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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신애 Aug 27. 2021

본토, 친척, 아비의 집을 떠난 이들을 위해

미라클 작전으로 한국에 온 아프간 사람들을 대하면서

1.

마감이 코앞에 닥친 원고가 서넛인데, 마음이 심란해서 그런지 손이 안 간다. 

탈레반의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 입성. 미군의 아프간 철군 결정 이후 넉달만에 일어난 일이다. 그것도 하필 우리나라의 광복절에. 우리 땅에서 한참 멀리 떨어진 무슬림 동네의 이야기라 치고 모른척 하기에는 사태가 좀 심각하다. 무장한 탈레반들이 이슬람법(샤리아)에 따라 여성들의 자유를 억압하고 이슬람 근본주의의 실현현을 위해 무자비한 통치와 통제를 할 것을 염려하고 두려워하는 이들은 서둘러 그 땅을 떠나고자 하지만 기다리고 있는 것은 테러와 죽음이니, 그들의 마음이 어떠할까.  


2.

아프간에 파견되었던 우리 군인들과 국민들이 현지에서 잘 지낼 수 있도록 도왔던 아프간 협력자들에 대해 많은 분들이 염려를 표했다. 탈레반은 미군과 우리의 파견부대를 지원했던 통역사와 다른 협력자들을 결코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그들을 모른척 하는 것은 신의를 저버리는 것이라는 안타까운 목소리도 나왔다. 프랑스는 프랑스를 위해 일한 아프간인 직원과 가족 등 1천4백여 명을 대피시켰고, 독일 역시 현지 부대에서 일한 사람과 인권운동가 등을 가장 먼저 구출했고, 캐나다도 통역사와 가족, 여성지도자 등 2만 여명을 데려오기로 했으며, 미국은 협력자 피신작전이란 이름으로 구출한 사람들에게 특별이민비자를 발급하고 있다. 탈레반은 그들 나름대로 이런 일들을 막기 위해 또다른 폭탄테러와 작전들을 계속하고 있다. 그러다가 반가운 소식이 들렸다. 국방부에서 미라클 작전을 통해 391명의 현지인들을 무사히 한국으로 인도했다.


3.

일단 피신작전의 성공에 감사하고 기뻐했다. 그런데,  순간 '낯선 땅에 도착한 사람들의 마음'에 생각이 미쳤다. 고향을 떠나 타지로 간다는 것,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다. 한 나라 안의 다른 도시로 가는 일도 고단하기는 마찬가지이고, 가까운 옆 나라로 업무상 파견을 가야해서 이태 정도만 떠난다 해도 온갖 세간살이와 주변을 정리해야 하고 돌아와서도 시간과 힘을 들여 지난 세월의 빈 부분들을 메워야 한다. 내 나라, 내가 쓰는 언어, 물마시고 숨쉬는 듯 자연스럽게 내 정신과 생각에 스며있는 문화 같은 것들이 나를 둘러싸고 있는 한 떠남이 그리 어렵지는 않다. 일평생 살면서 멀리 가지 못하고 살던 곳 주변을 맴돌게 되는 것은 바로 그런 안정감 때문일 것이고, 새롭고 낯선 곳에서 만들어 갈 미래와 꿈에 대한 기대보다 이미 내 안에 있는 안정감을 잃어버리는 두려움이 더 크기 때문일 것이다. 오순도순 일가친척들과 이웃사촌이 모여 있고, 눈에 익은 동네 풍경과 눈감고도 걸을 수 있을 만큼 익숙한 골목길들은 마음을 평안을 주기에 충분하다. 아무리 부유한 동네라고 해도 내게 익숙한 곳이 아니면 어렵다. 일단 죽음의 위협을 피해 자신들에게 우호적인 한국으로 오긴 왔지만 그들에게 한국은 몹시 낯선 환경이 분명하다.


4.

긴급한 상황은 모면하면 된다. 주목받기도 쉽고 돕고자 하는 이들도 많다. 당장은 생사를 가늠할 수 없어도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것이 자리를 찾게 된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되찾을 자리가 있느냐이다. 어떤 사람도 평생을 긴급함 속에서 지낼 수는 없다. 그건 너무 가혹한 일이다. 삶은 평안해야 한다. 적게 먹고, 누추한 곳에서 잠을 자고, 넉넉치 못해 쪼들린다 하더라도 나와 가족들이 여상(如常)함을 유지하는 것이 평안이다. 나는 아프간에서 '삶'을 위해 한국으로 온 이들이 맞이할 현실이 바로 그 '안정감 있는 삶'일지에 대해 궁금해졌다. 결코 아닐 것이다. 아무리 한국의 사람들이 친절히 대하고, 집을 지원하고 안착을 위해 노력한다고 해도 말이다. 그들은 이미 평생 살아온 삶의 터전을 잃어버렸다. 물론 각오하고 온 일이겠지만, 오고 싶어 왔다기보다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는 것이 맞는 표현일텐데. 어쨌든 그들은 이제 평생 나그네로 살아야 한다. 


5. 

첫 직장을 안정감있는 곳으로 선택했다. (선택한 것인지 선택된 것인지 불분명하다. 어쨌든 공채니까 내가 골랐지만 나는 선택받은 자였다고 치자.) 그리고 12년 후에 내 의지로 그곳을 떠났다. 그리고 3~4년에 한 번씩 자리를 옮겼고, 매번 도전과 긴장, 강박과 뚝심이 없었다면 버텨내지 못했을 거다. 몇 번 옮기고 나서 깨달은 것은 내 안정감은 맨 처음 직장에만 있었다는 것이다. 그 이후에 다닌 어떤 직장도 내게 고향 같은 안정감을 주지는 못했고, 어쩌면 그것은 내 마음 탓일 수도 있다. 언제든 짐을 쌀 수 있고, 어느 곳도 종착지라고 생각하지 않기로 마음을 먹은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늘 나그네이다. 주변에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둘러싸고 있고, 몹시 친근하고 가깝고 잘 어울려도 여전히 나는 나그네이다. 그리고 나그네는 외롭다. 외로움을 타는 성격은 아니지만 오롯이 나 혼자라는 느낌을 15년째 곱씹고 있다(물론 가족은 다르다. 가족이 있으니까 살 수 있는 거다). 이 설명하기 힘든 느낌이 아프간에서 온 그들에게 투명된다. 그들은 이제 외로울 것이다. 이역만리 남의 땅으로 왔으니 몹시 외로울 것이고, 이산가족이 된 것이다. 


6. 

성경에서는 나그네된 자를 돌보라는 의무를 주셨다. 그가 어떤 사람이라 하더라도 그가 낯선 땅에 와서 견뎌야 하는 외로움과 고통을 혼자 겪게 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스라엘 민족이 이집트 땅에서 노예로 살았던 경험을 기억하고, 입장를 바꾸어 그들에게 나그네로 온 이들을 무시하거나 외면하지 말라는 엄한 명령이다. 이제 아프간에서 우리에게로 온 나그네들을 어떤 마음으로 보고 대해야 할지 나의 태도를 돌아본다. 오래 전에 우리 땅에서 일본의 핍박을 피해 만주와 중앙아시아로 간 고려인들에 대해 그 땅 사람들이 어떻게 대했을지 나는 알 수 없지만 지금 '살기 위해' 우리 땅을 찾아온 아프간인들을 어떻게 대하는 것이 옳을까에 대해서 나는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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