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승훈 May 01. 2024

결혼, 비교, 수용

결혼이라는 규격에 몸과 마음을 밀어 넣으며

자신만의 삶을 고집하던 아이들도 이것 앞에서는 규격화된다. 이것은 바로 결혼을 말한다.

우리 커플은 대학에 가지 않았고 고등학교는 대충 얼버무리며 지나쳤다. 아내는 보컬리스트가 되는 것이 꿈이었고 나는 기타리스트가 되는 게 꿈이었다. 우연하게도. 그러나 입시 제도에 몸과 마음이 지친 아내는 스무 살이 되자 제주도로 떠났고 나는 재수 끝에 군대를 거쳐 서울로 달려가 무작정 독립했다.


우리가 만난 때는 그러고 한참 뒤다. 각자가 어린 시절 가졌던 꿈의 불씨는 모두 사라진 채 조우했다. 이제는 사회적인 인간으로 기능하기 위해 고군분투 중인 두 사람이 어느 날, 우연한 시점에 스타벅스에서 마주했다. 아내는 그날을 떠올리며 "한눈에 반했다"라고 말한다. 나 역시 직감적으로 그녀가 나의 짝임을 알아챘지만, 의심 많은 성격에 애써 무시했다.


독자적인 생활 방식과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 두 남녀는 마법 같은 시간에 들어섰고 당연히 사랑에 빠졌다. 세계의 주인공이었고 주변 인물들은 그저 꾸밈음에 지나지 않았다. 사랑에 빠진 남녀가 으레 그렇듯 말이다.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규격화된 무언가라면 싫증을 내는 성격인 우리는 죽이 잘 맞았다. 청소나 줄 세우기, 씻는 순서와 같은 자질구레한 것들은 삐걱대기도 했지만, 전체적인 삶의 방향에 있어서 우리는 한 몸이라고 해석해도 좋을 정도로 기능했다.


그리고 연애 2년 차에 자본금 0원으로 결혼을 시작하자고 했다. 이 역시 동일한 연애관과 결혼관을 가지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이런 호기로운 시작 뒤에 우리는 여러 번 소위 '자존감' 떨어지는 일들을 겪었다.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결혼은 둘 만의 사건이 아니다.

- 둘과 연결된 가족들이 서로 대응한다.

* 결혼식을 하지 않으려고 했던 우리는 부모님들과 대화하면서 결혼식을 해야 하는 이유를 알게 됐다. 결혼식은 의례의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부모님과 가족들이 쌓아 놓은 인간관계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2. 결혼은 동시에 사회적인 사건이다.

- 기혼자는 친구를 비롯한 인간관계에서 종종 혹은 때때로 혼인 경험과 이유를 설명해야 한다.

* 최근의 취업 전선에 뛰어든 아내는 거의 모든 면접관이 기혼 여부를 물었고 그중 한 곳에서 자녀 계획에 따라 거취가 달라질 수 있으니 고용하기 꺼려진다는 말을 들었다고 말했다. (그 외의 곳에서는 모두 축하를 받았다고 한다.)

3. 혼인은 사법 체계와 행정 계획 아래에 놓여 있다.

- 동시에 현대 사회에서 매우 중요한 이슈로 다뤄진다.

* 한국에서 출산율과 혼인율은 현재 매우 떠들썩한 이슈다. 장기적으로 자녀를 준비하고 있어 결혼 이후 해당 이슈에 더 민감해졌다.


나열한 세 개의 설명이 우리가 견고하다고 착각했던 결혼관을 점차 무너트리기 시작했다. 연애는 타자가 주변 인물에 그치도록 으름장을 놓을 수 있었지만, 결혼은 그들이 깊게 관여할 수 있게 만들었다. 타자의 간섭이 일어나자 우리는 비교를 시작했다.


당연히 결혼에 딸린 모든 프로토콜을 경험해보지 못했기에 다른 혼인 사례를 열심히 찾아봐야 했다. (무작정한 결혼이 아니기 때문이다) 결혼 박람회 참여를 고민했고 대형 가전 매장에서 혼수 상담을 받았다. 그 외에도 많은 장소에서 결혼과 관련된 영감을 받았고 우리는 결혼 '플랜'을 세우기 시작했다.


이 플랜을 논의할 때 우리는 "무엇을 더하고 뺄 것인가?"를 주제로 논의했다. 우리는 무엇이 합리적이고 적당한가 치열하게 고민했다. 이는 결국 돈에 대한 이야기로 귀결됐으며 우리는 금세 피로해져서 이야기를 하다 말다를 반복했고 결국 아무것도 결정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한 달에 하나의 결혼 이슈를 처리하는 것만으로도 힘들어하는 우리였다. 우리가 힘들어 한 이유는 그냥 단순히 결혼과 그 부수적인 사건들의 피로도가 아닌 가치관이 무너지는 경험의 연속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든 선택에서 "이게 맞아?"라고 되물었다.


우리는 여전히 같은 과정을 되풀이 중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무엇도 확신할 수 없게 된 상황이 된 후 단일한 확신을 얻었다. 바로 결혼 생활이 앞으로 늘 그렇게 무엇하나 담보하지 않은 채로 개진될 것이라는 확신이다. 애초에 우리가 살아온 삶과 유사하게 어떠한 확언이 존재하지 않음을 깨달았다.


그동안 우리가 결혼에 가졌던 확신은 비범한 무언가를 시도하겠다는 치기에서 비롯됐다는 점을 인정했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환상을 가진 채로 결혼을 시작한다는 것도 함께 인정했다.


기존의 결혼관이 무너지고 새로운 관점을 세우게 됐다. 타자의 침투는 반기고 내면의 비교는 적당히 이용하기로 마음먹었다. 규격화의 시작이지만, 우리가 사회적 기능을 하는 인간이 되기 위해 여러 번의 통과 의례를 치른 것처럼 우리의 결혼 생활도 통과 의례를 치르는 것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결혼으로 인해 우리만의 특별함이 사라진다는 착각을 버렸다. 우리가 하는 행위와 믿음이 비교 불가능한 삶을 만들어 주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모든 확신이 비틀대는 상황에 꼿꼿이 서있는 우리의 견고한 사랑에 몸을 다해 기대기로 했다.


규격에 결혼관을 양보했지만, 그게 실로 나쁜 것은 아니다. 다시 한번 어떤 자세로도 기댈 수 있는 사랑을 보는 계기가 됐다. 또 부모님들의 지지와 사랑을 느낄 수 있어 너무나도 감사했다. 여기에 친구와 지인들의 응원, 낯선 이의 축복이 더해지자 결혼관은 다시 한번 확장됐다.


우리는 타자의 간섭을 환영하고 내면의 비교는 용납하기로 했다. 규격화된 어른이 되지는 못하더라도 양보할 줄 아는 아이들이 되기로 마음먹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돈 없이 결혼해도 될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