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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작나무숲 Oct 05. 2021

[팔순의 내 엄마]이제 늙은이 데꾸 다니지 마!

- 나는 예전 같지 않은 엄마를 답답해하고, 엄마는 예전같지 않은 당신을 자책하고 자꾸 왜소해졌다. 


올 봄에 엄마와 함께 예쁜 꽃 화분 몇 개를 사 왔다. 


예전 단독 주택에 살 때 엄마의 봄은 겨우내 지하실에 들여 놓았던 화분들을 마당으로 내놓는 것부터 시작되었다. 마당을 가득 채운 엄마의 화분에서는 이름도 모를 꽃들이 우후죽순처럼 피어났다. 그런가 하면 키가 2층 높이보다 높게 자라난 목련나무에서 일제히 꽃망울이 터지기 시작하면 우리집 일대는 그야말로 ‘팝콘 축제’라도 열리는 듯했다. 동네 어귀에 들어서면 달덩이처럼 훤칠하게 솟아오른 목련나무가 어찌나 자랑스러웠던지. 5월이 되면 색색깔의 철쭉이 올라왔고 6월이면 천사의 나팔에서 뿜어져 나오는 향기가 대문 밖까지 진동했다. 여름철 습기 먹은 바람을 타고 퍼져 나가는 천사의 나팔과 치자나무의 향이 얼마나 나른한 기분으로 빠져들게 하는 지 직접 그 향을 맡아보지 않은 사람들은 알기 힘들다. 봄여름이면 으례 우리집 마당에서 펼쳐지는 여름풍경이었다. 그 풍경과 향기는 엄마가 살아계시는 동안에는 계속될 줄 알았다. 그러나 엄마가 아파트로 이사하면서 모든 것이 달라졌다. 그곳에는 목련나무도 우리를 달뜨게했던 뜨거운 천사의 천사의 나팔향도 없었다. 한 마디로 삭막했다. 


아파트로 이사를 하면서 엄마는 키우던 화분을 대부분을 ‘처리’했다. 군자란 화분 몇 개만 챙기고 천사의 나팔이니 치자나무, 철쭉이니 하는 것들은 모두 버려두고 오셨다. 아파트 베란다 넓으니까 가져가자고 해도 싫다고 했다. 처음 이사왔을 때 엄마의 아파트 베란다는 무척 단촐했다. 아니 쓸쓸했다. 


“화초들이 죽지는 않는데 예전 집에서 살 때보다는 못해. 꽃도 못 피우고.” 어느 날 엄마가 시쿤둥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 목소리에는 ‘저것들도 다 필요없어. 보기도 싫다’하는 뉘앙스가 짙게 깔려 있었다. 어떤 날은 “그깟 것들, 없으면 어때.”하면서 당장이라도 갖다 버릴 기세였다. 또 어떤 날은 “화분이고 뭐고 다 귀찮다.”라며 며칠 씩 들여다 보지도 않았다. 당시 엄마는 꼭 당신이 죽을 때까지 살 거라고 믿었던 ‘집’을 떠나와 허탈하고 허전해한다기보다는 강제로 ‘집’을 빼앗겨 분노한 사람쪽에 가까워 보였다. 


그렇게 한 해 두 해가 갔다. 엄마의 마음도 조금씩 누그러졌다. 베란다에는 다시 화분들이 하나둘씩 늘어갔다. 어버이 날 언니가 사 온 작은 카네이션 화분도 해마다 앙증맞은 꽃을 피웠다. 보통은 어버이날 카네이션 화분은 며칠 지나면 죽기 마련인데 그걸 살려 놓은 것이다. 큰 언니가 2년 전 여름 선물해 드린 연보라빛 별수국 화분도 싱싱하게 살아 있다. 엄마의 베란다는 마치 작은 온실처럼 화초로 가득하고 엄마는 다시 예전처럼 화초에 물을 주고 햇빛을 쐬어주면서 정성껏 돌보신다. 


그런데 정말 희안하다. 한날 한시에 한 화원에서 똑같은 화분을 사 와도 엄마네 집에서는 쑥쑥 자라고 꽃도 잘 피우는데 우리집에 온 녀석들은 일주일도 버티지 못하고 죽어나가기 일쑤였다. 할미꽃처럼 폭 꼬부라지거나 바싹 말라죽거나 뿌리가 썩거나 너무 강한 햇빛에 타 죽었다. 화원에서 알려준대로 물도 주고 바람도 쐬어주고 했는데 말이다. 


