. 종이컵 커피 자판기, 컨테이너 건물, 트레이닝복을 입고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 색 바랜 파란색 유니폼만큼이나 칙칙한 선생님들의 표정... 그 표정을 보면서 인터넷에 그 학원 운전 강사들이 불친절하다는 평이 꽤 많았던 게 생각났다.
10월 중순을 지나고 있었기에 가을이 그야말로 무르익고 있었다. 여느 때 같았으면 마음속으론 벌써 한해를 결산하며 느긋하게 커피를 마시고 있을 계절이었다. 작년 가을, 익숙한 계절이 주는 안정감을 포기하고 나는 갑자기 운전면허 학원에 등록했다. 나는 운전면허학원 입구에서 그 당시 매일 전화 통화하던 미서 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미서 씨, 저 이번에 반드시 운전면허를 따겠다고 했잖아요. 그래서 오늘 학원 입구까지 왔는데... 도무지 이 안에 들어가고 싶지 않아요. 운전 꼭 해야 하나 이런 생각만 들고....조용한 일상에 돌덩이를 하나 던지러 온 것 같네요. 아... 그래도 들어가야겠죠?” 어차피 면허학원에 들어갈 거면서 푸념하는 내 말을 미서 씨는 잘 받아주고 통화는 끝났다.
운전면허는 어떤 과정을 통해 취득하게 되는 건지 미리 알고 가려고 인터넷으로 찾아보았는데 아무리 봐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난 차에 관심이 없기도 했고 운전이 무서웠다. 차와 운전과 관련한 정보라면 자연스럽게 건너뛰기를 하며 살아왔기 때문에 그저 낯설었다. 내가 트럭을 운전할 일은 없을 듯해 2종 면허를 신청하고 비용을 지불했다. 하다가 중간에 그만두기엔 큰 비용이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기본안전교육을 받기로 예약하고 운전면허를 따기 위한 일정이 시작되었다.
‘우리 가족은 참 운전에 소질 없어.’
내가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면허 딸 생각을 전혀 하지 않자, 어머니는 자주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러던 내가 갑자기 면허를 따려고 학원을 등록한 이유는 우선 호기심 때문이었다. 나는 정말 운전을 못 하는 사람일까? 아니면 그렇게 생각하며 살아온 것일까? 무엇이 진실인지 궁금했다. 그리고 다른 이유는 어떤 동경 때문이었다. 사실 집에 차가 없었기에 면허를 딴다고 바로 운전할 계획은 없었다. 게다가 서울에서 살면서 차보다는 대중교통이 편할 때가 더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 나를 집에 바래다주는 지인들이 나보다 더 어른처럼 느껴졌을 때 나도 그 능력을 가져보고 싶었다.
일단 필기시험에 무난히 합격하고 장내기능시험을 준비하게 되었다. 인생에서 운전대를 처음 잡아보는 순간을 맞이한 것이다. 장내 기능 강사 이름은 ‘길석’이었다.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돌멩이가 떠오르는 이름이었다. 어쩐지 딱 봐도 조직 생활과는 거리가 있어 보이는 자유로운 영혼이었다. 그는 ‘내가 95년도부터 운전을 가르친 사람이야’는 말을 자주 했다. 그리고,
“자기 남자친구 있을 거 아냐, 내 문자 보고 오해하는 일 없게 해줘.”
“이건 일리 씨가 예뻐서 한 번 더 가르쳐 주는 거야.”
“......”
그는 그 시절부터 지금까지 칙칙한 남자들이 주를 이룬 이 공간에 있었던 사람다운 화법의 소유자였다. 강습 내내 반응하기도 애매한 참 쓸데없는 말을 많이 했다.
하지만 그에게 고마운 점이 더 많았다. 내가 말도 안 되는 실수 종합세트를 펼쳐 보였을 때도 나를 한 번도 운전 하면 안 되는 사람으로 표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시험 전 마지막 강습을 마친 후, ‘떨어지면 또 강습 받으면 되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라고 말하며 금방 다시 볼 사람처럼 떠났다. 내가 그 후에 100점으로 합격했단 소식을 전했을 때 그는 짧은 문자로 그의 심경을 전해왔다.
‘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