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승아 Apr 01. 2022

당신은 꽃말로 살 수 없을 거야

좋아하는 일을 업으로 삼고 살아가는 보통의 날들

좋아하는 일을 업으로 삼고 살아가는 보통의 날들

꽃을 구매하러 오신 분 중 꽃말을 물어보시는 분들이 있다. 죄송하지만 플로리스트들도 잘 모른다. 아니 나만 모른다고 해두자. 우리는 (아니… 나는) 꽃말보다 꽃의 모양에 집중하기도 하고 편애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있다.


꽃말은 구매자의 열 다섯 명 중 한 분 정도 물어보셨던 것 같고 그 중 남자분들이 삼 분의 이 정도였던 것 같다. ‘남자구매자가 많아서 그런 것 아닌가요’ 하고 물어볼 수 있겠다 싶어 미리 대답하자면 그렇지 않다. 섣부른 짐작을 해보자면 (아주 편협한 나의 개인적인 통계로 진지하지 않게 받아들여 주면 좋겠다) ‘이거 설마, 무엇 하나도 실패하고 싶지 않은 남자들의 본능적인 마음 아닌가?’ 혹은 ‘언제나 칭찬받고 싶은 남자의 욕구’ 까지 확대 해석도 가능하다. 하지만 결론적으로는 대부분 꽃말에 맞춰 구매하는 것은 실패한다. 이 대목에서 조금 통쾌한 기분을 느낄 수 있는데 왜인가 하니 ‘꽃 모두를 좋아하는 마음으로 봐줘야지. 그냥 이쁜 거로 사세요.’ 의 꽃 엄마 같은 마음에서인 것 같다.


꽃말에 따라 꽃 사기에 실패하는 대략적인 이유는 세 가지다.

‘첫째’ 꽃말을 따라서 사기엔 가게에 비치된 꽃이 한정적이다. ‘둘째’ 예쁜 꽃을 골랐더니 꽃말이 변덕, 배신, 숭배, 고독. ‘셋째’ 꽃말 위주로만 골라 모으면 여자친구한테 사랑받지 못할 꽃 모음이 된다. 그런저런 이유로 열다섯 명의 그 한 명들은 ‘알아서 예쁘게 해주세요’라는 가장 나이스한 요구로 꽃다발을 마무리하게 된다. 꽃말을 물어보시는 분들은 신기하게도 자신의 유일했던 그 욕구를 매우 쉽게 포기한다. 그리고 쿨하게 플로리스트의 안목에 맡겨주신다. 어쩌면 꽃을 잘 몰라서 접근할 수밖에 없던 통로가 ‘꽃말’이었나보다. 나의 사적인 감정이지만 나는 남자들의 그런 조금 단순한 방식이나 행동 양식이 귀엽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런 그들을 위해 센스있는 꽃 사기 팁을 전해본다. 계절 꽃 추천과 그리 애타게 찾던 꽃말도.




꼭 벚꽃 구경이 아니어도 좋으니
봄을 담은 꽃다발


봄에는 벚꽃, 설유, 조팝처럼 가지에 풍성하게 핀 꽃들이 많다. 다발로 한 아름 안겨주면 감각 있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고 조금 보태어 ‘센스보니 꽃 선물이 한두 번이 아닌데’ 같은 오해까지 가능하니 적극적으로 추천하고 싶다. 가지가 있는 형태이다 보니 다발이 커질 수밖에 없는데 큰 꽃다발은 여자에게 하이힐을 신은 기분과 비슷하게 조금 불편하면서도 또 동시에 좋고 마음이 벅차다. 살면서 불편함과 좋음의 감정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게 또 뭐가 있나 생각해보면 많지가 않다. 대부분 불편한 것은 내키지 않아 선택하지 않게 되는데 높은 구두의 발 아픔을 감수하는 또 다른 만족감의 이면처럼 이상하게 큰 다발은 좋다. 설레거나 부푼 그런 좋아하는 마음 같은 건 왜 불편하면서도 좋은지 설명하기 어렵지만, 그처럼 그냥 좋다. 안고 있기 무거워 발 대신 팔이 좀 아플 수 있지만 장담컨대 확실히 눈에 띄게 아름답다.


