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원봉사 정책저널 통권 제20호 게개
풀뿌리의 소규모 시민활동은 모든 조건이 녹록치 않다. 재정확보도, 인력도, 경험도 충분치 못하고 당장 현장의 일거리가 차고 넘쳐서 모금할 여건이 못 된다. 그렇다고 모금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행정안전부에서 3년에 한 번씩 시행하는 자원봉사 실태조사를 보면 자원봉사와 모금은 상호 영향을 주고 받는다. 시민활동의 참가자가 기부도 잘 하고 기부를 한 사람이 봉사도 열심히 한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규모가 작고 지명도가 낮은 단체일수록 주변인들부터 시작해서 후원이든 자원봉사든 어떤 일이라도 일단 시작하도록 해서 그 다음의 확장을 만들어야 하지 않겠는가.
모금은 관심있는 사람을 모으는 데서 출발한다. 따라서 시민활동에 있어 모금은 중요한 재정확보의 방안인 동시에 단체의 지지 기반을 넓히는 활동이 된다. 공익활동은 끊임없이 새로운 인력들을 유입함으로서 오래되고 지친 인력들을 대체하거나 보완함으로써 건강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처음부터 상당한 시간과 노력을 들여서 봉사를 참여하는 사람은 많지 않지만, 소액의 기부로 응원의 마음을 표현하는 것은 생각보다 쉽다. 따라서 소규모 지역활동일수록 지역 생태계를 기반으로 게릴라식 모금을 하는 것은 중요한 전략이 될 수 있다. 단체와 활동이 전국적인 인지도를 가질 필요는 없지만 적어도 활동 공간이 되는 지역사회 안에서는 유의미한 활동으로 인정받고 지지받음으로써 토대를 견고히 할 수 있다.
비영리 활동 치고 모금을 하지 않는 곳은 거의 없음에도 불구하고 모금은 늘 어렵다. 최근 디지털 모금이 주요 활동으로 부각되면서 더욱 그렇다. 모금이 무엇인지 좀 배워볼까 하면 이미 내용이 바뀌어서 공부를 조금 했어도 주마간산(走馬看山) 격이다. 게다가 모금이 더욱 복잡해졌다. 유산기부, 계획기부, 고액기부, 모금캠페인, 크라우드펀딩, 저금통모금, 디지털모금함 등 성격이 너무 다른 것들이 많아 한 가지 성공경험이 있어도 다른 것을 잘 하기 어렵다. 무엇보다도 어려운 것은 ‘돈을 달라고 요청’하는 것이 마치 구걸과도 같다고 느껴져서 마음먹는 것 자체가 어렵다. 모금을 잘 알지도 못하고, 하는 방법도 잘 모르는데다 하기 조차 싫은 일이 잘 될 리가 없다. 이런 저런 어려움을 이유로 아직까지 우리나라의 90%가 넘는 비영리 및 시민 단체들은 모금에 제대로 입문도 못했다. 반면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모금이 가장 잘 되는 나라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힌다. 국제적인 모금 단체들은 나라별로 치밀한 모금시장 조사를 통해 한국의 모금 잠재력을 높이 평가해서 속속들이 한국에 사무소를 설치하고 있다. 우리의 풀뿌리 시민활동들이 모금에 대해 주저하고 있는 동안 세계 최고 수준의 모금단체들이 한국에서 어마어마한 모금을 하고 있다는 얘기다.
해외에는 다양한 기관들이 모금 통계와 연구를 매년 정기적으로 쏟아내고 있는 반면 국내는 모금관련 연구가 거의 없다. 몇 안 되는 국내 모금 자료들이 몇 년째 거듭 지적하는 것이 양극화 현상이다. 즉, 국내 모금액의 85% 이상이 10% 이내의 몇몇 대형 모금 단체에 집중되고 있어 기부금의 빈익빈 부익부가 심화되고 있다. 어쩌면 당연하다. 상당 수의 소규모 단체들이 모금 목표와 전략, 방법에 갈피를 못 잡는 동안, 조직화된 대형 단체들은 열정적이고 최선을 다할 뿐만이 아니라 체계적이고 성과 지향적이고 분석에 의한 모금들을 하고 있다. 게다가 오랜 경험과 노하우를 가지고 더욱 정교하고 세련된 모금을 전개한다.
