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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아 Sep 19. 2023

비 맞은 아기 고양이 같지 않아도

수취인 불명으로 보내는 편지들

                    

이십 대 시절을 돌이켜보면 여러 단어들이 떠오르지만 그중에는 역시나 <회사와 연애>가 동그라미 쳐지는 재미난 포인트인 것 같습니다. 스무 살 이후는 성인으로 분류되는데도 뒤돌아보면 아이 같았던 부끄러운 기억들이 왜 이리 많은지요. 성인이 되어 대부분을 보내는 일터에서도 나 자신을 지켜야 할 일은 참 많았습니다. 서툴러서 상처도 쉽게 받고 스스로를 지키지 못한 날 들도 많았고요. 그러다 퇴사 후에 제 일을 하면서 오히려 이전 회사의 대표나 상사를 이해하는 폭이 넓어졌습니다. 이제 와서 ‘아 그럴 수 있었겠구나. 그도 참 외로웠겠구나.’하곤 하는데, 이제와 상대방에게 닿을 리 없지만 그간 내가 묵혀두었던 설움과 미웠던 마음이 조금 풀리곤 하더라고요.


저는 종종 샤워를 하다가 생각이 정리되거나 깨닫게 되는 순간이 많은데 왜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무념 무상하게 만드는 쏴아 쏴아 떨어지는 물줄기 소리 때문일까요. 그렇다 보니 아이와 한참 투닥거리는 저녁시간에 혼자 화장실에 들어가 씻는 것은 현생과 단절되는 느낌이 납니다. 화장실 샤워부스 유리문을 닫고 나면 생각이 풍요로워집니다. 비눗물이 들어갈라 눈을 질끈 감고 샴푸를 하다 보면 아주 오래된 예전 일도 종종 다녀가곤 해요.


어제는 샤워를 하다 문득 회사에서 멋졌던 그 동료가 떠오르는 겁니다. 지금도 가끔 연락을 하고 지내는 인연이라 이제 언니라고 칭하겠습니다. 그때의 언니를 생각하니 시간이 급격히 아득해졌습니다. 마치 그때와 지금의 언니가 다른 사람인 것만 같았습니다. 드라마 속 한 장 면처럼 비현실적으로요.



그 언니는 예쁘장하고 세련된 옷태를 지녔으면서 매우 웃기는 농담을 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다이어트는 해본 적 없을듯한 태생부터 마른 몸매에 걸쳐진 베이직한 옷차림은 과하지 않고 늘 세련되고 단정해 보였습니다. 모르긴 몰라도 한번 입은 옷은 두 번 입지 않고 매번 빨았을 것 같은 느낌입니다. 그녀의 옷장은 어느 정도 가격이 나가는 옷들로만 채워지고 단정한 향만 가득할 것 같았습니다.


그녀는 제 평생에 본 제일 작은 얼굴에다 이뻤습니다. 오전마다 커피를 사들고 오는데 날씨와 상관없이 늘 따뜻한 라테였습니다. 저는 그때 생각했습니다. ‘아 취향이 분명한 사람은 멋진 거구나.’ 게다가 회사 의자에 앉아 어깨에만 가디건을 걸친 채 일하는 모습도 스물다섯 무렵의 저에게는 참 멋진 것이었습니다. 회의 시간이나 컴퓨터 앞에서는 까만 뿔테안경이 써져 있었는데 그것도 참 꽤나 프로페셔널해 보이지 않습니까. 제 회사 인생에 이런 캐릭터가 하나쯤 있었다는 것이 저는 꽤나 기쁘고 감사합니다. 두고두고 회상되는 나의 회사 스토리에 그녀가 있어 좋았습니다.


하지만 제가 샤워하다가 이제 와 생각난 포인트는 그것이 아니었어요. 그 회사를 입사한 지 13년 전이고 퇴사한 지는 8년 전인데 너무 늦은 거 아니냐 물어보면 정말 부끄러울 것 같습니다. 하지만 갑작스럽게 깨달아진 이 생각을 혼자만 안고 있는 것이 아까워 이렇게 당신에게 편지로 남겨봅니다.


그녀의 말투나 행동에는 상사에게 잘 보이려는 태도가 없었습니다. 그녀가 멋졌던 복합적인 이유 중에 제일 큰 요인은 바로 여기에 있었는데 그간 저는 디자이너답게 시각적인 것에 사로잡혔던 것 같아요.


쭉- 우리는 초등학교 발표 시간부터 자기 의견을 겨우 겨우 짜내고는 아무래도 분위기를 살피게 되지 않습니까. ‘어 내 의견에 누가 동조하지 않으면 어쩌지’하고 말입니다. 다른 사람의 표정도 보게 되고요. 하지만 언니는 자기 의견의 수용 여부를 개의치 않고 지금 의견을 제시해도 되는지의 적절한 상황 판단하에 조목조목 하게 이야기를 했는데, 그녀의 문장에는 대체적으로 굳이 살을 부치거나 자신의 일을 부풀려 말하거나 하는 불안한 요소가 없어 보였습니 다. 누구나 자기 의견에 동조나 애정을 안 받고 싶은 사람이 있겠습니까만 크게 휘둘리지 않아 했어요.


