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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훈 May 15. 2023

신발 안의 작은 돌

에세이

집에 돌아와서 장 본 것들을 정리했다. 고추랑 양파는 각기 썰어서 보관해 둬야 오래 쓸 수 있다. 둘이 사는 집에 음식물을 낭비하는 경험들은 썩 유쾌하지 않다. 그래서 장을 보면 제때 야채를 정리하는 습관이 생겼다. 모든 건 다 때가 있다. 먹는 것도 자는 것도 그때를 지키지 못하면 나중에 꽤 후회하곤 한다. 근데 정말 작은 생각 하나가 튀어 올랐다. 고추를 썰다 씨가 튀어 오르더니 내 뺨에 튀었다. 이런 일이 흔한가? 생각해 보면 흔한 것 같기도 하다.


가끔 신발 안에 작은 돌멩이 하나가 들어올 때가 있다. 녀석은 신발 안에서 구르다가 어느 정도 자기가 편안한 구석을 찾아 그 자리에 몸을 박는다. 그러면 발바닥 한편에서 그 녀석이 자기주장을 하고 난리다. 도심 속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발생하는지 의문이다. 나는 그 녀석을 애써 무시한다. 왜냐면 지금 해야 할 일이 있고 바쁘니까. 사실 허리 한 번 숙여서 신발 다시 신는 게 어려운 일은 아닌데 왜 그렇게 귀찮은지 모르겠다. 일이 끝나고 집에 돌아와서야 이 녀석을 툭하고 치워버린다. 그동안 내 발은 그 귀찮은 녀석과 동거하며 움찔거렸을 거다. 그래서 그런지 괜히 발이 피곤한 느낌이 든다.


돌멩이 하나 제때 안 치운다고 큰일이 생기는 건 아니지만 괜히 그 녀석이 미워졌다. 그리고 하루 종일 그 불편함을 감수한 나 자신이 신기했다. 그만큼 내가 내 스스로를 돌보지 않았다는 걸까? 오늘 하루의 피곤함에 얼마를 차지했을까? 괜히 걱정해 본다. 살다 보면 작은 신호들을 무시하고 만다. 예민한 삶을 사는 게 좋은 건 아니지만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 작은 신호들과 대면하지 않는 습관은 좋지 않다. 좀 더 쾌적한 삶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작은 것들과 씨름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다.


이상 장이 예민한 자의 변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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