이미 한참 전에 모금과 마케팅의 선이 없어졌다. 모금하는 이들의 호칭이 펀드레이저이냐 마케터이냐는 논쟁은 더 이상 무의미하다. 과거의 모금은 분명히 순수하게 사회의 필요를 채우기 위해, 가치 중심으로 호소했고 그 방법 면에서도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공감과 참여가 중요했었다. 물론 이런 요소들은 현재도 여전히 중요하다. 하지만 최근에는 좀 더 확실한 목표와 성과를 얻기 위해서 치밀한 조사와 분석을 근거로 하고 있고, 단체의 필요 뿐만 아니라 시장의 흐름과 반응에 더욱 민감해졌다. 즉, 마켓(market) 중심으로 생각하고 전략을 세우는 ‘마케팅’의 시대가 도래했다. 현재 우리나라의 모금 활동들은 마케팅 기술 중심의 모금과 관계형 모금이 병행되고 있다고 보인다. 단체의 역사와 규모, 지리적 여건, 예산, 전략, 사업의 내용 등에 따라 전문모금과 풀뿌리모금으로 나뉘었다고 보인다. 그리고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이미 그 격차가 상당해서 하나의 기준으로 모금의 전망을 내다보기도 어렵게 되어버렸다.
대형조직의 시스템적 모금에서는 이미 디지털 전환(Digital Transformation)이 화두가 되었고, 데이터 기반의 모금전략과 성과분석이 상식이 되었다. 이를 위한 대규모 자본의 투자는 필수이다. 모금에 투입할 수 있는 인력의 수, 모금활동의 과거 경험치, 축적된 기부자의 데이터, 가용 자원, 사업의 역량, 대외 네트워크와 홍보 역량, 브랜드와 인지도가 모두 다 따져보아야 할 중요한 모금 요소들이다. 실제로 내가 활동하는 한국모금가협회에서는 매년 이러한 주제들을 선정하여 각각의 모금교육으로 제공하고 있고 현장의 수요도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디지털화된 모금은 각기 천차만별로 다른 양상을 띠지만 어떤 공통점들이 존재한다. 홈페이지를 모금친화적으로 갖추는 것은 기본이다. 모금단체로서 반드시 공개하고 알려야 할 정보를 적절하게 게시하는 것은 물론, 다양한 후원 사업의 열거, 현재 진행하고 있는 액티브한 캠페인 활동, 기부에 참여한 다양한 사례의 소개, 기부자들을 위한 추가 편익 등등을 보기 좋게 편집하고 보여줄 뿐만 아니라 수시로 업데이트한다. 게다가 각각의 정보 소스의 유형별로 텍스트와 이미지, 영상과 카드뉴스 등을 분류하여 여러 가지 소셜 미디어와 연동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한 걸음 더 앞서간 단체들은 홈페이지의 여러 화면에 기부자들의 다녀간 보이지 않는 발걸음들을 추적(트레킹)하고 개인별 취향과 선호도에 따라 ‘광고’를 뿌리기도 한다. 이 정도 되려면 예산과 전문 인력이 상당히 필요하다. 또한 보이지 않게 자체적인 기부자 데이터베이스 시스템을 갖추고 있어야 하며, 전문적인 외부 파트너들의 도움을 수시로 받으면서 업그레이드와 업데이트를 반복해야 한다.
모금의 디지털화에 대해서 받아들이는 입장은 편차가 크다. 적극적이거나 또는 거부감을 보이거나. 그런데, 이런 경향성은 뜬금없이 갑자기 등장한 것이 아니다. 모금은 사회와 환경의 영향을 고스란히 받기 때문에 사회의 변화 흐름에 따라 모금의 트렌드도 달라진다. 기부자는 동시에 소비자이기도 하다. 소비자들은 기업의 최신 마케팅 활동에 영향을 받게 마련이라 금방 새로운 유행에 익숙해지고 낡은 방식을 거부한다. 대형 단체들은 이러한 소비자들의 새로운 패턴을 열심히 읽어내려고 애쓰며 모금에도 이를 접목하고자 부단히 노력한다. 결국 대형단체들의 모금은 IT 기술의 발전, 마켓 5.0 시대에 발맞추어 ‘자동화되고 개인화된 디지털 경향성’에 더욱 주목하고 기업과의 협력을 더 강화하는 방식으로 전개될 것이다.
