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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드쉠 Jan 18. 2024

말이 되는 사랑

-그냥 쓰는 시리즈


며칠 전 주말 아버지에게서 전화를 받았다
아버지가 직접 전화를 하는 일은 흔한 일이 아니었다. 아무래도 전할 말이 있으면 엄마를 통하는 편이었고, 흔한 안부역시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 한 번에 퉁치곤 했으니까.

아버지는 지금 주변에 누가 없는지를 물었다. 그 물음이 순간 나를 긴장하게 했다.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그 후 아버지가 꺼낸 말은 내가 상상한 어떤 것보다도 당황스러운 것이었다.

그는 나에게 사과를 했다.


"생각해보니 미안해. 내가 너무 배운 게 없어서, 좋은 말도 한 번 못해주고 널 응원해주지도 못하고 늘 힘들게만 했지. 나는 부모님 사랑도 받아본 적이 없고 그냥 군대식으로 그렇게 하는 방법밖에 몰라서"

마땅히 답할 말을 찾지 못하고 있는 나에게 그는 기어이 '사랑한다'고 말했다.

맙소사.


나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차마 둘 다 말로 하지 못했지만 그 세월은 그저 힘들게했다는 걸로는 표현할 수 없는 무엇이었다. 내가 기억하는 최초의 순간부터 그는 때렸고 나는 맞았고, 맞으면서 한 번도 굴하지 않았고, 맞는 것을 무서워하지 않았고, 아니 무서웠지만 언제나 맞는 쪽을 선택하며 서로 온 힘을 다해 상대 앞에서 무너지는 자아를 세우기 위해 안간힘을 써 온 시간이었다.


그런데 이제와 사랑이라니

도대체 사랑이 무엇이기에


그랬다. 우리 강아지가 나를 사랑한 방식으로 내가 아버지를, 아버지가 나를 사랑하지는 않았다


진실은 모르는 일이기는 하다. 강아지 별이가 나를 어떤 마음으로 사랑했는지 확신할 수는 없다.

하지만 내가 기억하는 한 별이와 나 사이엔 그렇게 무겁고 날카롭고 수 년동안 부엌 가스렌지에 눌러붙은 식용유처럼 찌들어 끈적거리거나, 올라도 올라도 정상이 보이지 않는 산 길처럼 힘겹고 어려운 것은 없었다. 해묵은 찌꺼기없이 그날 그날 채워지고 비워지는 그릇처럼 별이와 나 사이엔 그런 빈 공간이 있을 뿐이었다.

그 것은 함께하는 순간 찰랑찰랑 차오르고 어느새 완전히 비었다가 다음 순간이 오면 다시 새롭게 채워진다. 부족한 적도 없었고, 넘치지도 않았다. 깨질까 두려워할 필요도 없었다. 우리는 한 번도 서로에게 상처받은 적이 없다

하햔 털이 보송보송하고, 말랑하고 따끈한 생명체인 별이와 털없이 민숭민숭한 피부에 별이의 열배는 넘을 덩치, 두 발로 걷는 존재인 나 사이엔 비슷한 점이 없었지만 그런 차이가 문제 된 적도 없다. 우리는 같이 자고, 먹고, 수많은 휴일의 낮밤을 TV 앞에서 뒹굴거리면서, 공원의 잔디밭을 걸으면서, 갑자기 쌀쌀해지는 초가을의 밤이면 이불 속에서 서로의 체온에 의지해 잠을 청하면서 그렇게 오랜 시간을 보내왔다. 그 시간들을 돌이켜 맛보려고 한다면, 아마도 겨울밤의 따듯한 코코아같은 맛이 날 것이다.


아버지와는 그런 것이 전혀 없었다. 아버지와 나는 무척 닮았고 느끼는 많은 것을 말로 주고 받을 수 있었지만, 그 것은 이해라기보다는 무기였다. 말이라는 게 그런 걸지도 모른다. 말이란 것은 단단하게 만드는 것 아닌가. 생각이건 느낌이건 흐린 구름처럼 떠다니는 것들을, 모아서, 뭉쳐서, 굳이, 말로 내뱉는 것이다. 그건 한 번 뱉는 순간 그대로 고정되고 돌이킬 수도 없다. 하지만 말랑하고 따듯한 것들은, 굳이 그렇게 정교하게 다듬어질 필요가 없는 건지도. 풍선이나 마시멜로우를 깎아만든 조각 같은 것은 상상할 수 없다.

 형태화 된 것들이 더 불순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형태화된 이상, 그 단단함, 고정의 강력한만큼 다른 여지가 없는 것도 사실이다. 약속의 말, 결혼 반지, 모든 증거들은 그 자체로 돌이다. 그래서 피를 낼 수 있다.


피가 나 아팠던 순간들은 흔적으로 남았다. 회사를 그만두고 오랫만에 찾았던 집에서 아버지가 나에게 했던 말들. 넌 결국 다 실패할 거라고. 아무 것도 해낸 것이 없다고 뾰족하게 던졌던 말들은 흐려졌지만 여전히 흉터다. 그 말들을 지울 수가 있을까.

몇 년이 흐르고 나는 그 말들을 몇곱절로 돌려주었다. 내가 흘렸던 피에 담금질 된 쇠처럼 내 말은, 내가 던진 칼은 더 날카로웠다. 당신같은 사람을 부모로 두어서 평생이 힘들었노라고.

여든이 가까운 노구의 쪼글쪼글한 살갗에 닿은 칼은 메마른 피부 탓에 곧바로 튕겨나온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 그 것은 뼈부터 부수어버린 둔기였을 것이다.


그 시간을 지나 우리는 서로 어느 정도는 늙어버린 자의 너그러움으로 화해에 이를 수 있을까

그 말을 들어서 나는 괜찮아졌나. 용서했나. 용서할 수 있을까? 아니 용서할 것이 남아있었을까


사실은 몇년 전부터 어슴푸레 알고 있었다. 때로는 흔적이 남은 상처들을 쓰다듬으며 혼자서 현재의 고통을 과거에 떠넘기는 말들을 중얼거리기도 했지만, 그건 이제 휴지조각이 된 채권이라는 것을.

우리는 그저 말을 나눈 사이이며, 나는 그의 일부가 아니라는 것을. 이제 내 삶을 살아가는 존재로서 그 말들을 그저 세상의 한 부분, 타인의 것으로 흘려보내야 한다는 것을


하지만 그 것이 사랑이었다는데 나 역시 동의한다.

사랑이 말이 되어가는 과정의 실수와 잘못들이었다고 생각한다.

말을 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굳이 때리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럴 수 밖에 없었다. 서로가 알아주길 바라면서 힘껏 자신을 쥐어짤 수 밖에 없었던 시간을 이제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다른 말을 준비해보려고 한다.

조금이라도 더 당신에게 닿을 수 있는 말을 찾아보려고 한다

한 편의 글일 수도 있고 그에게 건네는 술 한 잔일수도, 내가 닿은 어떤 순간일 수도 있겠다.


분노이거나 화해이거나 말 없이는 쉽지가 않다.


그래서 이런 글도 끄적거리게 되는 것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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