벚꽃의 꽃말: 뛰어난 미모, 절세 미인, 정신의 아름다움

조팝의 꽃말 : 단정한 사랑, 노력 







주연이자 자유롭고 싶은 그런 마음이 있어. 알기 어렵겠지만.
여름을 담은 꽃다발


여자들의 마음속 깊숙이에는 어느 정도씩의 소녀를 품고 사는데 이건 삼십 대 후반을 달려가는 나도 육십 대의 우리 엄마도 보기에 누구보다 털털했던 그 언니도 그럴 것이다. 리넨 재질의 앞치마인지 원피스인지 옷에 관심이 없는 자는 구분하기도 어려운 것을 입고 제주도 들판의 바람에 둥실거리고 싶은 마음이 더러 있을 것이다. 그 기분을 좀 더 풀어보자면 나 자신이 내 삶의 주인공 같은 마음인데 한편으론 억압받지 않고 자유롭고 싶은 그런 복잡한 마음이다. 휴.. 더 설명하자면 여자들의 심리에 대해서 지칠 수 있어서 그런 마음이 있다 치자. 그런 마음을 제주도 들판이 아닌 지금 느끼게 해주고 싶다면 이만한 게 없다. 플로리스트 분께 “ 들풀 같은 다발 또는 들꽃으로 만들어주세요.”라는 주문이면 꽃의 디자인 퀄리티가 평균적으로 굉장히 높아진 요즘엔 웬만한 분들은 모두 알아채 줄 것이다. 대부분 그린 소재가 많이 들어가고 들꽃이 포인트가 되기 때문에 위에 말했던 앞치마 같은 옷을 입고 들판을 두둥실 하는 그런 자유로운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여름 소재 다발은 계절감을 어필하는데 정말이지 독보적이다. “대신 자주 물을 갈아주셔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들판 그 이상의 향기를 맡으실 수 있어요.“


들풀은 워낙 종류가 많기에 그중 내가 애정하는

아미초의 꽃말 : 우아한 몸짓, 사랑의 소식




슬슬 이때부터 얼굴을 비추지

늦은 가을을 담은 꽃다발


헬레보루스라고 하면 너무 어렵고 크리스마스 로즈라고 하면 친근하게 들리는 이름. 8년 차 플로리스트의 손가락 세 개에 든다는 건 은근 치열한 싸움이 아닌가. 하는 나의 자만한 생각 뒤로, 와인 빛의 꽃 얼굴을 보면 황홀해 순간 말이 없어진다. 두툼한 줄기는 위로 갈수록 여러 줄기로 뻗고 있다. 뻗은 줄기마다 꽃을 달고 있는데 다섯 개의 얼굴 중에 세 개 정도는 늘 고개를 떨구고 있어 애써 내 머리를 숙여 꽃을 들여다보게 된다. 숙인 고개는 외로워 보여 혼자 있고 싶다 할 것 같지만 고독하게 아름다우니 자꾸 궁금해진다. 사연 많아 보이게 아름다운 이 녀석은 그린 색보다는 화이트나 와인컬러 또는 퍼플이나 와인이 화이트 베이스에 물감처럼 섞인 그런 색을 추천한다. 그린 컬러는 고독한 아름다움이 부족하다. 이렇게나 아득하게 좋은 헬레보루스의 질감과 모양과 컬러의 조합은 오직 헬레보루스만의 것. 덧으로 꽃말을 찾아보고 무릎을 탁하고 쳤다.


헬레보루스의 꽃말: 나의 불안을 진정시켜주세요.







