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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훈 May 24. 2023

글 쓰지 않을 용기

에세이

현재 출판업계의 동향은 사실 모르겠다만, 최근 글쓰기 콘텐츠가 유행을 하는 건 맞는 것 같다. 아니면 조금 유행이 지났거나. 정확히 보자면 글쓰기가 아니라 '에세이 북'을 내는 게 유행인 것 같다. 요즘에는 읽으려는 사람보다 쓸려는 사람이 더 많다는 생각이다. 일단 나도 매일 읽기보다는 매일 글쓰기에 집중하고 있으니까.


작년 서울 퍼블리셔스 테이블에 갔을 때 세상에 정말로 책도 많고 작가도 많구나라는 걸 느꼈다. 예쁘고 정성스럽게 쓰인 책들을 보며 감동보다는 피곤했다. 사실 그게 내 감정이었다. 분명 좋은 내용의 책들도 많았다. 내가 한 번도 보지 못한 주제의 정보를 담거나 생각하지 못한 주제를 던져주는 그런 책들 말이다. 그렇지만 에세이 주제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이 에세이 시장에는 정형화된 몇 가지 주제도 있다. 유행을 타기도 하지만 매년 보이는 주제들이 있어서 흥미롭다. 그런 주제가 오랫동안 시장에서 사랑받는 데는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이해 못함의 자세를 취했다. 그 책들은 분명 모두 쓰임이 있고 태어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작가는 분명 글에 생명을 불어넣기 때문에 대부분의 책들은 저마다의 생명을 가지고 있다고 나는 매우 감상적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어느 정도 규모가 커진 에세이 시장 안에 '공산품'처럼 찍어진 것들이 늘어나고 있어 피로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 저마다 글을 쓰고 싶어 하고 책을 내고 싶어 한다. 좋은 현상이다. 글쓰기는 삶과 세계를 바라보는 시선을 변화시킨다. 그게 아니더라도 불안도를 낮춰주는 작은 역할까지 한다. 책이라는 공간을 차지하는 물체로 만들어서 현실에 두는 것 역시 매우 뿌듯하고 기쁜 일이다. 그런데 나는 별로 책을 내고 싶은 생각이 없다. 낸다 하더라도 e북으로만 내고 싶다. 내가 특별히 지구를 사랑해서 ESG나 지속가능성에 깊은 뜻이 있어서 그런 건 아니다.


그냥... 글 쓰지 않을 용기를 갖는 건 어떨까 싶다. 글쓰기는 자기표현 욕구 중 가장 기초적이고 접근이 쉬운 영역이기에 진입 장벽이 매우 낮다. 나 역시 그래서 그 수혜를 입고 있다. 하지만 이미 텍스트로 어지러운 세계에 굳이 현실에 공간을 차지하는 무엇으로 남기고 싶은 마음까지는 없다. 아직까지는 그렇다. 음, 어쩌면 책은 신성하다는 근본주의적 성격에 기인한 생각일지도 모르겠다.


글쓰기에 대해 오늘도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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