직장생활에는 업무 이야기 외에도 우리가 동료 및 상사와 이야기할 시간이 참 많음을 아시지요. 그때도 그녀는 누군가에게 기분을 맞추고자 하여 나오는 어색한 표현이나 괜한 달가운 말 같은 것은 없었습니다. 무리해서 나온 달가운 말은 하고도 참 후회하거나 머쓱해지기 마련이지요. 그건 그녀가 살아온 삶에서 탄탄히 자리 잡힌 마음과 태도 같았습니다. 물론 그녀도 이 직장이 소중했겠지만 내가 가졌던 마지막 실낱같은 애절함이 아니었어요. 언니에게든 언제든 돌아갈 어딘가가 있는 듯한 심리적, 경제적 안정감을 느껴지는 듯했습니다. 삶에서 자신 존재 자체를 부정하거나 의문을 갖지 않아 보였습니다. 그 건 든든하고 올바른 울타리 안에서 적당한 개입으로 자라난 몸과 마음이었고 그것이 이제 와 내심 부러워졌습니다.


이렇게 늦게 갑자기 말이죠. 아니, 생각해 보면 저는 늘 그런 것들이 부러웠습니다. 고단하고 불안하게 보낸 나의 삶의 한 부분은 감추려야 감춰지지 않고 툭 튀어나와 버려 타인에게 나의 실상을 들킨 것만 같아 어색하게 굴었던 날들이 무수합니다. 지금은 그런 것들이 에너지가 되어 목적성도 갖게 하고 진취적으로 살게도 하여 대게는 아무렇지 않지만 안정감 있는 삶에서 온, 자신을 의심하지 않는 삶은 늘 부러웠습니다.


이상화되어 있는 자신에 맞춰 끌어올려야 한다는 압박도 없고 그냥 지금 자신을 그럭저럭 괜찮게 여기며 오늘의 최선을 다한 채 적당한 걱정과 내일에 대한 희망이 안정과 버무려져 잘 살아가는 것이요.


한편으로는 저와 같이 불안정한 기류의 사람들을 빨리 캐치해 내기도 합니다. 최근 불안정한 기류의 사람을 목격했던 것은 동네 친구네 집이었습니다. 간간이 듣기로는 아기 엄마가 된 그녀의 삶도 쉽지 않아 보였어요. 남들은 있는데 나만 없는 것의 설움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그녀는 아버지 손에서만 키워졌는데 그건 남들은 평범하게 소유하고 있어 모르고 살아도 되는 일을 혼자만 알아버리는 것이었을 테니까요.


저희 남편은 홀어머니 손에서 자랐는데 어느 날 과거의 그가 궁금해져 물었습니다. “언제 아버지가 가장 생각나고 필요했었어?” 그의 입에서 “매 순간.”이라는 답이 나오고 그는 말을 이어나갔습니다. “면도할 때 가르쳐준 사람이 없어서 그럴 때 필요했었어.”라고요. 생각지도 못했던 불편함이었습니다. 어린 나이의 그는 자신이 왜 이런 박탈감을 느껴야 하나 의문을 품곤 했겠지요.


그녀에게서 저는 잠시 저의 예전 모습을 보았습니다. 조금 어리숙한 채, 모르는 체하고 마는 그 모습을요. 이미 그녀는 무엇보다 상대에 대한 태도와 성향을 빠르게 감지했을 것입니다. 그런 눈치는 우리가 쌓아 온 능력이거든요. 자신을 지키는 방법으로 어리숙하고 부족해 보이는 태도가 상대방을 편안하게 하고 배려한다고 생각하는, 그것을 제가 아닌 그녀에게서 보았습니다. 그러한 것이 상황이 부드럽게 흘러가게 한다는 것을 분명 아는 듯했습니다.


저는 말을 아끼고 그녀가 던진 화두에 그저 끄덕이며 눈빛으로 호응했습니다. 그녀를 애쓰게 하고 싶지 않았어요. 어리숙하고 모르는 체하는 그 가면은 결국은 무리하는 것이거든요. 어쩌면 그녀는 집으로 돌아가 아는 것을 모르는 것처럼 어리숙한 체했던 자신에게 알 수 없는 죄책감과 괜한 슬픔을 느꼈을 거예요.


당신이 비 맞은 아기 고양이 같지 않더라도 사랑받을 수 있다고, 누구보다 내면은 단단한 것을 알고 있다고 말해주고 싶었습니다. 우리는 이미 한 아기의 엄마들이 된 만큼 컸는데, 하루하루가 살아져 어른이 되었을 뿐 겪었던 아픔은 왜 이리 버려지지 않는지. 그렇게 먼지 쌓이듯 나날들이 쌓여 어른의 모습을 한 아기 고양이가 되었습니다.


살면서 무수히 도망가고 싶었을 현실에서부터, 부단히 노력해 도망쳐왔을 일들이 - 시간이 흘러 잠시 감춰졌을 뿐, 하나도 녹지 않았음을 그녀를 통해 다시 한번 실감하며.

그녀에게 위안을 건넬 수 없는 마음에 괜스레 슬퍼져 당신에게 편지를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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