열 명 중에 열 명이 좋아하는 것

겨울을 담은 꽃다발


이십 대 후반과 삼십 대쯤에 접어들면서 누구나 나를 좋아할 수 없다는 것을 그 시절 유행하기 시작한 베스트셀러들의 책으로부터 배웠다. 지금의 십 대와 이십 대분들은 더 빠르게 알고 있을 사실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면 너도나도 편한, 우리가 모두 평온해지는 진리 같은 문장이다. 하지만 꽃에서는 각자의 취향을 뛰어넘어 누구에게나 이쁨받는 막내딸 같은 존재가 있다. 잘라보면 텅 베어진 줄기가 무색하게 제법 두툼한 줄기가 많고 제멋대로의 라인으로 성격을 드러낸다. 간혹 여리한 얼굴과 대비되는 튼튼한 하반신의 줄기를 보면서 ‘얘는 도통 알 수가 없네’ 싶기도 하다. 둥근 꽃 얼굴은 뾰족한 구석 하나 없이 부드럽고, 경직되지 않은 줄기는 자유롭다. 겹겹의 여성스러운 꽃잎은 삼백 장이 넘어 하늘거린다. 색상도 대부분 부드럽고 온화하다. (진하고 채도 높은 색감들도 있다) 한마디로 고약한 성질 같은 건 없어 보이는 내실이 단단한 아이다. 플로리스트 입장에서도 꽃을 팔면서 얼마나 든든한지, 이 외유내강한 막내딸은 ‘관리를 잘해주면 이주도 보실 거예요’ 하는 말을 하게 해준다.


술술 드러나는 라넌쿨러스에 대한 애정은 나 말고도 첫눈에 반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게다가 요즘엔 은은하고 소프트한 색감을 넘어서 와인이나 보라 그리고 다운된 피치 톤이나 수입된 베이지색까지도 만날 수 있어 취향의 경계선을 뛰어넘는다. 그러니까 “보이면 그냥 라넌쿨러스를 사면돼요.”


라넌쿨러스 꽃말

매력, 매혹






그럼에도 늘 곁에 있어 주는 애는 _튤립


그런데 요즘은 계절을 덜 탄다 해도 꽃이라는 게 계절에 따라 나오니까 사고 싶어도 못 사기도 한다. 또 꽃집 사장님의 기분과 취향에 따라 사들여 온 꽃이니 선택의 여지가 더 좁아진다. 그래서 제일 쉬운 애로 알려주자면 튤립이다. 요새는 정말 다양한 튤립들이 있는데 네덜란드에서 태어난 튤립들은 우리가 추워지는 계절이 그들의 시작이다. 국산 튤립은 홑 튤립 종류가 많고 홑겹의 튤립은 더우면 이파리 하나씩을 휙휙 너무 과감하게 펼쳐대 속을 훤히 보여주는 점이 있어 때론 자중시키고 싶지만, 신기하게도 시원한 온도에 가면 어느 정도 다시 오므린다. 미세하게 휘어진 라인감을 타고 올라가면 반듯하게 그려진 타원형의 꽃이 있다. 줄기에 비해 커다랗고 명확한 세입의 얼굴 덕분에 색감이 더 드러나 보인다. 줄기가 똑하고 쉽게 부러지긴 하지만 그마저도 그 꽃의 특성이니 특별하다. 한 가지 종류로만 넣고 싶다고 하시면 제일 추천하는 꽃인데, 그 말은 ‘원플라워’ 종류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답다는 것이고 받는 이의 취향이 심플 이즈 베스트거나 색감이 강한 것이 좋거나 여성스러운 프렌치 무드가 좋은 것을 모두 커버할 수 있다는 말이다. “취향, 연령대, 꽃 사이즈의 볼륨과 상관없이 가장 쉬운 게 저는 튤립이라고 생각해요. 제법 단아하기까지 하거든요.”


튤립의 꽃말

대표 꽃말 : 영원한 사랑의 고백

빨간 튤립 사랑의 고백, 보라 튤립 영원한 애정, 노란 튤립 헛된 사랑, 흰색 튤립 실연

작가의 이전글 좋아하는 것과 사랑하는 것 구분할 수 있다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