“우리집 채광이 나빠서 그런가 봐 엄마, 우리집이 서향이잖아.”

“여기도 뭐 옛날 집에 비하면 별로 뭐 빛이 드는거냐? 너네 집이나 여기나 뭐…” 엄마는 극구 ‘채광’이 원인이 아니라고 한다. 햇빛이 모자른 듯 하여 옥상에 올려놓았더니 다 타 죽어버렸다. 


어쨌거나 올 해도 엄마의 개발 선인장은 가지가 무거워 보일 정도로 주렁주렁 꽃을 피울 때에도 내 개발선인장은 꽃 한송이 피우지 못했다. 또 수국은 어떤가. 작년에 엄마랑 같은 날 같은 집에서 산 수국인데 엄마의 수국은 쌈을 싸 먹어도 좋을 만큼 이파리도 크고 주먹막한 수국이 주렁주렁 달렸는데 내 집의 수국은 흙 위에서 1cm 정도 올라오다가 그마저도 죽어버렸다. 이쯤되면 엄마 말대로 ‘채광’이 문제가 아니라 키우는 사람의 자질문제라는 데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화초에 관해서는 엄마는 최고의 마스터다. 나는 완전 똥손이다. 며칠 전에도 엄마화분에서 곁가지를 친  00 0가 자고 일어나보니 하루아침에 완전히 죽어 버렸다. 4년째 잘 자라던 왜 죽었을까. 아직도 그 원인을 모르겠다. 


화분 사러 갈래?


“여기다 뭐 좀 심어올까?” 엄마가 빈 화분을 보여주며 물었다. 

“밖에 비오는데?”

“화초 심거나 분갈이 할때는 비 오는 날이 좋아.”


화초 고르는데서도 우리 두 사람의 취향 차이는 확연하게 드러난다. 화사한 꽃이 피는 화초를 좋아하는 나와 달리 엄마는 두고두고 오래볼 수 있는 화초를 좋아한다. 내가 이미 꽃이 만개한 화분을 고르면 엄마는 이제 막 꽃망울이 맺힌 것을 고른다. 


“곧 죽을건데 며칠이라도 환하게 핀 꽃들을 보고 싶어.”

“지금 꽃이 활짝 피어 있으면 금방 다 죽어버려서 못써.”


나는 치자와 데모루, 금홍을 골랐고 엄마는 ‘퀸로즈’화분을 골랐다. 퀸로즈는 장미보다 꽃송이가 작지만 꽃송이가 많이 달려서 피어나면 무척이나 화사할 것 같았다. 


“엄마 화분 뒷 좌석에 실어.”

“아냐, 조수석에 놓지 뭐.” 

“그럼 손으로 화분 꼭 잡고 있어야 돼. 그냥 놔뒀다가 급정거라도 하면 흙 다 쏟아져.” 


끽- 비도 오고해서 차를 살살 몰고는 있었지만 갑자가 앞 차가 급브레이크를 밟으니 나도 급브레이크를 밟을 수 밖에. ‘저런 미친X.’ 


“엄마 괜찮아?” 

“아이고. 이를 어쩌니 화분이 홀랑 넘어갔네. 흙이 다 쏟아졌네… ”  화분이 넘어가서 흙은 물론이고 화초까지 다 쏟아졌다. 


“그러게 엄마, 내가 화분 잘 잡고 있으라고 했잖아.”, “아 진짜. 엄마! 왜 내가 하는 말을 안들어?”, “쓰러진다고 몇 번이나 말했어?” 차 바닥에 쏟아진 흙을 보니 갑자기 올라오는 짜증을 참지 못하고 연속으로 쏘아 부쳤다. 


당황한 엄마는 손으로 흙을 쓸어 담더니 


“그러게 이제 늙은이 데리고 다니지마. 맨날 사고만 치는데…” 

엄마가 잔뜩 풀이 죽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 엄마…. 그렇게 말하면 난 어떡하라고.’ 

 ‘아 이 망할 놈의 성질머리… 그걸 못참고 또 엄마한테 해 대냐?’ 


“엄마 그게 아니고…”


엄마는 지금 늙어가고 있는데 나는 여전히 젊은 시절의 엄마라고 생각하고 예전같지 않은 엄마를 답답해한다. 그럴수록 엄마는 예전같지 않은 자신을 자책하고 자꾸 왜소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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