이런 전략적인 디지털 마케팅 흐름 속에서 시민활동은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반드시 대형 모금단체들처럼 막대한 투자와 세분화된 전략을 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기부자들 중에는 여전히 지역사회의 시민 활동과 자원봉사에 대해 열의를 가진 이들이 있고, 너무 큰 규모의 멀리 있는 단체보다 가까운 지역 활동에 참여하는 것을 선호하는 이들도 항상 존재한다. 문제는 소통의 방식, 요청의 방식이다.
코로나가 가져온 가장 획기적인 변화는 비대면 기술의 발달이다. 이런 현상을 시민활동에서도 간과해서는 안된다. 코로나의 방역단계가 심각수준으로 갈수록 사람들이 온라인과 모바일에 머무는 시간은 더 길어진다. 누가 어떻게 온라인 방문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을 것인가. 한국중앙자원봉사센터는 카카오같이가치와 함께 시민활동가들이 다양한 나눔캠페인을 진행할 수 있도록 온라인 모금 플랫폼을 제공한다. 온라인 모금 플랫폼에는 전국의 다양한 활동과 나눔사례들이 올라오고 수 십만원대부터 수 천만원에 이르기까지 모금 규모와 내용이 다양하다. 이미 이를 잘 이용하여 자원봉사 이그나이트에서 우수사례가 소개되기도 했다. 주인공들은 모금에 열정이 있는 활동가들이다. 해본 사람들이 반복해서 계속 모금함을 두드린다. 잘되는 모금함을 뜯어보면 사진과 제목, 스토리에서 모두 시선을 사로잡는다. 구체적인 상황과 공감가는 이야기가 있고, 후원을 요청하는 내용도 구체적이다. 한 번에 갑자기 잘하기는 어렵지만 여러번 반복해서 모금을 하다보면 좋은 경험을 갖게 되고, 경험은 노련함으로 발전한다.
시대가 너무 많이 변했다. 엄청난 정보들이 인터넷과 모바일에 쏟아지고 적극적이고 열정적인 국민, 특히 청년들이 ‘소셜’ 기류에 합류하면서 사회 문제 해결자로 나서고 있다. 마음만 먹으면 다양한 매체를 활용해 맛깔나게 후원을 요청하고 실시간 결제할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추어져 있다. 소비와 기부의 경계가 모호해지면서 ‘소셜한 기업’ 들이 전통적인 공익 활동을 대체하고 있고, 소비자들도 식상해보이는 비영리 단체에 기부하기보다는 오히려 매력적인 파타고니아의 티셔츠를 더 구매하고 싶어 한다.
물론 이런 몇몇 현상 때문에 시민활동의 미래가 어둡다고 말하는 것은 지나치게 성급하다. 다만, 사회가 변하는 만큼 단체들도 달라져야 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투명성에 관한 대안은 생각보다 단순하다. 지난 20여 년간 공익활동의 정부 의존도가 꽤 높아졌다. 그 결과, 단체들은 지원처에 대한 설명력과 소통능력이 좋아진 반면, 기부자와 사회에 대한 소통의 감을 잃은 듯하다. 정부와 배분기관의 지침에 익숙해진 나머지 국민들과의 공감에 둔감해져 ‘현장과 변화의 이야기’를 잃어버렸다. 투명성 문제의 해답은 진정성 있고 적극적인 소통, 그리고 책임감 있는 행동에 있다. 지금 현장에서 땀을 흘리며 일구는 변화의 스토리가 있다면 바로 그것이 모금의 강력한 파워가 된다. 비대면 시대에도 더 많은 시민참여를 이끌어 내는 길이 있다. 그것은 바로 더 공감의 이야기를 디지털 공간에서 전달하는 것이다. 그리고 후원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바로 우리와 함께 하는 사람들임을 알고 그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