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나고 자란 내가 쓰기에 적절한 표현인지 모르겠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군 입대 전까지 늘 사막에 내던져진듯한 기분으로 지냈다. 뭘 해야 할지 몰랐고 뭘 하라고 말해주는 사람도 없었다. 지금이야 뭐든 알아서 하려 하고 누가 해주는 말들은 추려서 듣느라 바쁘다지만 당시의 나는 너무 어렸던 것 같다. 열아홉, 스무 살이 성인이긴 할까. 성인이 뭐고 어른은 뭘까. 모르겠지만 어쨌든 나는 머리만 큰 어린아이였고 세상은 갑자기 짊어져서 휘청거리게 만드는 벅찬 짐이었다.
어떤 의식의 경로였는지는 기억 안 나지만 <어느 슬픈 전설의 22페이지>를 실제로 보고 싶어졌던 것은 이 시기였다. 한번 보고 나서는 그 뒤로 시간이 날 때마다 보러 갔었다. 그림 속 여인의 눈이 보고 있는 것과 담고 있는 것, 그 여인과 그림, 그림을 그린 화가를 보며 몸속에서부터 서서히 퍼지는 한기 같은 것을 느꼈다. 조금은 무서웠고 섬찟하면서도 반갑기도 했던 복잡하고 묘한 감정이었다. 입대 전까지는 정말 자주 보러 갔다.
전역하고 남들 하는 것들을 거쳐가듯 살아오며 그녀와 그녀의 그림에서 조금 멀어져 있었다. 가끔 그 눈빛이, 그 선명하고 짙고 서러운듯하면서 그런 것마저도 지친 체념이 어린 눈을 가끔 떠올릴 뿐이었다. 그 눈빛을 보고 나서 잊을 사람이 있을까. 자주 의식하지는 못하지만 어느 한편에서 언제나 나를 보고 있는듯한.
그런데도 천경자에 대한 책이나 그녀의 책을 읽어볼 생각을 하지는 못했다. 그림을 보는 것만으로 충분하다는 생각을 해본 것은 아니지만 의식의 은연에서는 그러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읽다 어려워서 말았던 『작가와 작품을 분리할 수 있는가』의 어느 리뷰가 생각난다. 딱 네 글자. "할 수 없음"이었다. 동감한다. 할 수 없다. 그림과 화풍의 이유가 되는 작가의 내면과 삶이란 서사를 아는 것이 작품을 더 잘 느끼는데 마이너스가 될 리는 없을 텐데 말이다. 그냥 귀찮아서 읽지 않았다는 핑계가 쓸데없이 길어진다.
아무튼 참 좋은 평전이다. 천경자 선생의 삶을 그저 나열한 것만이 아닌, 그녀가 삶 내내 짊어졌던 족쇄 같은 짐과 예술에 대한 고뇌들을 생생하게 읽을 수 있었다. 그런데 그녀의 서글픈 삶에 대한 이야기만 유독 기억에 남는다. 그림 속 여인의 눈빛에 담긴 것이 그것이었을까. 다음번에 읽을 때는 더 넓게 읽을 수 있는 사람이 되어 있길.
나는 어째 점점 더 서평에서는 멀어지는 것 같다. 상관없다고 생각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